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 극복, 기억과 성장에 대한
흔히 남자는 시각에 민감하고 여자는 청각에 민감하다고 하나, 둔감한 청각을 가진 탓에, 소리도 잘 못 듣고(그렇다고 장애를 가진 것은 아니다), 말도 잘 못 알아듣는다. 음악은 내게 소음 제거를 위한 수단일 뿐이고, 좋은 음악을 들었다고 해서 내 감정의 곡선이 요동을 치는 일은 거의 없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콘서트를 갈 돈으로 미술관을 가고 싶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 정도로 나에게 소리란 별 의미 없는 ‘것’이다.
그러나 소리의 기억은 내게 달리 작용한다. 그 애와 헤어지고 1년 정도는 집으로 가는 길을 걸을 때마다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그 애와 걸었던 특정 위치를 지나면 그의 음성이 자동 재생되어 귓가에 울리곤 했다. 그 애가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 정확하게 들렸고, 그 애가 내뱉는 숨결과, ‘아’나 ‘음’하고 말을 끄는 소리 또한 생생하게 들려 나를 괴롭게 했다. 거기엔 행복에 겨워 웃는 나의 웃음소리도 있어, 그의 부재로 힘겨워하는 나의 상황과 대조되었다.
‘나한테 마음이 있어요?’
‘잘해줄게요.’
‘너 때문에 내 심장이 콩닥거리잖아.’
‘오늘은 집에 걸어가지 마요, 걱정되니까.’
‘취미가 다르고 성향이 다르면 어때? 다른 게 더 재미있어. 둘이 맞춰 가면 되잖아.’
당시엔 귀가 사르르 녹을 것처럼 따뜻하고 달콤한 말이었는데, 그 소리들은 이별을 겪으면서 소중했던 기억과 함께 나를 좌절에 몰아넣는 슬픈 속삭임일 뿐이었다. 어떤 날은 마음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곤 했다.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나 또한 그랬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해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고, 과거는 왜곡되고 미화되며 더욱더 스스로를 현실과 멀게 만들었다. 내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거짓이었고,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났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고, 두 번째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서 문득, 깨달을 수 있었다. 홀로 걸을 때마다 들리던 과거의 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리다가 어느 순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으나, 과거에 완전히 빠져서 사는 것도 힘들다. 나의 경우에, 시간이 약이 되진 못했지만 사람은 약이 되어주었다. 이제는 기억의 소리를 듣는 것이 두렵지 않을 듯하다. 새로운 사람과 함께 다시 소리의 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을 또 다시 엎고, 또 새로 만들고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사랑의 과정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거치다 보면, 기억의 소리에 괴로워하던 그 기억도 성장통을 견딘 대견함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