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검찰수사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기업 사무실이나 유명인의 자택 등에 들어가 압수‧수색을 한 뒤 압수물을 담은 큰 박스를 들고 나오는 장면일 것이다. 마치 전리품처럼 압수한 물건들을 담은 박스를 의기양양하게 운반하는 모습은 검찰수사관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 상징적 이미지에 부합하려고 했었던 것인지 아니면 기자들에게 좋은 소스를 제공해 주고 싶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어떤 현장에서는 검찰수사관들이 빈 박스를 들고 나오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수사를 하다 보면 증거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에 나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압수물 운반 또는 압수‧수색영장 집행 자체가 검찰수사관의 주된 업무라고 볼 수는 없다. 특히 7급 이상의 검찰수사관 중 상당수가 근무하는 형사부 검사실은 경찰에서 송치한 사건을 주로 담당하기 때문에 압수‧수색을 나가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하지만, 특수부, 금융조사부나 수사과 같은 인지부서에서 근무하는 경우에는 수사 중 증거 확보를 위해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집행에 나서는 일이 왕왕 생긴다. 물론 형사부에서도 부 차원의 인지수사를 하거나 특정 검사실에서 증거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때에는 압수수색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집행을 위해 압수수색 장소에 가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검찰에서 수사의 대상으로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수사 대상인 사람의 가족이나 동거인 또는 회사 직원일 수도 있다. 이들에게 검찰수사관의 소속과 신분을 밝히고 영장을 제시하면서 영장집행에 협조할 것을 요청한다. 집행하는 시간은 사건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 1시간 이내에 끝나기도 하지만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멀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검찰청 직원들이 지방법원 판사가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나왔다고 하면, 큰 저항이나 이의 없이 압수수색 절차에 순순히 협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일반적일 것일 뿐 예외는 물론 존재한다. 압수수색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평온한 사생활 및 재산권이 심각하게 위협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압수수색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경우에는 온 힘을 다해 저항하기도 한다. 그래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현장에서 가끔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노동조합 사무실, 대기업 사옥, 정치인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조합원, 직원, 비서 등이 영장집행을 하려는 검찰수사관과 몸싸움을 벌였다느니 험악한 분위기 속에 일단은 집행을 보류했다는 등의 내용이 그런 것들이다.
필자도 한 번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가 있는 피의자의 주거지에 선임 수사관 한 명과 팀을 이뤄 압수수색을 나갔다가 봉변을 당할 뻔한 적이 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만 발부받고 체포영장은 발부받지 않아 신병확보에 대한 부담감이 거의 없다는 점과 피의자의 연령이 당시 60살이 조금 넘은 고령자라는 사실 때문에 다소 방심한 측면이 있기는 했다.
피의자의 주거지에 도착하여 동행한 관용차량 운전원 분에게 피의자의 집 벨을 누르고 안에 있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해 달라고 부탁했다. 피의자의 동거인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우리는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김 OO 씨 계시나요?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왔습니다. 법원에서 압수수색영장 받아서 왔으니 협조해 주세요.”라고 하였다. 피의자의 동거인이 집 내부를 향해 “검찰에서 오셨다는데요.”라는 소리를 치자마자, 피의자가 2층 계단에서 쿵쿵쿵 소리를 내며 서둘려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서 신경질적으로 “검찰에서 왔다고잉? 시방 여기 가위 어디 인냐? 아! 여기 가위 어디 인냐고?”라고 소리치더니 다짜고짜 부엌 쪽으로 뛰어갔다.
당시는 검찰수사관으로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기도 하고 해당 사건은 필자가 주무(담당)도 아니어서,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동거인이 “검찰”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반사적으로 짜증스럽게 반응하면서 흉기를 찾는 등 거칠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니, ‘피의자도 검찰의 습격(?)에 적잖이 당황해서 어떻게 할 줄을 모르는구나, 저 사람이 지금 정서적으로 엄청 불안한 상태구나.’는 생각이 스쳐갔다. 이런 찰나 경험 많은 선임 수사관이 피의자를 진정시키고 영장을 제시하면서 피의사실과 압수수색의 필요성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했다. 피의자도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곧 진정이 되었는지 이후 영장집행에 협조했다. 나중에 피의자가 검찰 조사에서 말하기를 “안 그래도 OOO(진정인)이 검찰에 들어가서 제 범죄사실에 대해서 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검찰청에서 압수수색 나오기 며칠 전부터 계속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지?’ 하면서 고민하고, 수사관님들이 우리 집에 오는 순간에도 검찰 수사 받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검찰에서 나왔다는 소리를 들으니 저도 모르게 극도로 흥분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에서 빈 박스 논란에 대해 언급했었는데, 설령 검찰수사관들이 실제 빈 박스를 나른다고 해도 그 모습이 반드시 압수수색이 실패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과거에는 피의자의 사무실이나 자택 등 압수수색 장소에 들어가 서류뭉치, 통장, 현금다발 등등을 박스에 가득 담아 나오는 검찰수사관의 모습을 보는 것이 흔했다. 물론 이는 압수수색을 성공적으로 집행하였음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이다. 피의자가 압수수색을 예상해서 중요 증거물을 숨겼거나 파괴해 버려서 허탕 칠 때도 있고, 압수수색 장소가 피의자의 주거지나 사무실이 아니어서 압수수색의 집행 자체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실패한 압수수색의 경우에는 당연히 빈 박스를 갖고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컴퓨터 하드디스크나 USB 등 외장하드에 범죄와 연관성이 있는 데이터들이 저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공적인 압수‧수색 집행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종이서류 같은 유형의 증거물을 잔뜩 수거해 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 같으면 압수수색 집행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압수할 물건을 수색하고 있을 검찰수사관들은 처음 영장 제시하고 초반 한 동안만 분주하고, 그 이후부터는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 수사관들이 외장하드에서 데이터 추출하는 작업을 빨리 마무리 하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장면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집행이 종료되고 검찰청으로 돌아와 압수물을 분석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압수물이 거의 없는 경우도 많아, 포렌식 수사관의 압수물 분석결과가 회신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점점 일반 검찰수사관보다는 디지털 포렌식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디지털 포렌식 수사관들의 비중과 역할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