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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May 09. 2021

거짓말을 밝혀준다!?: 심리생리검사


  ‘심리생리 검사’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가 ‘거짓말탐지기 검사’라고 하면, “아, 거짓말탐지기요” 하며 즉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람들이 흔히 거짓말탐지기라고 알고 있는 검사의 공식 명칭은 ‘심리생리 검사(polygragh)’이다. 이 심리생리 검사가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사실무상 심리생리 검사와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들을 해 보도록 하겠다.     

 

  심리생리검사 관련하여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은 그거거짓말탐지기 믿을 수 있냐?’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에 따라 검사나 수사관의 심증 형성이 달라질 수 있으니 이 부분을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내 속은 나도 잘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인공지능도 아닌 기계 덩어리가 내 속을 파헤쳐 보겠다는 것에 짙은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거의 상식처럼 알려져 있는 내용이 ‘법원에서 거짓말탐지기 안 믿는다.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피의자 등에게 ‘이 사건, 심리생리검사 한 번 해 보실래요?’라고 물으면, 자기의 결백을 심리생리검사를 통해서라도 밝히겠다면서 자신만만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거 증거능력 없다면서요? 그게 다 맞는 거 아니라면서요?’라면서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무경험상 이와 같은 상반된 반응의 비율은 반반 정도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현재 우리 법원의 공식적인 입장은 심리생리검사 결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1979년 『백화양조 살인사건』 및 1981년 『정재파 군 살인사건』 이후 일관되게 심리생리검사 결과의 증거능력을 부인해 왔다. 대법원은 심리생리검사 결과의 증거능력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으로 ①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일정한 심리상태의 변동이 일어나고 ② 그 심리상태의 변동은 반드시 일정한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며 ③ 그 생리적 반응에 의하여 피검사자의 말이 거짓인지의 여부가 정확히 판정될 수 있다는 전제요건이 충족되고 ④ 생리적 반응에 대한 거짓 여부의 판정은 거짓말탐지기가 위 생리적 반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장치여야 하고 ⑤ 검사자가 탐지기의 측정 내용을 객관성 있고 정확하게 판독할 능력을 갖춘 경우임을 판시하면서, 아직까지 이와 같은 요건이 충족되었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심리생리검사 결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취해 온 것이다. 


  이런 대법원의 태도와는 달리, 대검찰청을 비롯한 수사기관에서는 통계상으로 드러난 심리생리 검사결과의 높은 정확도를 근거로 심리생리검사가 믿을만한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고 수사실무에 널리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수사기관에서 근거로 삼은 통계자료는 심리생리 검사 결과와 법원의 유죄판결과의 일치율이 95~98퍼센트 정도에 이르며 사회과학 분야에서 이 정도의 수치는 꽤 높은 편에 속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통계상의 정확도라는 것도 결국 어느 정도 인간의 판단 작용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신만이 알고 있는 100퍼센트의 진실을 기준으로 검사결과의 정확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생리검사 결과의 법원의 유죄판결과의 일치도를 비교하여 정확도 통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판단 개입으로 그 정확도라는 것이 오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비록 2~5퍼센트의 낮은 수치라고 하더라도 오류의 가능성이 있고 또 본인이 그 낮은 확률의 오류에 해당한다면 개인으로서는 끔찍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심리생리검사의 정확도에 의구심을 갖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심리생리검사는 DNA 유전자 감식, 화재 분석이나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 같은 다른 법과학 분야에 비해서는 덜 정확하다는 인식이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심리생리검사 결과의 증거능력에 대한 법원의 부정적인 태도, 그리고 오류 가능성 등으로 인한 일반인들의 불신 및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심리생리검사는 수사실무상으로 빈번히 활용되는 수사기법 중의 하나이다. 특히, 범행이 밀폐된 공간에서 또는 은밀하게 행해지는 관계로 피의자와 피해자의 진술 외에 별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은 성폭력 사건에서 심리생리 검사가 활용되는 예가 많다.

 대검찰청, 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기관에서 심리생리검사 결과의 신빙성과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진실과 거짓을 100퍼센트 가려내는 검사기법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아마 심리생리검사 결과가 100퍼센트 믿을 수 있는 것이라면, 수사기관이나 재판기관은 굳이 피의자, 피고인의 진술을 받아내거나 증거를 찾는데 애써 힘을 뺄 필요도 없이 심리생리검사 의뢰해서 그 결과를 갖고 판단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질문하는 내용이 바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거짓말탐지기 거부 사실을 피의자에게 불리한 징표로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논제로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심리생리검사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피의자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심리생리검사는 피의자가 자신의 입증책임의 부담을 덜고 자신의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 하에서만 자유로운 의사에 실시되어야 하고, 검사거부가 피의자에게 불리한 징표로 사용된다면 실제 심리생리 검사를 한 경우보다 ‘피의자에게 더 불리한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미국 군사증거법에는 ‘폴리그래프 검사 거부사실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아예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심리생리검사의 거부가 사실적으로는 검사나 수사관의 심증 형성에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염려가 있기는 하다. 심리생리검사를 거부했다는 사실 자체로 혐의가 있다고 단정 짓지는 않겠지만, ‘켕기는 게 있으니까, 자신 없으니까 검사를 안 받겠다고 하는 것 아냐?’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심리생리 검사에 응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는 경우, 해당 사안의 성격, 다른 증거관계, 피의자의 성향, 변호인이 있는 경우 변호인의 심리생리 검사에 대한 가치관 등에 따라서 사안 별로 입장을 정해야 하는 정답이 없는 문제로 보인다.     

 

  변호사로 일을 하다 보면, 수사기관에서 먼저 심리생리검사를 받아 볼 것을 제안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의뢰인들 스스로 먼저 본인은 떳떳하고 너무 억울하니 심리생리검사를 요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개인적으로는 의뢰인들에게 아주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심리생리검사를 권하지 않는다. 앞서도 말했듯이 약간의 오류 가능성에 한 사람의 인생을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수년간 대검찰청에서 심리생리검사 분석관이 되려는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법과 인권 : 심리생리 검사의 법적 증거능력을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강의를 했었다. 강의를 할 때마다 교육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테마가 있는데, 바로 심리생리검사(거짓말탐지기검사결과를 언론에서 공개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것이었다. 


  종종 연예인의 각종 추문과 관련하여 “OO OO 혐의를 받고 있는 인기 가수 OOO 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검사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습니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를 토대로 개그맨 □□□씨를 혐의를 추궁할 것으로 보입니다.”와 같은 식의 언론보도를 접하게 된다. 해당 유명인이 실제 그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응당 법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또, 어떻게 보면 대중의 인기와 관심에 의존하는 공인이라는 점에서 대중의 관심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름이 좀 알려지고 대중의 관심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사생활이 모두 까발려지는 것까지 감수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피의자는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이 되어야 한다. 이는 헌법(제27조 제4항)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헌법상의 원칙이다. 


  유명인에 대한 수사 중 심리생리검사 결과가 보도된 많은 사례에서, 결국 나중에 검사가 불기소 처분을 하거나 법원에서 무죄판결로 결론이 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해당 유명인이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무개 유명인이 과거에 성추행(성폭행으로, 사기로, 음주운전으로 등등)으로 수사를 받던 중 거짓말탐지기 검사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다는 사실만 뚜렷하게 기억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심리생리검사 결과가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믿는 일반인들이 또 한편으로는 유명인의 심리생리검사 결과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다는 것을 이유로 해당 유명인이 거짓말을 하였다고 단정 짓고 죄가 있으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태도는 모순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수사를 할 때 그 진행과정을 일일이 대중에 공개할 필요는 없다. 이는 수사의 효율성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수사기관이 심리생리검사 결과를 미디어를 통해서든 직접적으로든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행동은 마치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피의자의 계좌추적을 하고서는 피의자의 계좌에서 어떤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외부에 알리는 것과 같다. 그 대상이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밀폐된 공간에서 몸에 센서를 부착하고 검사관의 잇따른 질문에 보였던 심리, 생리, 신체적 반응에 대해서는, 사생활의 비밀의 하나로서 보장해 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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