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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Jun 28. 2023

길치, 서울 가다

양쌤의 another story 49

“나… 떨고 있냐?”
“아니”
“그게 겁나. 내가 겁낼까 봐.”

(드라마 ‘모래시계’ 중에서)   

  

 운전면허 딴지 30년, 장롱면허 탈출한 지 15년. 이 정도면 거의 자동차로 전국 일주라도 해야 할 판인데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경계를 넘어간 적이 거의 없는 ‘로컬 면허’다. 걷든 운전하든 길 위에서 멍때리기 일쑤고 사람 얼굴은 잘 알아보지만 길눈이 어둡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남편 차로 움직이다 보니 10년 된 내 차의 주행거리는 고작 2만 5천 km 정도. 고속도로를 타본 적이 없으니 가속페달을 좀 급하게 밟기라도 하면 레이싱 카에서나 나는 그런 소리가 난다.

 “부아아아아앙”   

 처음에 고속 주행으로 길들이지 않아서 그렇다는데 나는  상관이 없다. 어차피 고속 주행할 일이 없으니까. 한번씩 부앙거릴 때마다 살짝 웃길 뿐이다.

 '너 참 애쓴다'


 예술의 전당 전시회를 예약한 날이 다가오던 어느날, 친구와 커피를 마시다가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내 차로 가 볼까?!"

 "그래. 백운호수나, 예술의 전당이나 거기가 거기야. 그냥 다 우리 동네다 생각하고 가면 돼."

 "그래? 그럼 가 보지 뭐."

 가는 길을 미리 검색했다.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미리 살펴두지 않으면 또 어느 동네에 가 있을지 모른다.

'통행료가 있다고? 앗 벌써 불안하다. 예술의 전당 갈 때 과천을 지나갔었는데 왜 자꾸 이 길로 가라는 거지.'


 전시회 날 아침, 오전 10시가 넘었는데도 도로는 출근시간을 방불케 했다. 시 경계가 가까워지니 등이 편안하게 의자에 붙어있지를 못했다. 몇번이나 지나다닌 길이지만 이번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게 문제였다. 강남순환로 표지판을 보고 들어섰는데...

"아, 하이패스! 하이패스 안 써봤어. 신랑이 달아놨는데 되는지 안되는지 몰라."

 톨게이트 코앞에서 다급해진 나의 외침에 친구는 당황하지 않고 측면을 눌렀다. 불이 들어오고 잔액을 말하는것 같았다.

 "히야~ 하이패스를 다 써 보네."

 

 쭉쭉 길이 뚫렸다. 그 긴 터널이 너무나 아늑하게 마음껏 달리라고 길을 열어주었다.  오래전에 보았던 해저 터널 재난 영화와 TV에서 본 터널 안 사고영상들 때문인지 터널에 들어갈 때면 약간 긴장하곤 했는데 오히려 터널 안이 안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터널은 터널이니까 제한속도는 지키는 걸로.

 맨날 하는 운전인데 참나 신나는 건 또 뭔지... 난 참 일차원적인 기쁨을 자주 만끽하는 인간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울퉁이와 삐리의 하늘여행(하기노 치나츠/한솔교육)

 퍼어엉! 지구를 관통하는 우물 속으로 떨어져 반대편 하늘로 솟아오른 그림책 속 악어와 병아리처럼 터널을 벗어나니 코앞이 사당역이었다.

 우오오오~ 서울이닷!


 예술의 전당은, 아주 갈 만했다.

 차선 변경 타이밍 정도는 운전경력 15년이면 거의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고 길치로서 두려움만 극복하면 되는 거였다.

 "다음부터 예술의전당 갈 땐 내가 운전할게. 별거 아니네"

 "너 운전 잘 한다니까"

 "흐흐흐, 조건이 있어. 꼭 네가 옆에 있어야 돼."


 옆에 누군가 있기만 하면 세상 배짱 좋은 드라이버가 된다.

 "지금 미리 이 차선으로 들어가야 돼."

 "좀 있으면 이 차선 없어져."

 내비게이션보다 한 발 먼저 나서서 길을 알려줄 사람,

 "괜찮아. 저기서 돌리면 되지."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버벅대는 나를 웃으며 격려해줄 사람이 함께 있다면 어디든... 아니고 왠만하면 갈 수 있다.

 나는 아직 기계보다 사람이 더 믿음직스러운 옛날 사람 아닌 옛날 사람 같은 요즘 사람.

 고작 17km 떨어진 서울 찍고 온 게 뭐 대수일까 싶지만 길치 드라이버에겐 너무나 대수였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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