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어떤 명사 앞에 ‘준’이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뒤에 따라오는 명사에 비해 순위나 가치 등에서 열위에 있는 것처럼 인식된다. ‘준우승’, ‘준결승’, ‘준회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준’의 사전적 의미는 “구실이나 자격이 그 명사에는 못 미치나 그에 비길 만한”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에 비길만한” 이라는 의미에 주목 해 보면, 우리 형법전에도 범죄 앞에 ‘준’ 자가 붙는 죄명을 몇 개 찾을 수 있다.
준강간(강제추행), 준강도, 준사기 같은 범죄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똑같이 ‘준’자가 붙었다고 해도, 각 범죄에서 ‘준’이 의미하는 바는 각기 다르다.
먼저, 준강간, 준강제추행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를 강간, 강제추행에 버금가게 처벌을 하는 것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예가 술에 만취해 있거나 약에 취해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간음이나 강제추행 하는 것이다. 이는 폭행이나 협박이라는 강제적 수단을 쓰지 않았을 뿐이지 그 불법성이 강간, 강제추행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강간이나 강제추행과 유사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이때, 피해자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의 상태는 피해자 스스로 만든 것이거나 다른 원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어야지, 가해자가 그와 같은 상태를 야기한 다음에 간음이나 추행을 하는 경우에는 이 죄가 아니라 강간이나 강제추행으로 처벌받을 뿐이다. 회식 자리에서 만취한 동료를 간음하거나 추행하는 것이 이 죄로 처벌받는 전형적인 예 중의 하나이다.
준강도는 절도가 ‘재물의 탈환을 항거하거나’ ‘체포를 면탈하거나’ ‘죄적을 인멸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한 때에 강도의 예에 의해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적인 강도가 피해자를 상대로 폭행이나 협박을 한 뒤에 재물을 빼앗는 구조인데 반해, 준강도는 재물을 빼앗거나 빼앗으려는 단계에 있는 절도범이 피해자가 재물을 되찾으려고 하거나 피해자나 수사기관으로부터 체포당할 위협에 처했을 때 피해자나 수사기관 등을 폭행, 협박하는 구조이다. 결국 통상적인 강도와는 폭행‧협박 행위와 재물을 빼앗는 것의 시간적 순서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준강도죄를 ‘사후강도’라고도 한다. 물건을 훔치는 데 성공한 소매치기범이 피해자가 뒤쫓아 오자 그를 마구 때리는 경우가 준강도죄의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준사기는 ‘미성년자의 지려천박’ 또는 ‘사람의 심신장애’를 이용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를 사기죄에 준해 처벌하는 범죄를 말한다. 사기죄 성립을 위해 본질적인 요소가 “기망행위” 즉 상대방을 속여 재산상 이익 등을 얻는 것인데, 준사기죄는 이미 상대방의 지적, 심적 상태가 특별한 기망행위가 없어도 될 정도에 이른 경우 상대방의 그와 같은 상태를 이용하여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것을 사기죄와 동등하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법조문에 나와 있는 ‘지려천박’이란 용어는 많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지려천박은 “세상 물정에 어둡고 사려가 깊지 못하여 재산 거래에 있어서 지적 판단능력이 현저히 낮은 경우”를 의미한다고 한다.
수사실무를 꽤 오랫동안 한 사람들도 준사기죄를 한 번도 다뤄보지 못한 경우가 많을 정도로 실무에서 자주 적용되는 범죄는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검찰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딱 한 번 준사기죄 사건을 다뤄본 적이 있다.
한 출판사 사장이 정신지체가 있는 목사와 출판계약을 체결하고 원고 일부와 출판을 위한 비용 1,000만 원 상당을 받은 뒤 출판을 해 주지 않아 재산상 이익을 취했다는 혐의였다. 대질조사를 통해 목사의 심신상태 그리고 피의자가 계약불이행을 하게 된 경위 등을 확인한 뒤, 해당 사건에서는 목사의 지적 판단능력이 현저히 낮다고 보기 어렵고 계약 불이행에도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여 피의자가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준사기죄의 좀 더 전형적인 사례를 들자면, 부모님 소유의 고가 물품을 갖고있는 어린 미성년자에게 아주 헐값으로 해당 물품을 매수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앞에 ‘준’이 붙은 범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하지만,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준’ 자가 붙는 범죄가 통상의 범죄와 다른 것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도 해당 범죄로 피해를 입은 것은 명백한 사실로, 사건에서 적용되는 범죄가 강도, 강간, 사기이든 준강도, 준강간, 준사기이든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 형법에는 이런 범죄도 있고 어떤 경우에 이런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지 소개하는 차원에서 ‘준’이 들어간 범죄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