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끊임없이 의심하기
친한 검사님 한 분이 식사 중 이런 말을 했다. 아들과 대화할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진짜야?”란다. 일하면서 거짓말하는 사람을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상대방의 어떤 말에 진짜냐고 반문부터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수사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 중 하나가 “사실입니까?”이다. 상대방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의심부터 하는 일종의 직업병인 것이다. 조금 피곤한 습관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범죄피해자 특히 재산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좀 가져도 될 만한 습관인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각종의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금전거래, 물품거래 관계일 수도 있고, 남에게 물건이나 사무 처리를 맡기는 위탁관계일 수도 있다. 좀 더 세밀한 구성요건은 따져봐야 하겠지만, 하자(瑕疵)가 있는 거래관계나 위탁관계는 사기죄, 횡령죄, 배임죄 등을 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거래나 위탁관계에 있어 상대방의 언행에 의심이 나는 점이 있다면, 당연히 이에 대해 물어보거나 확인을 해야 한다.
이때 상대방이 짜증을 내거나 조롱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면 상대방을 더욱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그 사람과 친분을 쌓아가려고 할 때 계속 이것저것 물어보고 따져보는 행동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거래관계에 있어서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물어보고 따져보는 것이 당신 재산의 “지킴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의심 나는 점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그 사람이 침착하게 그럴듯한 답변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거나 사기, 횡령 등 범행을 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언변이 특출 나게 뛰어나거나 교묘한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일 수도 있고, 당신의 능력 부족으로 상대방의 의도나 범행을 포착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교적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질문에 짜증스럽게 반응하거나 ‘내가 알아서 다 할 텐데 뭐 그리 깐깐하게 구냐?’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당신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고 있거나 꾸미고 있는 중일 확률이 높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의심할 때 만면에 웃음을 띠며 자신이 사기, 횡령 등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거나 자료 등 이런저런 것들을 확인시켜 주는 사람조차도 당신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태도도 아니고 당신 앞에서 짜증을 내며 당신을 면박을 준다? 아주 높은 확률로 당신을 상대로 범죄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이때는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가 서먹해지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해당 거래관계를 중단해야 한다.
5. 의심되면 즉각 멈추기
재산범죄에서 최초 피해가 아닌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앞서 본 것처럼, 금전 거래를 포함한 거래관계를 맺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을 하여야 하고 풀리지 않는 의혹이 있는 관계는 아예 처음부터 맺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 착오로 사기성이 있는 거래를 맺을 수 있다. 이때, 뒤늦게라도 해당 거래가 정상이 아니거나 범죄의 느낌이 난다면 즉각 거래를 중단하고 법적인 수단을 찾아보는 것이 현명한 결정일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그런 현명한 결정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뒤늦게라도 깨달을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그런 문제 있는 거래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좀 더 현실적인 문제로는, 자신이 맺고 있는 거래관계의 문제점을 뒤늦게나마 인식한다 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거래를 중단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자기 최면을 걸고 계속해서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할 수도 있다. 또는, 상대방이 추가적으로 돈을 주지 않으면 기존의 돈 역시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식으로 협박하거나 기존의 돈까지 같이 갚겠다는 등의 회유를 해서 계속 돈을 내 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1,000만 원 손해로 그칠 수 있는 것을 5,000만 원, 1억 원 손해를 보고 나서야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형사고소와 같은 법적 수단을 취하거나 변호사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기 싫어서 또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관성적인 생각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계속 돈을 꼬라박게 되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의심이 되면 냉철한 판단과 굳은 심지로 상대방에게 거래관계의 중단을 고하고 형사고소를 비롯한 법적인 조치를 취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추가적인 출혈을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추가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다.
6. 서면 작성을 생활화 하기
수사실무나 변호사 실무를 하다 보면, 거래관계를 비롯한 각종의 법률관계, 사실관계를 형성할 때 각종 서류를 챙기지 못해 나중에 낭패를 보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영수증, 계약서, 각서, 사실확인서 등등. 종종 피해자들은 “내가 돈 건네준 것은 엄연한 사실인데요.”, “우리가 이런저런 조건으로 계약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데요.” “그때 OOO 씨가 그 점에 대해서 이의 제기하지 않기로 분명히 약속했어요.”와 같은 말을 한다. 이때, “그에 대한 것을 입증할 증거나 자료가 있나요?”라고 물으면, “딱히 그런 것은 없지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나요?”라고 반문하곤 한다.
형사재판이든 민사재판이든 증거재판주의가 원칙이다. 재판의 전제가 되는 사실인정은 증거에 의해서만 한다는 것이 증거재판주의이다. 그런데, 그 증거라는 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제삼자에게도 증거로서 자격이 있고 믿을만하다고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어야 한다. 내가 분명히 어떤 일을 했고 주변에서 그 내용을 듣거나 봐서 다 알고 있으니, 수사기관이나 법원도 당연히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백날 우겨봐야, 그러한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으면 그러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취급될 뿐이다.
검찰수사관으로 근무 중 다뤘던 사건 중에 고소인과 피의자가 동업관계로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한 것인지가 문제가 된 경우가 있었다. 피의자가 자신이 사장으로 있는 인테리어 업체 계좌로 들어오는 돈을 자신이 별도로 운영하는 주방용품 업체 계좌에 넣다 뺐다 하였다고 하여 업무상 횡령죄로 고소당한 사건이었다. 고소인은 피의자와 동업으로 위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한 것이기 때문에 피의자가 위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은 공동소유의 금전을 마음대로 써 버린 횡령죄라고 주장했다. 반면, 피의자는 고소인과 동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고소인을 인테리어 공사를 주로 담당하는 사람으로 고용한 것이기 때문에 인테리어 업체 계좌로 들어온 돈을 자신이 운영하는 주방용품 업체 계좌로 넣었다 뺐다 한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동업관계인지 고용관계인지만 확정 지을 수 있다면, 피의자의 혐의 유무를 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동업계약서든 근로계약서든 어떤 형태의 계약서도 작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당사자들이 제출한 자료 분석, 참고인 진술 청취, 관련기관 문의 등을 통해, 고소인과 피의자가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한 것은 동업관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증거 불충분)’ 처분을 하였다. 혹자는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해당 사안에서는 고소인이 서면을 작성하지 않아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피의자와 동업관계가 아닌 고용관계였기 때문에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된 것이 아니었냐고. 그것도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해당 사안에서는 피의자의 행태 중에서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몇 있었다. 고소인은 동업관계가 확실한데 계약서가 없다고 이를 무혐의로 판단하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고 계속 주장했다. 고소인과 피의자가 (동업) 계약서를 작성해 놨더라면 결론은 달라질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서면을 생활화하는 것은 범죄 피해를 피하거나 줄이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차후에 어떤 분쟁이 있을 때 그 분쟁에서 쉽게 지지 않는 방안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다 아는데, 수사기관과 법원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며 원망과 울분으로 가득 차서 한탄하는 일이 없도록, 거래관계, 법률관계를 맺을 때 서면 작성을 생활화할 필요가 있다.
또, “서면 작성 생활화”라고 표현했지만, 흔적과 증거를 남기는 방법이라면 반드시 서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메모하고 사진을 찍어 두고 녹음을 하는 등 훗날의 분쟁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습관을 들이면 되는 것이다. 요즘에는 특히 휴대전화의 녹음이나 촬영 기능이 워낙 발달해서 휴대전화 하나만 잘 활용하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서면 작성은 충분히 대체하고도 남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