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스매니아 May 27. 2021

성범죄 이야기 2 : 성폭력범죄 (1)


  강간     


 많은 사람들이 ‘성폭력’ 하면 ‘강간’을 쉽게 떠올리듯이 강간은 대표적인 성폭력 범죄이다. 형법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제297조)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과거에는 강간죄의 객체가 부녀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자가 폭행이나 협박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남자를 간음해도 강간죄가 아니라 강제추행죄로만 처벌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성전환자를 강간해도 자연적 성(性)이 염색체가 XX인 남성이라는 이유로 강간죄가 아닌 강제추행죄로 처벌하던 시절도 있었다. 개정된 법조문에는 “‘사람’을 강간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으니 성별에 관계없이 사람을 상대로 강제로 간음하면 강간죄로 처벌받게 되었다.       


 또 한 때는 부부간 강간죄가 성립되는지가 논의되기도 했었다. 과거에 배우자가 강간죄의 객체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주장했던 논거는 부부 사이의 내밀한 영역에까지 국가 형벌권이 개입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과 부부간에는 민법상 동거의무가 있다는 점 등이었다. 법원에서는 2011년에 처음으로 부부간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는 판결을 냈다. 술을 마시고 귀가한 남편이 아내와 다투다 흉기로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뒤 더 때릴 듯이 위협해 겁을 먹은 아내를 강간한 혐의에 대해 상해 및 강간죄를 인정한 것이다. 이 판결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부부간의 동거의무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인한 간음까지 감내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원하지 않는 성관계에 대해서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이른바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고, 이에 대한 침해는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극히 상식적인 내용이 법원의 공식적인 태도로 수용되기 전까지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강간 자체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이지만, 그 패륜성이 더 심한 강간 범죄유형이 있다. 바로 친족 강간과 장애인 강간 같은 것들이다. 우리 법에서는 이 두 가지 범죄는 형법이 아닌 성폭력처벌법에서 다루고 있고, 각각 높은 법정형이 규정되어 있다.    


 특히 절대 있어서는 안 될 범죄로 생각되지만, 의외로 자주 발생하는 범죄가 친족 특히 자녀를 강간하는 경우이다. 성폭력 전담부서에 근무할 때 친족 강간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한 번은 구속 피의자가 자신의 친딸을 강간한 혐의로 송치되어 왔다. 당시 피의자가 의외로 침착한 태도로 조사를 받아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자의 변명은 더욱 가관이었다. 범행 경위를 묻자 딸과 함께 거실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딸이 자신의 성기를 만지작거리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성적으로 흥분하여 딸에게 몹쓸 짓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 식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치 딸이 아버지를 유혹했다는 말처럼 들려, “피의자의 진술은 피해자가 피의자를 유혹했다는 진술처럼 들리는데,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피의자가 고개를 약간 비스듬히 하여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담담한 어조로 내뱉는 말이 “네, 뭐 그런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정리하셔도 될 것 같네요.”라는 것이었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피의자의 비윤리성과 뻔뻔함에 대한 분노는 그 이후에야 밀려왔다.      

 더 슬픈 사실은 판결문들을 읽다 보면 이보다 더 죄질이 안 좋은 범죄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때로 인터넷에서 죄질이 정말 좋지 않은 범행을 한 사람에 대한 기사에 “사탄이 울고 간다.”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하는데, 정말 사탄에게 휴가를 주려고 작정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는 사건들이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성폭력 전담부서, 성폭방에서 검찰수사관으로 근무하다 보면, 이와 같은 사탄 영접(?)은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 된다.   

    


강제추행     

 우리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제298조) 앞서 본 강간죄와는 행위가 간음인지 추행인지에 의해 구별된다. 비교적 그 의미가 명확한 ‘간음’과는 달리 ‘추행’은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특정 사건에서 특정 행위가 추행에 해당되는지 다퉈지기도 한다.  


 한때 수험생활을 하던 시절에 형법 공부를 하면서, 여성의 젖가슴을 옷 위로 만지는 것은 강제추행이 아니라는 식으로 무조건 외웠던 것 같다. 반면, 상대방의 상의를 걷어 올려 젖가슴을 만지고 하의를 끌어내린 행위를 강제추행죄의 추행으로 본 대법원 판례도 있어, ‘옷 위로 젖가슴을 만지면 추행이 아니고, 옷을 벗기고 만지면 추행이다.’는 식으로 무작정 암기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그리고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킨다면, 옷 위인지 아래인지가 중요한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강제추행에서 추행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피해자의 감정이나 입장이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가해자(아직 혐의 유무가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아니므로 ‘피의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역시 추행의 의도 같은 주관적 요소를 부인하면서 강제추행 성립 여부를 다투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피해자 및 피의자의 진술, 참고인의 진술이나 CCTV 등 물증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추행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강제추행은 앞서 본 강간과는 달리 범죄의 흔적이 남지 않는 경우도 많아 혐의 유무 판단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강제추행죄에 있어서 추행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가 다퉈지고, 또 그 행위의 주관적 의도도 문제가 되는 한편 그와 같은 것들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되는 참고인 진술, CCTV 등 물증마저 빈약하여 강제추행 여부에 대한 판단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자주 직면한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다. 식당 통로에서 우연히 마주쳐 지나가는 여성의 엉덩이를 약 1.3초간 움켜쥐었다고 하여 강제추행 혐의로 수사를 받던 남성의 배우자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취지로 글을 올려 국민적 관심을 받은 사건이다.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부터 남성 편을 드는 사람과 피해 여성의 편을 드는 사람으로 나뉘어 갑론을박(甲論乙駁) 했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까지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며 유죄가 확정되었다. 법원도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로 엄청난 고심을 했을 것이다. 실체적 진실은 하늘만이 알겠지만, 어쨌든 이 사건은 강제추행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임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강제추행죄는 앞서 본 강간죄와 마찬가지로 2013년 형법 개정으로 친고죄에서 제외되었다. 형법 개정 전에는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나 고소취하장을 제출하면 수사 단계에서는 ‘공소권 없음’ 결정, 법원에서는 ‘공소기각’ 판결을 하면서 추가적인 실체적 판단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강제추행죄나 강간죄가 더 이상 친고죄가 아닌 관계로 이제는 설령 피해자와 합의가 되어서 처벌불원서나 고소취하장이 제출된다고 하더라도, 양형에 반영이 되거나 수사 단계에서는 기소유예, 법원에서는 선고유예나 집행유예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유사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다른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점이나 행위의 불법성 측면에서 강간죄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단순히 성기와 성기의 결합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비교적 형량이 낮은 강제추행으로만 규율되는 점에 대해 꾸준한 지적이 있어왔다. 이에, 2012년에 유사강간죄라는 죄가 형법에 신설되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성기를 제외한 구강, 항문 등 신체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성기를 제외한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형법 제297조의 2)      


 어찌 보면, 본질적으로 강간죄와 다른 점이 없기 때문에 법정형도 강간죄와 동일하게 규정되어 있을 법도 한데, 입법자는 하한의 경우는 일반 강간죄보다는 1년 낮게 규정하는 결단을 했다. 하지만, 상한은 강간죄와 같기 때문에 이 부분은 특정 사건에서 죄질이나 피해자와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구형이나 양형 단계에서 보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 조문을 보면, 구성요건 중 앞부분은 ‘구강, 항문 등’이라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 발생하는 범죄상으로도 삽입 대상이 되는 곳은 제한적인 편이다. 반면에, 구성요건 중 뒷부분에 등장하는 신체 일부나 도구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다. 굳이 지면을 통해서라도 언급하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몇 해 전에 어떤 문화계 유명인사가 제자들에게 발성을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여성 제자의 성기에 나무젓가락을 꽂아 주었다고 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런 사건은 죄질의 불량함에 있어 평균에도 못 미칠 정도로 각양각색의 변태적인 사안들이 넘쳐난다.     


작가의 이전글 성범죄 이야기 1 : 성범죄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