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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딩하는 작가 코작 Jan 09. 2021

내가 죽기전에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회사에 입사하다.

나는 취업과 거리가 멀었다. 왜냐하면 스펙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선택한 진로가 대학원이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평생 백수로 놀고먹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나의 최후의 보루였다.


대학교 4학년이 되던 해, 무작정 교수님들을 찾아갔다. 교수님 중에서도 가장 웃음이 인자하셨던 교수님과 정말 실력이 뛰어나셨던 교수님 두분을 찾아뵈었다.(그렇다고 인자하신 교수님이 능력이 없다는게 아니었다. 그 당시 BK21이라는 엄청난 지원금을 받고있는 연구실을 운영하고 계셨다) 


열심히 상담을 하고, 결국 두 분다 석사 진학을 하는 조건으로 랩실에 들어오는 것을 승인하셨다. 하지만 인자하신 교수님은 들어오기 전에 조건이 한가지 더 있었다. C언어 코딩 시험을 간단히 보는 조건하에 승인하신 거였다.  코딩 시험을 나름대로 준비했지만 자신이 없었기에 도전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못간다고 말씀을 드리고 결국, 난 실력이 뛰어나신 교수님 밑의 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 석사 마지막 학기에 난 취업을 하고 지방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런데 이게 왠 운명의 장난인가. 입사하고 처음 3년동안 가장 많이 날 괴롭혔던 것은 C언어 코딩이었다. 심지어 펌웨어라는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들어가는 C언어. 학생 때는 내가 도전을 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기말고사 때 어찌어찌 숙제만 겨우 낼 정도로 피했던 그 코딩. 회사와서 만나게 되었다.


설상가상 C언어를 나에게 가르쳐 줄만한 분이 많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내가 쓰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회사에서도 처음 적용해본 칩이었다. 회사는 도전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다들 생각했다. 회로 설계, 제작과 제품을 동작시키는 코딩을 모두 해야하는 나에게는 정말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그 뿐만 아니라, 고객의 요구사항을 항상 맞추기 위해서는 자료를 만들고 전달하고. 시험하고. 어떻게든 항상 기한에 맞춰야 했다. 그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고 고객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굉장히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은 좋았지만, 결국에 내가 해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해결되는 부분이 없었다. 도망 칠 수가 없었다. 입사하고 아버지와 한 약속이 있었다.


"최소 3년은 회사생활을 해야 회사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3년은 다니자."


그 3년 약속을 위해 중간에 왔던 헤드헌터의 요청도 거절했다. 더 큰 기업으로 갈 수 있는 기회였지만, 여기서 해내지 못하면 어디가서도 해내지 못한다는 나름대로의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3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다. 인간관계, 업무 수행능력, 고객 대응, 그 밖의 개발 프로세스의 문제, 그 외의 기타 업무처리까지. 지금 다시하라고 하면 손사래 치고 싶은 그런 것들.


그렇게 힘든 회사생활을 지속할 때 나에게 위로가 된 것은 같이 고생하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술 한잔. 그 낙 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의존성이 점점 더 커져갔다는 것. 결국 그것은 악순환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걸 끊을 수가 없었다. 술도 없으면 버틸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느꼈기에. 그들과 함께하는 그 짧은 시간이 즐겁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사 후 3년 차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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