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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Dec 07. 2021

One fine day

양쌤의 another story 2

 낡은 베란다 난간에 빗방울이 떨어질 듯 말 듯 조로록 줄지어 매달렸다. 그 위로 언제든지 그 빗방울들을 밀어내고 앉으려는 가는 빗줄기가 계속 내린다. 난간 앞에는 거의 일 년 내내 습기 차 있는 허술한 이중창이 버티고 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베란다 난간 높이만큼만 하자가 있어 하늘을 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거다. 

  그러나 마나 오늘 같은 날은 창이 아무리 멀쩡해도 소용없다. 하늘을 바라볼수록 기운이 쏙 빠진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하늘색은 비구름 뒤로 꼭꼭 숨어버렸다. 지금 하늘은 흐리멍덩한 회색이다.      

  겨울비는 반가웠던 적이 없고 아침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푹신한 무릎담요를 덮고 뜨거운 커피를 마셔봐도 싸늘한 습기가 가득한 겨울이 맨살에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이런 날이면 어렸을 때 읽고 또 읽었던 ‘소공녀’의 주인공 세라가 떠오른다. 겨울비를 맞고 심부름을 다녀와 추운 다락방에서 오들오들 떨었던 날이 이랬을까.


  오늘의 날씨 비. 내 마음의 날씨 흐림. 하루 종일 비 올 확률은… 내 마음 같아선 100%다. 무겁다. 마음이 무거우니 몸도 천근만근이다. 라디오나 들어볼까 싶어 몇 발자국 움직이는 동안 팔이 축 늘어져 바닥에 질질 끌릴 것만 같다. 집 안의 물건들도 화분들도 죄다 축 늘어진 꼴을 하고 있다. 햇빛을 대신한 거실 등의 빛도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겨우 라디오를 켜고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피아노, 드럼, 색소폰이 차분하게 어우러진 재즈곡이 흘러나왔다.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그녀가 ‘one fine day’라며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오래전 흰머리도 없던 조지 클루니가 환하게 웃으며 미셀 파이퍼를 안고 있던 영화 ‘one fine day'의 포스터가 생각났다. 저런 목소리 참 좋구나. 뾰족해진 마음도 단번에 둥글둥글하게 만들어 버릴 목소리,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는 사람도 얌전하게 주저앉힐 것 같은 목소리다. 베란다 난간에 달린 빗방울이 당장 로맨틱해 보였다. 겨울비 내리는 재즈 카페의 통창 앞에 앉은 것도 같고 난로 앞에 앉은 듯 몸이 따뜻해지는 것도 같았다. 

  마음의 온도가 중요했나 보다. 몸의 온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한기가 있었던 거다. 그녀의 목소리에 흐느적거리다 보니 흑백 영화 같던 주위가 다시 제 색깔을 찾아갔다. 여전히 겨울비는 내리고 있고 하늘은 그대로이지만 조금 전 같은 한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에 노래방만 가면 그렇게 ‘겨울비’란 노래를 부르던 친구가 있었다. ‘겨울비처럼 슬픈 노래를 이 순간 부를까’ 그 친구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계절을 안 가리고 겨울비를 불러댔다. 무슨 사연 있는 사람처럼 진지하게. 오늘 같은 하늘 색깔에 딱 어울리는 노래이기는 하다. ‘우울한 하늘과 구름 1월의 이별 노래’ 그 친구는 그렇게 사계절이 다 겨울처럼 마음이 추웠었나 보다.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노래방 분위기 가라앉게 왜 맨날 저 노래를 부르나 했다. 그때 난 참 무심했던 친구였구나. 


  주문처럼 ‘one fine day'를 흥얼거려 본다.

  One fine day we’ll meet once more. Take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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