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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May 09. 2021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 이별 폭행‧이별 범죄 이야기


내 마음 깊은 곳엔 언제나 너를 남겨둘 거야~ 슬픈 사랑은 너 하나로 내겐 충분하니까~ 하지만 시간은 추억 속에 너를 잊으라며 모두 지워가지만 한동안 난 가끔 울 것만 같아~     


  가수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노래 가사이다. 안타깝께도 노래 제목과 달리 남녀 간의 이별이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연인이나 배우자가 헤어지면서 일방이 다른 일방을 폭행해서 입건되고 처벌받았다는 식의 뉴스를 흔하게 접하게 된다. 법률상의 용어는 아니지만 각종 미디어를 통해 “이별 폭행”이라고 불리는 유형의 범죄가 그것이다. 또 이별통보를 받은 사람이 폭행 이외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이 있어 “이별범죄”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필자도 이별 폭행(범죄) 사건을 여러 번 조사해 봤었다. 이별 폭행은 주로 물리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저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패턴은 대개 비슷하다. 관계(연인관계, 부부관계)에 지친 여성이 이별 통보를 하면, 남성이 처음에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자고 하면서 여성을 설득하기도 하고  애원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여성이 계속 완강히 거부하면, 남성의 태도가 돌변해 여성을 때리고 여성의 물건을 부수고 그보다 더 심한 범죄에까지 나가게 되는 식이다. 더 심한 범죄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피해자의 진술을 들을 수 없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지만, 그 외에도 이별통보를 받은 사람이 저지르는 다양한 유형의 범죄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에 규정하고 있는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피해자의 나체 또는 자신과 성관계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동영상을 피해자 주변 사람들에게 유포하겠다고 위협하고 또 실제 유포까지 한다. 피해자 주변 사람 외에 불특정 다수에게 사진이나 동영상을 유포하기도 한다. 가해자들이 유포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은 대개 피해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피해자의 동의를 얻어 찍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기가 유포한 사진과 영상은 촬영 당시 피해자와 합의 하에 찍은 것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법조문을 들기 전에 상식의 문제이다.


 ** 성폭력처벌법에는 촬영 당시에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으나 유포 당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에도 촬영 당시 피해자 의사에 반하였던 경우와 동일하게 처벌하는 규정이 있다. ** 


  촬영 당시에 어떠했든 간에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물을 다른 사람에게 유포하여 성적 수치심을 일으켰다면 변명할 수 없는 범죄인 것이다.          



  또, 이별통보를 한 상대방을 도망 못 가게 가둬 버리기도 한다. 상대방을 어떻게라도 자신의 곁에 두고 싶은 심리가 발동되어 형법상 감금죄를 범하는 것이다. 성인이 어떻게 쉽게 감금을 당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성인 여성이라도 이성을 잃은 힘센 남성을 당해 낼 재간은 없다. 특히 사리분별 능력이 부족한 미성년자, 장애가 있는 여성 그리고 가해자가 약을 타거나 음주를 강요하여 심신상실 상태를 만든 경우 등에서 쉽게 감금죄 대상이 될 수 있다. 감금 장소는 자동차, 모텔, 아파트, 사무실 등등 다양하다. 또 짧게는 몇십 분이기도 하지만 길게는 며칠 동안 감금하기도 한다.     


  이별통보에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하거나 ‘같이 죽자.’고 하기도 한다.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죽어버리겠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협박죄가 될 수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자해나 자상 행위에 대한 고지가 반드시 협박죄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흉기 등으로 자해와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위협이 있는 경우에는 협박죄 성립이 가능하다. 또, 자해로서 ‘우리 관계가 이렇게 아름답게 끝나지 않음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의사의 표현으로 해악의 고지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역시 ‘죽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협박죄가 될 수 있다. 

  ‘같이 죽자.’는 것도 마찬가지로 범죄가 될 수 있다. 흔히 부모로부터 허락을 받지 못한 연인관계이거나 세상에서 금지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함께 죽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보통 ‘합의 동사(合意同死)’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죽음에 대해 서로 합의하고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이별 폭행, 이별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상황에서는 보통 피해자가 상대방과 함께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연인관계 또는 부부관계를 끝내고 상대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도 어찌어찌하여 상대방과 같이 죽으려는 시도를 하게 되면, 형법상 강요죄나 위력에 위한 살인 미수 등이 성립할 수 있다.        

    

  헤어지자는 말에, 그 말을 한 사람을 때리고 가두고 같이 죽자고 하고 또 성관계한 사진을 뿌려 버리는 등 이런 행동들에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은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건들을 조사하면서 피의자들에게 범행동기를 물어보면, 피의자들은 하나같이 “OOO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지금도 OOO를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한다. 피의자가 피해자를 사랑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진실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고 서로를 알아갈 때의 설렘, 그 사람과 함께 한 행복한 시간과 수많은 추억들 그런 것들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한다는 사람과의 시간을 계속하기 위해 관계 유지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그 사람을 때리고 파괴하려는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범죄이다. 이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OOO의 행복한 시간은 나와 함께 해야지만 의미 있는 것이다.’라는 자기애(自己愛)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한다.   

 

  


  이별 폭행이나 이별 범죄는 주로 남성에 의해 벌어진다고 했는데, 드물지만 여성이 범행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다만, 여성이 이별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에는 물리적인 힘을 바탕으로 한 폭행이나 성폭력 등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 하에 은밀한 방식으로 범행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배우자가 있는 남성과 불륜관계를 유지하던 20대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관계를 정리하자는 이야기를 듣자 복수심에 불타게 되었다. 그래서 남성의 아파트에 몰래 들어가 물건을 부수고 아이 분유병에 이물질을 집어넣고 급기야는 남성의 배우자에게 클로자핀(조현병 치료에 이용되는 항정신병 약물)이 섞인 음료를 먹여 기절시켰다. 주거침입, 손괴, 상해 등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사건이 검찰로 구속 송치되어 왔다. 전형적인 이별 범죄와는 달리 이별 통보를 한 상대방이 아닌 그 가족을 범행대상으로 하였고, 만 1세도 채 안 된 영아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범행을 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공분을 자아낸 사건이었다. 이 여성 피의자 역시 범행을 뉘우친다고 하면서도 불륜 남성과의 관계가 깨지는 것을 더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주 극단적인 형태의 범죄가 아니라면, 이별 범죄의 주체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가해자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꽤 있다. 이별범죄로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으면서도 계속 해당 가해자는 상대방(피해자)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행복했던 과거에 대한 미련한 집착이든 자기애의 다른 표현이든 간에.   

  

  더 큰 문제는 피해자이다. 가해자가 추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피해자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부여잡고 불안한 미래를 맞이해야 한다. 상처에는 가해자의 이별범죄로 인한 직접적인 신체적‧정신적 고통도 있겠지만, 가해자를 택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후회와 자책 그리고 그런 사람과 보낸 과거의 시간을 모두 부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비탄 등 심리적 트라우마가 더 크다. 거기에 더해, 앞으로는 아름다운 만남은 고사하고 폭행 등 추잡하고 끔찍한 종말로 치닫지 않는 만남과 이별을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이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만남에 대한 공포가 생기는 것이다.                    


  이별범죄를 당하지 않거나 이별범죄로 인한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애초에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많은 범죄학자들이, 이별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관계 초기에 강한 소유욕 또는 집착을 드러내거나 사소한 것에도 크게 흥분하고 과격해지는 등 폭력적 성향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런 징표를 발견하면 주저 없이 관계를 청산해서 더 큰 위험을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자신의 본성을 장시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고, 피해자 역시 관계 초기 상대방에 대한 좋은 감정, 연예로 인한 행복감에 도취되어 상대방의 그런 위험한 성향을 감지해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현실적인 장애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만남, 안전한 이별을 원한다면 범죄학자들의 조언을 백 번, 천 번 되새기고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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