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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May 27. 2021

성범죄 이야기 1 : 성범죄란?

 단순히 “성범죄”라고 하면 “성(性)에 관련된 범죄”를 의미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막상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성범죄에 해당하는지 말해 보라고 하면 선뜻 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성폭력 센터”, “성폭력 상담소” 같은 용어에서처럼 성폭력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되는데 성범죄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다. 또, 성희롱은 성폭력이나 성범죄인가? 검찰에서 성폭력 범죄 전담부서에서도 근무를 해 보았지만 막상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먼저, 성범죄(sex offense)는 용어 자체에서 알 수 있듯 ‘성에 관련된 범죄’이다. 우리 형법전(刑法典)에서 성에 관련된 범죄를 규율한 부분을 찾아보면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제22장 성풍속에 관한 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32장의 강간과 추행의 죄」이다. 전자에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지금은 폐지된 간통죄와 음행매개, 음화반포, 공연음란죄 등이 있고, 후자에는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준강간‧준강제추행, 강간상해치상, 강간살인치사, 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죄 등이 규정되어 있다.  


 법조문 상으로는 ‘성풍속에 관한 죄’가 ‘강간과 추행의 죄’보다 앞에 위치해 있다. 이는 우리 형법전 각칙상 '국가적 법익에 관한 죄'–'사회적 법익에 관한 죄'–'개인적 법익에 관한 죄' 순서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는 설명의 편의를 위해 ‘강간과 추행의 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강간죄는 개인적 법익에 관한 것이고, 그중에서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동에 대해 규제를 하는 것이다. 누구나 성관계를 할지 여부 그리고 성관계의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는데, 이를 “성적 자기결정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행복추구권 그리고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서 유래하는 기본권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강간은 이러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이는 강제추행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의 성적 행동이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아니라 강제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 없는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그것은 폭력에 다름 아니다. 성폭력의 본질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즉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도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동을 강행하는 데 있다.


 결국, 형법상 강간이나 강제추행과 같은 죄가 폭행, 협박이라는 전형적인 강제적 수단을 사용한 대표적인 성폭력 범죄에 해당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의 충족을 위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사람이 붐비는 장소에서 신체접촉을 하고, 타인이 용변 보는 것을 엿보고, 타인의 신체를 촬영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이라고 함) 상의 범죄 역시 성폭력인 것이다. 참고로 성폭력처벌법에는 강간, 강제추행, 특수강간, 강도강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형법상 ‘강간과 추행’의 죄 이외에 친족강간 등, 장애인강간 등, 13세 미만자에 대한 강간 등의 죄를 규정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성희롱’도 성폭력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사람에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성적인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주는 일체의 행위가 성희롱이 될 수 있다. 성희롱은 신체적, 언어적, 시각적 행동 어떤 것으로도 가능하다. 러브샷을 강요하는 행위, ‘살결이 뽀얘서 남편이 좋아하겠다.’는 말, 남성의 나체 사진을 여성에게 보여주는 행동이 각 신체적, 언어적, 시각적 방법에 의한 성희롱의 대표적인 예들이다. 

 

그러나, 모든 성폭력 행동이 범죄로 규율되는 것은 아니다. 일정 수준의 행위는 형벌로 다스릴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합의 그리고 그 사회적 합의가 입법자의 의지로 구현된 법률 규정이 있어야 특정 행동을 범죄로 보아 처벌할 수 있다. 주로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에 있는 여성들 중심으로 다양한 성희롱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성희롱에 대해서는 극히 일부의 행위만 범죄로 규정하고 형벌로 규율하고 있을 뿐이다. 대표적인 예가 성폭력처벌법상의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이다.     


제13조(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성폭력처벌법 제13조에 포섭될 수 있는 행동을 제외한 성희롱 행위는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이나 직장 내 고용주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책임추궁을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참고로, 규모가 조금 있는 검찰청에는 성폭력 전담부서가 있다. 성폭력만 담당하는 것은 아니고 특정 부가 성폭력 사건을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와 함께 다루는 전담부서로 지정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그중에서도 성폭력을 주 전담으로 하는 검사실을 ‘성폭방’이라고 한다. 

 검찰수사관들 중에는 성폭력 사건만 다루다 보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면서 성폭방 근무를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일반인들과 차원이 다른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거의 매일 같이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수사하다 보면 정신이 피폐해진다는 이유에서이다. 차라리 복잡한 재산범죄를 수사하는 게 더 낫다고 한다.

 반면에 성폭방 근무를 선호하는 검찰수사관들도 있다.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독특하기는 해도, 범죄 자체는 크게 복잡하지 않고 범행수법도 뻔한 면이 있어서 재산범죄나 부패범죄 사건처럼 죄의 성립 여부를 따지기 위해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성폭력 전담부서 근무를 지원하고, 실제 근무를 하면서 전문성을 쌓아 검찰에서 시행 중인 전문수사관(성폭력 분야)으로 인증받기도 한다.         



 다음으로, 성풍속에 관한 죄는 지금까지 살펴본 성적자기결정권에 관한 범죄 또는 자유에 관한 죄와는 달리 특정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과 관련된 범죄가 아니다. 성풍속에 반하는, 다시 말해 성과 관련된 그 시대 사람들의 인식과 가치관 그리고 관습 등에 반해서 하는 행동이 범죄로 규정된 것이다. 그런데 한 시대의 사람들의 성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관이 항상 일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성풍속에 관한 죄에 대해서는 개념의 추상성이나 형법의 탈윤리화 등을 근거로 폐지나 위헌 논의가 있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맥락에서 간통죄가 오랜 논란 끝에 폐지가 되었고, 음란물 유포죄나 공연음란죄 같이 구성요건에 ‘음란’이라는 개념이 들어간 범죄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논의가 계속 있어 왔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논의를 듣다 보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과거 바바리맨들이 주로 하던 짓 그리고 길거리에서 자위행위를 하다가 검거된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그 사건에서 분명히 피해를 입는 상대방이 있었던 것 같다. 전혀 원하지 않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거나 불쾌감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는 사람들을 범죄피해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영리를 목적으로 성적 발육이 미숙한 미성년자나 불특정한 남자를 상대로 성생활을 하지 않는 여자로 하여금 간음을 알선하게 하는 행위(일종의 매춘 알선)도 이들의 성적 발육이나 성적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또, 누가 봐도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고 혐오감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음란한 그림 등을 유포나 전시시키는 행위도 다수의 사람에게 원치 않는 그림 등을 보게끔 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폭력성 내지는 강제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성이나 강제성의 정도는 성풍속에 관한 죄에 규정되어 있는 범죄의 종류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범죄들을 순수한 의미에서 성풍속에 관한 범죄라기보다는 공연음란, 음행매개, 음화반포 등의 행위에 내포된 강제성, 폭력성에 주목하고 그로 인해 불쾌함이나 수치심 등을 느낀 사람들을 범죄피해자라고 보는 것이 일반의 법감정에 맞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폭력처벌법에서도 이러한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동법은 현행 형법상 ‘성풍속’에 관한 죄에 규정되어 있는 음행매개죄, 음화반포등 죄, 공연음란죄를 모두 ‘성폭력범죄’의 범주에 넣어서 규율하고 있다. ‘성폭력범죄’의 피해자인 사람은 수사나 재판을 받을 때 일정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고, 수사기관이나 법원도 피해자의 신원 및 사생활의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되는 의무를 부담한다. 비록 형식적으로는 성풍속에 관한 죄로 규정되어 있어도 실제로는 분명히 개인의 피해라고 볼 만한 것이 있어 보이지만, 전통적인 성폭력 개념에 의하면 형사절차에서 배제되어서 수사기관 등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한낱 참고인으로만 취급되었던 것이 부당하다는 인식이 반영된 입법으로 보인다.


 이하에서는 전통적인 분류법에 따라 차례대로 성폭력 범죄와 성풍속 범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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