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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May 08. 2021

구속의 기로(岐路)에 서 있는 사람들


  수사기관이 수사를 진행하다가 피의자에 대하여 구속수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가 있다. 경찰은 검사에게 신청하여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검사는 직접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법원에는 영장전담 판사가 있어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한다.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구속사유로는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이다. 그밖에도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은 구속 필요성 판단에 고려 요소가 된다.

  

  형사소송법은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법 제199조 제1항) 하도 미디어에서 “아무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 중이다.”, “아무개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언제 열린다.” 등등의 내용을 쉴 새 없이 보도하고 알리는 통에 많은 사람들이 마치 구속수사가 원칙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하지만, 형사절차에서는 엄연히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다. 불구속 수사가 원칙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구속수사의 원칙으로 알고 있는 것은, ‘일단 잡아 놓고 족치던’ 과거의 수사관행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인신구속은 당사자에게 단순한 불편함 이상의 고통을 야기한다. 일단 구속이 되면 일정기간 구치소에서 갇혀 신체의 자유가 박탈됨으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또한, 직장을 잃거나 자영업을 중단해야 하는 등 생업활동에 타격을 입게 된다. 어쩌면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낙인이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무죄추정 원칙’이라는 신성한 대원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속이 곧 유죄를 뜻하고 구속된 사람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나쁜 사람으로 간주해 버리는 사회적 분위기상, 한번 구속이 되면 추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렵게 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떠나 갇혀 있는 상태에서는 당장 진행되고 있는 형사절차에서 수사기관에 대항해 방어권을 행사하기도 쉽지가 않다.


  구속이 되면 석방을 위해 구속적부심사나 보석 제도의 활용을 고려해 볼 수 있으나 그런 제도들의 인용률이 그렇게 높지 않은 현실에서 이에 기대기도 어렵다. 사실 구속 제도는 피의자 등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형사절차에의 출석을 보장하고, 증거를 인멸함으로써 수사와 재판 심리를 방해하는 것을 방지함에 그 취지가 있는 것이다. 피의자로부터 자백을 받아내는 등 수사의 편의를 위해서 존재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여러 불편과 고통으로 인해, 구속된 피의자가 심리적으로 위축이 된 상태에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허위자백을 할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과거 수사기관에서는 수사의 편의를 위해 구속제도를 남용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이렇듯 수사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신체의 자유나 행복추구권 그리고 형사절차상 방어권 행사 등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갈림길에 있는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영장실질심사 제도로 많이 알려진 구속전피의자심문제도이다. 종래 검사가 제출한 서류만으로 심사를 하고 인신구속 여부를 결정함으로써 피의자 구속이 남용된 것에 대한 반성으로, 구속 전 피의자의 ‘법관 대면권’을 보장하여 구속여부에 대해 신중을 기하도록 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제도이다. 구속여부 판단에 대해 과거와 같은 형식적 심사가 아닌 법관의 실질적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영장실질심사’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이 제도는 1995년 형사소송법 개정 시 처음으로 도입이 된 이래, 필수적 절차 여부 등에 대해 개정과 논의를 거듭한 끝에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시에 지금과 같은 필요적 제도(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피의자 심문절차를 거쳐야 하는)로 규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구속전피의자심문이 진행되는 공간은 엄숙함과 진지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에 공개하여 원칙적으로 누구에게나 방청을 허용하는 공개주의가 지배하는 일반 재판과는 달리,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구속전피의자심문 절차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따라서, 구속전피의자심문이 진행되는 법정은 피의자 외에 피의자를 심문하는 판사 1명과 법원사무관, 법원 경위, 피의자 호송 경찰관과 피의자의 변호인, 검찰수사관 등 5~7명 정도의 단출한 모습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공개재판에서 간혹 듣게 되는 피해자 가족 등 방청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고함 소리나 피고인과 피해자 측 사람이 서로 고성을 지르며 싸우는 소리 등을 듣는 일은 거의 없다. 참고로, 간혹 정치적인 사건이나 쟁점이 복잡한 사건 등에는 검사도 구속전피의자심문절차에 참석하여 판사에게 쟁점이나 법률적 견해에 대해 직접 설명을 하기도 한다.     


  구속이 의미하는 무거움과 피의자에게 가해질 고통과 불편함을 잘 알기에, 피의자를 직접 수사하고 피의자와 심문절차가 진행되는 법정에 동행한 검찰수사관도 동행에서부터 법정에서 제반 절차가 진행되는 모든 순간 피의자에게 최대한 예를 갖추고 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문을 받는 피의자들도 대부분 법정에서 숙연한 자세와 조용한 태도를 유지한다. 말 그대로 구속의 갈림길에 서 있는 순간이기 때문에, 대기실에서부터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지그시 차분히 자신의 심문 순번을 기다리게 된다. ‘차분히’라는 것은 대기실과 법정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조용한 분위기를 제삼자의 관점에서 표현했을 때 이야기이지, 사실 심문을 기다리는 당사자에게는 숨 막히는 초조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수사를 받을 때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며 거칠게 항의하던 피의자들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통상 범죄자들 몇몇이 모이면 자기들끼리 억울하다 이야기도 하고 수사기관 욕도 하면서 떠들기 마련인데, 구속전피의자심문을 목전에 두고는 대기실에 여럿이 같이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공범이거나 서로 친분이 있는 사이여도 이 공간에서는 누구도 말도 걸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순번을 기다린다. 그저 무거운 침묵만이 흐를 뿐이다. 기다리면서 조용히 흐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다가 판사로부터 심문을 받으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심문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가끔 정치적인 사건이나 쟁점이 많은 큰 사건의 경우에는 심문이 몇 시간씩 걸리기도 하지만, 보통의 사건들은 통상 10~20분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 피의자가 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판사는 피의자의 혐의 유무와 관련된 질문보다는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염려를 판단하기 위한 피의자의 주거지, 경력, 가족관계, 교우관계 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물어본다. 판사가 심문 마지막에 피의자에게 “영장 발부에 고려하겠으니 한 마디 해 보라.”라고 하고, 피의자가 마지막 말을 마치면 “심문한 내용과 검사가 제출한 사건기록을 다시 한번 꼼꼼히 검토해서 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하겠으니 피의자는 인치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라고 고지한 뒤 심문절차를 종료한다.         


 검찰수사관은 판사의 피의자 심문이 끝나고 피의자를 인치 장소로 데리고 가면서, 추후 절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한다. 멘트는 거의 고정적인데, 다음과 같다.

 

“(오전에 구속전피의자심문을 한 경우) 영장 발부 여부는 오늘 오후 5~6시 즘에 결정이 될 겁니다. 구속영장이 발부가 되면 오늘부터 OO구치소로 가게 되고, 조만간에 당신을 소환하여 조사를 할 것입니다. 구속 사실은 가족에게 통지가 갈 것이고요. 만약 영장이 기각되면 구치감 경찰관이 석방시킬 것이니 경찰관 안내에 따라 귀가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판사가 영장을 기각했다고 하여 당신이 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니 집으로 돌아가시면 앞으로도 수사절차에 협조해야 합니다. 이후 또 전화 잘 안 받거나 검찰 출석하지 않는 경우에는 영장 재청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피의자가 보인 반응은 거의 한결같았다.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쩌면, 구속의 기로에서 극도의 불안과 고립감을 느끼고 있는 피의자에게는 검찰수사관의 절차에 대한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이 오히려 하나의 위로처럼 느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후 절차는 위에서 피의자에게 한다는 이야기처럼 돌아간다. 많은 수사관들이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그 날 저녁 술을 마시기도 한다. 혹시 사람을 구속시킨 것에 대해 축배를 드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실제 그런 자축의 의미와 기분으로 술 마시는 수사관들도 여럿 봤었다. 또, 검찰 직구속(사법경찰관 신청을 통한 청구가 아닌 검찰에서 직접 법원에 영장청구하여 구속시킨 경우) 건수가 검찰수사관 실적으로 평가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수사관들은 한층 더 복잡한 심정으로 술잔을 기울이게 된다.

  영장 청구 전에 여러 차례 피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운 정이나마 들어서일 수도 있고, 조사를 하면서 피의자의 개인사나 인간관계를 알게 되어 마음이 약해져서일 수도 있다. 또, 검사의 지시에 의해 구속영장과 관련된 일을 하기는 했지만, 수사관의 생각에 피의자를 구속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경우에는 영장 발부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닐 수 있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비록 수사관의 업무로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한 가정의 가장이자 노모의 사랑스러운 아들 그리고 어린아이의 듬직한 아빠인 한 사람을 내 손을 통해 구치소에 보냈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성취감, 후련함, 동정, 안타까움, 불만, 미안함 등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여서 결국 소주 한잔 기울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정말 오로지 기쁜 마음으로 술을 마시는 수사관들도 있다.

 

  그러나, 실은 영장이 기각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정성껏 구속 필요 이유에 대한 수사보고서를 쓰기도 하고 관련 자료도 열심히 찾아 첨부해서 검사의 영장청구에 일조했는데, 영장이 기각이 되면 내가 일을 잘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래서 판사 탓하면서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면서 어떤 점이 부족해서 기각을 당했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결국 이래저래 술을 마시는 것이고, 검찰 일을 하면서는 술을 피할 수 없다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래저래 술을 마실지언정, 검찰수사관으로서 근무할 때에는 내가 수사하여 영장청구한 사람이 구속되기를 바랐다. 아무 이유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어쨌든 영장발부가 되었다는 것은 내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입장이 바뀌어 변호사로 일을 하는 지금은 당연히 내가 변호하는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영장발부 여부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영장이 발부되면 슬프다고 술 한잔 하고, 영장이 기각되면 기쁘다고 술 한잔 하니, 업무가 문제가 아니고 그냥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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