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피해자가 되면 범죄의 경중을 떠나서 상당한 불편함과 고통을 겪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인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이에 대해서 많은 범죄학, 사회학 교수와 같은 학자들 그리고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 실무자들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해 왔다.
다소 아쉬운 점은 기존의 범죄피해 예방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사회구조적 논의이거나 거대담론에 치우친 면이 있었다는 점이다. 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나 사회적 불평등 제거를 통한 갈등예방론이 그런 논의의 대표적인 예들이다. 범죄학, 피해자학 서적이나 관련 논문들을 읽어봐도 범죄피해 예방과 관련해서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내용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시 말해,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범죄피해를 예방하고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범죄피해자가 되지 않는 법”(배상훈 교수), “범죄는 나를 피해 가지 않는다.”(오윤성 교수)와 같은 부류의 책들이 출판되어서 독자들에게 범죄피해자가 되지 않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려고 하는 시도는 긍정적인 현상인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실무상 자주 발생하고 사회 문제로까지 여겨지는 특정 영역들 예를 들면 보이스피싱 범죄, 성폭력 범죄, 온라인 거래 사기 범죄에 대한 예방법이나 대처법 등에 관한 매뉴얼을 수사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제작하여 배포하는 움직임 역시 범죄(피해) 예방 및 이를 통한 사회적 효용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인다.
이하에서는, 필자가 검찰수사관이나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접했던 사건이나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 공부하면서 고민했던 사례들을 통해 나름대로 터득한 범죄예방이나 범죄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1. 범죄피해자가 될 만한 환경 만들지 않기
범죄피해를 당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범죄자, 가해자를 만나지 않는 것이다. 앞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이별범죄』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애초에 폭력적 성향이 있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이별범죄를 당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내 돈 떼어먹고 도망갈 사기꾼, 내 돈을 맡겨놨더니 들고 나를 횡령꾼 이런 사람들을 처음부터 만나지 않으면 범죄 피해를 입을 일은 전혀 발생하지 않을 것임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누구든 무인도에 살지 않는 이상 살아가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인간관계, 거래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폭력범죄, 강력범죄에 국한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나 주변을 통제하는 방법 등으로 범죄피해를 줄이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너무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다든가, 귀가 시 인적이 드문 곳 등을 피하여 동선을 구성하는 것이 그 예이다. 너무 뻔한 소리라는 비난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이 뻔한 소리를 많은 범죄학자나 실무가들이 계속 강조하고 있다. 차량을 운전하다가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피하거나 줄이기 위해서는 운전을 아예 하지 않거나 운전할 일을 줄이면 된다. 항상은 아니더라도 운전은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면이 있지만, 범죄 표적이 되기 쉬운 환경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비교적 역사가 짧은 범죄라고 할 수 있는 사이버 범죄, SNS 이용 범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후술 할 ‘SNS는 적정하게 사용하기’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SNS 계정을 여러 개 갖고 있거나 SNS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SNS 계정 해킹, 사생활 침해, 사이버 명예훼손 등 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범죄예방은 그 지극히 상식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범죄피해학 이론 중에 ‘생활양식-노출 이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잠재적 범죄자가 많이 포함된 집단과 접촉하는 사람들이나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시간대와 장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높은 피해율을 보인다는 내용이다. 이번 테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범죄피해자가 될 만한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것 역시 이러한 이론에 입각해서 설명이 가능하다.
2. 참고 양보하기
폭행, 상해 그리고 때로는 강력사건들 중 많은 사건에서 순간을 참고 양보하지 못해 범죄피해자가 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 화」를 저술한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 스님은 저서에서 “한 사람씩 화를 참으면 전쟁도 막을 수 있다.”라고 했다. 개인에게도 순간만 견디면 봉변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타려다가 객실에서 내리는 사람과 어깨가 살짝 부딪혔다. 과실을 따지자면 상대와 내가 7:3일 수도 있고, 5:5 또는 3:7일 수도 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이 짜증은 나지만 대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그냥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무시하며 지나갈 수도 있고 인상 한 번 쓰고 넘길 수 있다. 더 좋은 상황 대처법은 그냥 ‘아이코, 미안합니다.’ 하고 가볍게 고개 한 번 숙이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도 어지간해서는 당신에게 시비를 걸거나 싸움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고 누구한테 과실이 더 있는지 가리려고 하다 보면 언쟁이 생기고, 그러다가 성격이 지랄 같은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폭행이나 상해의 피해자가 되기 십상인 것이다. 혹자는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하고 지나가는 것을 두고 비겁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범죄 피해자가 되어서 겪을 불편함과 고통을 떠올린다면 그 누구도 이에 대해서 쉽게 뭐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예로,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화될 만큼 빈번하게 발생하고 종종 범죄로 비화되기까지 하는 아파트 층간소음 사례를 들어 보도록 하겠다.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이나 갈등은 자주 발생하지만 이것이 바로 범죄로 직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반복된 다툼과 분쟁으로 쌓인 앙금이 심적 고름 상태로 응축되었다가 결국 범죄의 모습으로 터지고 마는 양상을 띤다.
우리 집 아이들이 쿵쿵 뛰어다니고 시끄럽게 한다고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이에 대해서 항의하기 위해서 우리 집을 방문했다고 치자. 그리고, 그런 경우가 전에도 몇 번 있었다고 가정하겠다. 그 사람은 이미 잔뜩 성이 나 있거나 흥분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그에게 변명이나 맞대응을 하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벌집을 건드리는 것처럼 위험한 짓이다. 물론 그 사람이 소음에 유난히 민감한 사람일 수도 있고, 소음을 일으킨 것에 대한 미안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상대방의 태도가 극히 불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지하철 플랫폼에서의 예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이미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 사람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정중하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다면 폭행이나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피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옛말에 ‘참을 인(忍) 셋이면 살인도 면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살인범이 되는 것도 피할 수 있고, 살인 피해자가 되는 것도 피할 수 있다. 검찰에서 근무하면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양보 없이 자신만의 입장을 고수하다가, 봉변을 당하고 눈물로 호소하는 사례를 접하고 안타까움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참자. 잠시 참고 웃자. 잠시 못 참고 울지 말자."
3. 과도한 욕심 내지 않기
“이거 진짜 수익성 끝내주는 아이템인데, 무조건 대박 나게 되어 있어. 너한테만 알려주는 것이야.”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진짜 수익성이 좋은 대박 아이템이라면 본인이 빚을 내서라도 돈을 마련하여 본인 명목으로 투자를 하지 굳이 남에게까지 알려주면서 대박의 기쁨을 공유할 이유가 없다. ‘너한테만 알려주는 것’이라는 말은 사실 다수의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나한테만 알려 주는 이야기’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음마투전(飮馬投錢)이라는 말이 있다.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할 때 먼저 돈을 물속에 던져 물 값을 낸다는 뜻으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세상 이치를 표현하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세상을 아주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투자한 노력에 상응해서 결실을 얻는다는 평범한 진리에는 절실히 공감하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약간의 득실은 있을지언정 대개는 적정한 투자 대비 수익에서 왔다 갔다 하기 마련인데, 공짜나 다름없는 대박을 바란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고수익, 고리를 챙겨 준다는 말에 혹해서 사업에 투자를 하거나 돈을 빌려 준 뒤에 수익이나 이자는커녕 원금도 전혀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검찰에서 근무하다 보면 일상적으로 보는 투자사기, 차용사기 유형이다. 투자사기는 부동산 투자, 주식투자, 태양광사업 등 각종 사업 투자 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결국 고수익을 보장하고 피해자로부터 투자금을 받는 구조라는 점에서 그 분별은 큰 의미는 없다. 이와 같은 ‘고’ 자가 붙는 투자, 차용의 경우에서 ‘고’ 수익, ‘고’ 리는 결국 ‘고’ 위험과 같은 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고수익, 고리 보장을 약속하며 돈을 받아가는 것이 모두 사기와 같은 범죄는 아니겠지만, 그 위험 또한 본인이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투자나 차용 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말 어쩌다가 투자를 권하는 사람이 말하는 대로 대박이 터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더 큰 범행을 위한 미끼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사례에서 이런 행복감에 빠져 있는 피해자들을 적극 이용해서 피해자의 지갑에서 더 많은 돈을 털어가는 것을 봐 왔다. 설령, 미끼가 아니어도 그 한번 대박이 터진 것이 돈을 투자한 사람과 투자받은 사람의 운을 다 쓴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한 번의 대박으로 인해 느꼈던 행복감을 잊지 못해 계속 무리하게 투자하는 것은 종국에는 파멸로 치달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현대의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물욕(物慾)이라는 것을 안 가질 수는 없겠지만, 적당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그쳐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