우리 집은 112동이었는데 사범님이 내려준 곳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우리 집 앞에 버스 정류장도 있고 슈퍼도 있어서 그쪽으로는 별로 다녀본 적이 없었다. 엄마와 몇 번 지나다녔지만 혼자서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걸어가는데 다 우리 집처럼 보였다. 여름도 아닌데 손바닥에 땀이 나고 가슴이 콩닥거렸다. 두 번째 놀이터에 도착한 순간,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면 바로 앞에 우리 집 입구가 보였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서 보이는 입구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 집에 내렸는데 집 앞에 못 보던 커다란 자전거가 있었다. 문에 있는 숫자를 보니 우리 집이 맞았다. 그런데 비밀번호를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꾹꾹 천천히 눌렀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분명히 번호가 맞는데 덜컥 겁이 났다. 다시 조심조심 눌렀는데 경찰차보다 더 큰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그러자 문이 조금 열리면서 문틈으로 어떤 아줌마가 보였다.
“네가 눌렀니? 왜 눌렀어?”
“아줌마 누구예요? 여기 우리 집인데요.”
“너희 집이라고? 에그, 집 잘못 찾아왔나 보다. 여기 아줌마 집이야.”
“우리 집 맞는데…”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울고 말았다. 그때 정말 무서웠다. 우리 집이 갑자기 세상에서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다시는 엄마 아빠를 볼 수 없는 건 아닐까 너무 무서웠다. 우는 나를 보고 놀란 아줌마는 나를 달래며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울지 마, 괜찮아. 아줌마 집에 잠깐 들어가자. 요구르트 줄까? 이름이 뭐야?”
“김은수”
“은수야, 엄마 전화번호 알아?”
“네”
“엄마가 전화를 안 받네. 아빠 전화번호는 알아?”
“몰라요.”
“은수야 너희 집 몇 동이야?”
분명 우리 집 주소를 외웠는데 몇 동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 어린이집에 전화해 보면 되겠네.”
아줌마는 내 어린이집 가방을 보고는 전화했다. 아줌마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아줌마가 아빠 전화를 바꿔줬다.
“은수야, 괜찮아? 놀랬지? 아빠가 지금 데리러 갈 수가 없어. 그래서 할머니가 은수 데리러 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
“할머니? 할머니 돌아가셨잖아.”
“응… 외할머니 말고 할머니 계셔. 배고프지 않아?”
“아줌마가 요구르트도 주고 빵도 줬어.”
나는 외할머니 말고는 할머니가 있는 줄 몰랐는데 정말 할머니가 나를 데리러 왔다. 할머니는 외할머니처럼 머리가 하얗지 않았다. 안경을 쓰고 있었고 초록색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아빠도 엄마도 그동안 할머니가 있다는 말을 왜 한 번도 안 해줬는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아줌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고 나를 데리고 집에 갔다. 할머니를 처음 만났지만,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가니 마음이 놓였다.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게 듣기 좋았다. 그날 할머니는 맛있는 저녁밥도 차려주고 내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엄마를 보자마자 나는 울었다.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은수 이제 일곱 살이야. 다 컸어. 혼자서도 뭐든 잘할 수 있어. 엄마 없다고 울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