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토요판 '다른 삶' 2022년 3월 18일 연재
2018년 여름, 베를린에 도착했다. 곧바로 임신을 하고 누워있다 보니 어느덧 아이를 낳았다. 해외에 사는 대다수의 가정처럼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또 다른 가족(우리가 한국이었다면 아마도 양가 부모님께 번갈아가면 맡겼을 것이다)이 없다 보니 출근하는 아빠와 집에서 육아를 하는 엄마로 역할분담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 24시간 아이와 붙어있는 생활 속에서 독일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멀어졌다. 물론, 조금 더 부지런하게 살았다면 배울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육아라는 새로운 삶의 형태에 이미 온 힘을 뺏겨버렸다.
아이가 9개월쯤 됐을 때 국가에서 지원하는 어학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어뿐 아니라 다른 외국어를 비롯해서 각종 취미생활용 프로그램까지 일종의 문화센터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내가 선택한 수업은 ‘베이비-무터 쿠어스’ (Baby-Mutterkurs, 아기와 엄마수업)다. 외국인 엄마가 육아를 위해 필요한 독일어를 배울 수 있는데 가장 매력적인 점은 아이와 함께 하는 수업이라는 것이다. 보통 18개월 미만의 아이와 엄마가 함께 하는 수업으로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동안 독일 동요부터 소아과에서 필요한 필수 회화까지 꽤나 유용한 것들을 배운다. 두 명의 선생님이 있었는데 한 선생님이 엄마에게 독일어를 알려주는 동안 다른 선생님은 아이와 놀아주었다. 바닥에 매트를 잔뜩 깔고 장난감을 뿌려놓은 공간에서 내 아이는 기어 다니고 나는 독일어 동요를 불렀다. 한 달쯤 다녔을 때, 코비드 19로 인해 베를린에 락다운이 시작되었고 나의 첫 독일어 수업은 그렇게 강제로 끝이 났다.
그리고 드디어 2021년 8월 나의 두 번째 독일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 수업 시절보다 1년 반만큼 아이를 더 키웠고 만 2세가 된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는 변화가 있었다. 나의 두 번째 수업도 역시 부모를 위해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엘턴 쿠어스(Eltern Kurs, 부모수업)'로 3시간씩 일주일에 세 번, 3개월에 25유로(한화로 대략 3만 4천원)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한 가격에 모든 교재비까지 포함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생활이 어렵거나 취업준비를 하는 경우는 수업이 전액 무료에 오고 가는 교통비까지 지원이 된다고 한다. 아이를 수업시간에 데리고 가면 옆 방에서 도우미가 아이들을 돌본다.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지만 코비드 19로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고 아이도 감기가 걸려 툭하면 등원을 못하기에 여차해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첫 수업에 가보니 5-6개월쯤 되는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부터 우리 할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은 아빠도 있었다. 아침 9시 수업에 맞춰오려니 잔잔하던 내 일상이 엄청나게 바빠졌다. 비몽사몽 한 채로 아이의 아침 도시락을 만들면 남편이 아이 등원을 시키러 나간다. 그러면 그 사이 나는 정신없이 준비를 해서 8시 35분 기차를 타면 9시 수업에 맞출 수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일주일이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갔다. 하필이면 수업이 월, 목, 금요일이어서 남편도 출근하고 아이도 등원해서 조용한 집에서 한가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던 월요일조차 바빠졌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스케줄이라는 생각에 너무너무 재밌고 설레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나의 설렘에서 오는 기대감이었다.
아무래도 육아를 하는 부모들이 오는 수업이다 보니 아이가 아프거나 하면 결석하게 되고 집에 가서도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할 시간에 또 육아를 하다 보니 진도가 너무 느렸다. 수업시간에 나는 멍 때리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나에게 차라리 한 단계 높여서 수업을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선생님이 맡은 또 다른 반의 학생 한 명이 안 나와서 내가 운 좋게도 그 자리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수업장소 주소를 받고 찾아보니 세상에, 나의 첫 독일어 수업을 했던 곳이었다. (동네별로 수업이 다양하게 있어서 장소가 다양하다. 보통 지금은 안 쓰는 학교 건물이나 청소년센터 등에서 수업을 한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 옆 교실에서 독일어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반의 선생님이 오며 가며 우리 교실에 왔었고 바로 그 사람이 지금의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세상 참 좁다.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서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세상이 좁구나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기어 다니는 아이와 함께 독일어를 배우던 시절, 옆 반에서 성인들만 칠판 앞 책상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그 모습이 그렇게나 번듯해 보였고 부러웠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 번듯한 자리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그렇게 나의 3번째 독일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들은 언제나 인기가 많아서 경쟁률이 치열하다. 특히 지금 반의 경우 정원이 5명이다. 게다가 학기가 끝나면 다음 단계로 같이 넘어가기 때문에 새롭게 등록하기는 참 힘든 반인데 선생님 덕에 무임승차를 한 셈이다.
2021년 11월쯤 다시 코비드 19가 오미크론이라는 변이를 만들고 베를린도 확진자 수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아이들은 잘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이 무참히 깨졌고 초등학교는 물론 어린이집까지 확진자가 속출했다. 이렇게 수업이 또 멈춰질까 걱정했는데 코비드 19 시대에 그나마 장점이라면 온라인 수업 시스템이 정리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온라인 수업으로 바로 전환되었고 그렇게 나의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어린이집도 툭하면 문을 닫았고 겨울이 되자 콧물을 기본 장착하는 아이도 시도 때도 없이 집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수업이었기에 나는 그 사이 또 한 단계 레벨이 올라갈 수 있었다. 물론 재택근무하는 남편과 집에서 노는 아이, 온라인 수업받는 나까지 집은 아수라장의 연속이었다.
우리 반도 이름은 '엘턴 쿠어스(Eltern Kurs-부모 수업)'이지만 아기 엄마들이 많았던 이 전 수업과는 달리 육아를 하는 건 나 한 명뿐이다. 온라인 수업 때 옆에서 왔다 갔다 하는 내 아이를 보고 다들 반가워해줬고 선생님도 항상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해주니 아이는 오늘 할머니 선생님(아이는 나의 선생님을 할머니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만나는 날이냐며 궁금해한다. 그렇게 긴 겨울 동안 옥신각신하며 수업을 했고 봄이 되자(사실 봄이라기엔 너무 춥다) 선생님과 학생, 총 6명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마스크를 잘 쓰고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서 수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온라인 수업의 복병은 따로 있었다. 학생들의 평균 연령이 높다 보니(내가 어린 편이다)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고 인터넷이 한국처럼 원활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수업 내내 화면이 보이네 안 보이네, 소리가 들리네 마네로 시간이 흘렀다. 심지어 선생님도 온라인 수업을 버거워했다. 언어 수업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 그게 잘 안되니 수업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 물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이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만약 대면 수업을 계속했다면 겨울 내내 어린이집을 안 가던 아이로 인해 또다시 수업을 멈췄어야 할 것이다. 요즘은 매주 목요일은 대면 수업을 하러 간다. 대면 수업을 결정하고 선생님이 나에게 제일 먼저 한 말은, '아이가 키타(어린이집)에 못 가게 되는 날은 데려와도 되니 걱정하지 말라'였다.
그리고 오늘, 나는 아이를 데리고 수업에 갔다. 반 친구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줬고 아이는 낯설지만 환대받는 분위기에 내심 신나는 눈치였다. 수업하는 동안 본인은 기억도 못할 테지만 우리의 첫 수업 때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만지고 놀았고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수업을 일찍 끝내고 다 같이 근처 공원에 갔다. 놀이터에 가서 아이도 놀고 어른들은 새로운 단어도 배우면 된다는 선생님의 제안이었다. 아이는 너무나도 재밌어했고 나의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한국말만 하는 엄마가 독일어로 뜨문뜨문하는 것을 본 아이는 아마도 어린이집에서 느끼는 언어적 외로움을 조금은 해소했으리라 생각한다. 독일어를 어린이집에서 하는 말이라고 표현하는 아이는 부쩍 독일어로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나는 그동안 배운 간단한 독일어를 아이에게 알려줄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나 같은 육아하는 엄마를 위한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텐데 사회 시스템으로 부담 없이 배울 수 있는 환경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어를 폭풍 습득하는 아이가 집 밖에 나가면 듣는 독일어에 더 큰 호기심을 품는 요즘, 아무것도 못한 채 집에만 있었다면 어땟을까 상상하면 우울해진다. 독일어를 배우는 나의 첫 이유는 아이의 어린이집 선생님과 문제없이 대화를 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더디고 오래 걸릴 것 같지만 아이와 함께 독일어를 배워나가면 될 것이다. 자기 전에 아이가 물었다. “엄마 할머니 선생님 만나러 가? 오늘 정말 재밌었어.” 뒤돌아서면 까먹는 독일어지만 아이의 말에 또다시 용기를 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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