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야근하는 삶
나는 항상 야근에 찌들어 있었다. 친구가 모인 날도. 동기 모임 할 때도. 가족모임 할 때도. 항상 나는 없었다. 늦게가거나. 못가거나. 그럴 때 마다 항상 나에겐 전화와 메세지가 온다.
"형, 어디야?"
"야, 너 어디냐?"
"언제와요?"
회사 입사 3년차 어느 주말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럴거면 삼성을 가는게 더 나았을텐데, 거긴 주말 수당이라도 주니까"
우리는 대기업이었지만, 수당을 받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주말 수당이라는 제도가 확립되지 않았던 시절. 그 당시에는 주 근무시간이 심지어 68시간. 밤새는 것도 부지기수. 술도 많이 마셨다.
하지만, 결혼 후 술 마시는 횟수는 나의 노력으로 급격히 줄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두려웠다. 친했다고 생각했던 동료들이 하나 둘 씩 나를 부르지 않기 시작하고, 나도 무언가 아웃사이더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그렇게 모임 횟수를 줄여나갔다. 하지만 퇴근 시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많은 것들을 해야했기에."
연구원이라는 직업이 굉장히 멋있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내가 겪었던 연구원은 밖에서 보는 연구원과는 굉장히 많이 달랐다. 나는 관리를 할 직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구매부터 원가관리, 부품수급, 설계, 조립, 시험, 그 외 기타 자료 작성 등 개발프로세스에 들어가는 많은 부분들 담당했고 이 외에도 안전과 같은 기타업무를 담당했다. (실제로 세분화 해보면 훨씬 많지만...)
그리고 프로젝트는 하나만 하질 않는다. 그나마 참고할 만한 것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했던 것들은 참고할 만한 기존 프로젝트가 없었다. 그러니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문제도 굉장히 많았다. 결국은 모두 잘 끝났지만.. 이렇게 매일 야근을 하니, 서울에 살다가 지방으로 내려온 와이프는 항상 우울감을 겪었다. 가족모임을 할 때도 남편없는 모임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와이프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같이 해보자. 아이가 아직 생기기 전에는 항상 주말에 카페를 갔다. 그리고 평일에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어디든 수강신청을 해보라고 했다. 친구가 없던 와이프는 그렇게, 동네 주변을 배회하며 카페도 다니고 꽃꽃이 같은 수강신청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을 때, 와이프를 데리고 미국도 다녀왔다.
이렇게 나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렇지만 함께 무언가를 했을 때 보다 하지 않는 시간이 훨씬 많았기에, 와이프의 우울감은 마음 한구석에 계속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기쁜일이 생겼다. 아이가 생긴 것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