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 교차된 길 위에서 (2)
일주일 후.
선미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갤러리 골목에 도착했다. 가느다란 골목을 따라 느리게 스며드는 바닷물 같은 바람, 낮게 처진 전깃줄에 매달린 참새 소리, 진열창에 비친 하늘의 흐릿한 구름이 여름의 끝을 천천히 미는 중이었다. 갤러리 유리문에는 하얀 손글씨로 제목이 적혀 있었다. 도시의 일상. 문을 미는 순간, 차가운 공기와 사진 용지의 잉크 냄새가 섞여 작은 파동처럼 가슴팍을 스쳤다.
“오래 기다렸죠?”
민호가 뒤에서 가볍게 달려와 선미 옆에 섰다. 땀은 이미 식었는지 이마가 말끔했다. 오늘도 그는 단정했지만 지난번보다 한 톤 낮춘 차림이었다. ‘지나치지 않게 다정한’ 사람이 고르는 옷의 색감.
“아니에요. 방금 왔어요.”
선미가 웃으며 말했다. 그들의 말투는 여전했지만, 시선이 머무는 시간은 조금 더 길어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흑백의 사각 프레임들이 벽을 천천히 점유하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천장의 트랙 조명이 사진 속 특정한 지점을 가리켰고, 사람들의 숨이 그 빛을 따라 얇게 흔들렸다. 유모차를 밀던 젊은 엄마가 발걸음을 멈춰 한 장의 사진을 오래 바라보는 동안, 저편에서는 중년 남성이 주머니 속 손을 빼지 못한 채 고개만 기울여 작품 설명을 읽고 있었다. 사진 속 도시가 흑백으로 잠시 멈춘 사이, 갤러리의 도시가 조금 더 조용해졌다.
“어때요? 마음에 드세요?”
민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갤러리 음향처럼 불필요한 잔향이 없었다.
“좋아요.”
선미가 한 작품 앞에서 멈춰 섰다.
“이런 소박한 사진들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아요.”
프레임 속에는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중년 부부가 있었다.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살짝 기운 어깨가 자연스레 맞닿아 있었다. 바람이 부는지 여자의 얇은 스카프 끝이 얼룩처럼 흐려져 있었다. 그들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멈춰 있는 듯 보이는 시간, 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몸의 각도. 오래된 호흡이 만들어내는 균형.
“저런 모습… 부러워요.”
선미의 목소리가 얇게 낮아졌다. 사진 속 사람들이 품은 온기들이 프레임 밖으로 스며 그의 손등을 적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요?”
민호가 시선을 사진과 그녀 사이에 번갈아 두었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요. 기대는 걸 부탁하지 않아도, 어느새 그렇게 서 있는 사이.”
민호는 그 말에 가슴이 묵직해졌다. 선미가 오래 전에 구겨서 넣어둔 외로움이, 지금 조용히 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선미 씨도… 외로우세요?”
조심스러웠지만 피하지 않는 물음.
“가끔요.”
선미가 웃었지만, 웃음은 길지 않았다.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편하고, 익숙하고… 그래서 더 무서워요. 사람을 들이는 게.”
잠시 침묵. 두 사람의 숨이 같은 리듬으로 고쳐 앉았다.
다음 작품 앞.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여성의 뒷모습. 머리끈 아래로 흘러내린 가느다란 잔머리, 책장 가장자리에 빛이 앉아 종이의 결이 또렷해지는 장면. 카메라는 멀지 않은 거리를 유지한 채, 그녀의 “혼자이면서 집중된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 애쓴다.
“이 사진은 어떠세요?”
민호가 물었다.
“음… 익숙해요.”
선미가 미소를 지었다.
“마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요.”
“도서관에서의 선미 씨?”
민호가 가볍게 묻자, 선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해요. 혼자 있을 땐 외롭다고 생각하는데, 또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불편할 때도 있어요. 내가 어떤 모양으로 보여질지 신경 쓰느라, 진짜 내가 사라지는 느낌.”
민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저도 그래요. 현장에서는 늘 ‘정답’이 필요하거든요. 균형과 하중, 허용오차. 그래서인지 관계에서도 자꾸 계산을 하게 돼요. 그런데 사람 마음은… 도면 같은 게 아니라 자꾸 번지죠.”
둘은 같은 속도로 전시장을 걸었다. 오래 머무는 법을 조금씩 배우는 사람들처럼. 작품 속 얼굴들이 낯선데도 묘하게 익숙했고, 사진마다 ‘살아낸 시간’이 분필가루처럼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자 바깥 공기가 달라졌다. 갤러리 문턱을 넘는 순간, 색이 돌아왔다. 골목의 초록 간판, 붉게 익어가는 천도복숭아 진열대, 누군가 건네받는 아이스 라떼의 우윳빛.
근처 카페. 창가 자리. 얼음이 벽을 치는 소리, 커피 분쇄기의 낮은 진동, 이따금 들리는 웃음. 이런 사소한 소리들이 두 사람의 맥박을 조금 낮춰 주었다.
“오늘… 고마웠어요.”
선미가 먼저 말했다.
“같이 보니까 더 좋았어요. 혼자일 때는 그냥 지나쳤을 장면도, 둘이면 자꾸 멈추게 되네요.”
“저야말로요.”
민호는 컵을 양손으로 감쌌다.
“누군가와 같은 프레임을 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했어요. 같은 사진인데, 당신이 옆에 있으니 다른 이야기가 들렸어요.”
짧은 정적이 스쳤다. 안 묻고 넘어갈 수 있는 질문을, 선미는 굳이 입 밖으로 꺼냈다. 오늘은 그런 날이라고 마음이 결심한 듯.
“민호 씨는… 결혼 생각, 안 해보셨어요?”
민호의 손가락이 컵 가장자리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해봤죠.”
그가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아요.”
“확신이요?”
선미가 되물었다. 한 단어가 불빛처럼 탁자 위에 올려졌다.
“네. 사랑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겠지만, 함께 살아간다는 건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잖아요. 생활의 습관, 서로의 피로를 다루는 방식, 싸운 뒤 돌아오는 길. 저는… 제가 아직 그 모든 것의 무게를 견딜 준비가 다 됐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중이에요.”
선미는 그 신중함이 낯설지 않다고 느꼈다. 오히려 안도에 가까운 감정이 배 위로 떠올랐다.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면… 분명 좋은 사람과 만나실 거예요.”
입은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은 그 말을 더디게 통과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의 둥근 모서리가, 자신에게도 닿기를 몰래 바라면서.
“선미 씨는요?”
민호가 되물었다.
“당신은… 어떤가요?”
“저는…”
선미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던 오후의 빛이, 갑자기 어깨 위에서 멈췄다. “솔직히 포기했어요. 아니, 포기했다기보다… 접어둔 것에 가까워요. 이 나이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건… 모서리가 많은 상자를 가슴에 안는 일 같아서. 부딪히면 아프고, 열어보면 또 텅 비어 있을까 봐.”
민호는 가만히 그녀를 보았다.
“포기라니… 너무 이르지 않나요?”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지 않았고, 대신 다정했다.
“그래요?”
선미가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의 질문을, 스스로 받아 적듯 되물었다.
“네.”
민호가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좋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잖아요. 가끔은—사진처럼—빛과 그림자가 우연히 겹칠 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얼굴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의 말이 가볍게 탁자 위에 내려앉았다가, 천천히 그녀의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선미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미를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말의 온도가 알려주는 것이 있었다.
같은 시간, 바닷가 근처 작은 찻집. 유리문 밖으로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풍경이 살짝 흔들렸다. 물결 무늬 커튼이 숨을 쉬듯 들썩였고, 차 주전자의 뚜껑이 보일 듯 말 듯 반짝였다. 수진과 태석은 오늘도 엽서를 주고받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나무 탁자에는 낡은 우표와 잉크패드, 그리고 손끝으로 눌러 그려낸 작은 스탬프들이 조용한 목소리로 흩어져 있었다.
“오늘은 어떤 문장을 준비하셨어요?”
수진이 먼저 물었다. 같은 질문을 매번 하지만, 그날그날 조금씩 다른 떨림이 섞여 나왔다.
태석이 엽서를 건넸다. 단정한 필체.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보다 큰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수진이 자신의 엽서를 보였다. 둥글게 흐르는 글씨.
“진짜 여행은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오늘도… 묘하게 비슷해요.”
태석이 웃었다. 두 문장이 서로를 향해 천천히 걸어와 한가운데서 만나는 순간.
“그러게요. 신기하죠.”
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공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동조가 있었다. 상대의 말을 기다릴 줄 아는 리듬, 자신이 조용히 비워지는 순간 상대가 조금 더 선명해지는 배려.
잠깐의 침묵 끝에, 태석이 컵받침을 손끝으로 돌리며 말했다.
“수진 씨, 혹시… 제안 하나 드려도 될까요?”
“어떤 제안이요?”
수진의 눈이 둥글게 커졌다. 긴장을 숨기지 않는 눈.
“다음 주에 서울에서 작은 문학 행사가 있어요. 시인들의 낭독회인데… 혹시 관심 있으시면 같이 가실래요? 당일치기예요.”
수진의 표정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천천히 풀렸다. 서울까지 함께 간다는 것—그 말 속에는 물음표들이 여러 개 숨어 있었다. 이동 거리, 시간, 그리고 마음의 거리.
“서울까지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네. 우리 둘이 주고받은 문장들과 분위기가 닮았을 것 같아서요. 물론, 부담되시면—”
“아니에요.”
수진은 그의 말을 끊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가고 싶어요. 다만… 조심스러워서요.”
“저도 그래요.”
태석이 짧게 웃었다.
“하지만 가끔은,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는 자신이 쓴 문장을 다시 바라봤다.
“제가 쓴 말대로네요. 두려움보다 큰 무언가를 찾는 것.”
“그럼… 가봅시다.”
수진이 말하고 나서야 자신의 심장이 빨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엽서 모서리를 만지던 손끝에 체온이 조금 더 올라 있었다.
그때 태석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잠깐 밖으로 나가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그의 얼굴에 작은 웃음이 남아 있었다.
“친구한테 전화 왔어요. 요즘 재밌는 일이 많대요.”
“어떤 일인데요?”
“지난 번에 말씀드렸죠? 그 친구가 옛날 동창을 또 다시 만났다고.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그는 말을 길게 늘이지 않았다. 대신 ‘좋아한다’는 동사의 온도가 컵의 따뜻함과 닮아 있었다.
수진은 어깨 위로 내려앉던 긴장을 한 겹 풀었다.
“좋은 일이네요. 옛 인연을 다시 만난다는 게.”
“맞아요.”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연이란 게 참… 돌아서도 돌아오네요.”
도심의 작은 공원.
해가 기울며 벤치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반짝이는 바늘땀처럼 떨어졌다. 저 멀리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이 튀었고, 누군가는 강아지 목줄을 느슨하게 풀어 주며 천천히 걸었다. 바람은 한 번씩 방향을 바꾸며 사람들의 머리칼을 정리했다 어지럽혔다.
영미와 김준호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두 손 사이의 거리, 무릎의 각도, 시선의 높이가 놀랄 만큼 비슷했다. 함께 걷고 함께 앉는 시간이 쌓이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닮아갔다.
“준호야, 오늘 날씨… 정말 좋다.”
영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구름이 얇게 펴지고 햇살이 도화지 뒤에서 비치듯 번졌다.
“응. 이런 날엔 산책하기 딱 좋지.”
김준호가 짧게 답했다. 그 한마디 안에 ‘네가 옆에 있으니 더 좋다’까지 들어 있었다.
“요즘… 행복해.”
영미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떨렸다. 진실을 말할 때 사람의 말끝은 드물게 떨렸다.
“나도.”
그는 그 떨림을 덮지 않았다. 덮지 않는 것이 배려일 때가 있었다.
“근데 동시에 불안해.”
영미가 부드럽게 내리던 눈을 손바닥 쪽으로 떨구었다.
“이 감정이 계속될 수 있을까 싶어서. 언젠가, 우리가 ‘현실’이라는 말 앞에서 갑자기 작아지면 어떡하지 하고.”
김준호는 그녀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영미야.”
“응?”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그 손을 잡았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정확히 맞닿는 순간, 서로의 체온이 타임스탬프처럼 찍혔다.
“너무 앞서 걱정하지 말자. 우리, 이미 잘하고 있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확실하잖아.”
그가 말했다. ‘확실’이라는 단어가 의사다운 단정으로 바뀌지 않게 조심하는 어조였다.
“맞아. 지금이 중요하지.”
영미는 그의 손을 조금 더 꽉 잡았다.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은 분명히 존재했다. 바람이 그들의 대화 사이를 슬쩍 지나갔다.
“준호야.”
그녀가 다시 불렀다.
“응?”
“고마워. 내 인생에 다시 와줘서.”
짧은 문장 속에 긴 계절들이 접혀 있었다.
“나야말로.”
김준호가 웃었다.
“너 덕분에…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야.”
해는 조금 더 기울었고, 공원 길에는 긴 그림자가 생겼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리듬처럼 겹쳐졌다. 평범한 일상의 풍경,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표식처럼 기억될 시간.
그날 저녁.
각자의 방, 각자의 책상, 각자의 불빛 아래에서 여섯 사람은 서로 다른 문장을 남겼다. 그러나 문장들이 흘러가는 방향은 신기할 만큼 닮아 있었다.
선미의 일기장:
오늘, 민호 씨와 같은 프레임을 봤다. 그의 옆에서 사진들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편안했다. 이 편안함이 사랑일까, 아니면 사랑의 문 앞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일일까.
민호의 작업대 위 포스트잇:
‘확신’은 준비가 끝나서가 아니라, 같이 가보기로 할 때 생기는 것. 언젠가는, 마음을 말하자. 너무 늦지 않게. 너무 서두르지 않게.
수진의 메모 앱:
서울. 낭독회. 용기는 두려움보다 큰 무언가를 향해 한 발 내딛는 일. 그 한 발 옆에 태석 씨의 발자국이 겹치면 좋겠다.
태석의 브라우저 즐겨찾기:
프로그램 리스트 정리. 수진 씨가 좋아할 만한 목소리들 표시. 돌아오는 길에 들릴 수 있는 밤 카페 한 곳.
영미의 마음속 독백:
손을 잡았다. 오래된 나를 통과해, 새로운 내가 도착했다. 이제 되돌리기 버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김준호의 메시지:
영미, 다음 주엔 우리 바람 부는 강 쪽으로 걸을래? 네가 좋아하던 구름 많은 날을 같이 잡자.
서로 다른 좌표에서 적힌 문장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선이 그 문장들을 얇게 묶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은 조용해졌지만, 조용하다고 해서 얕아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깊고, 더 신중하고, 그래서 더 오래갔다. 불꽃 대신 잔불. 쉽게 꺼지지 않는 온기.
여름이 더 익어갈수록, 그들의 마음도 함께 무르익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속도로. 아직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어딘가에서 길과 길이 부드럽게 교차하는 지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 다음 모퉁이쯤.
아마, 다음 주의 어떤 오후.
아마, 이름을 부르다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
운명의 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엮이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척, 삶은 각자의 리듬으로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