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를린부부 Apr 17. 2022

베를린의 소아과 이야기

경향신문 토요판 '다른 삶' 2022년 4월 16일 연재

우리 아이는 2019 태어났다. 독일의 적극적인 이주민 정책과 복지정책으로 2009년부터 상승세를 지속하던 출생자수가 2016 79.2 명으로 정점을 찍은  소폭 감소 추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독일은 유럽연합 평균(2019: 여성 1인당 자녀  1.53) 비슷한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동안 있었던 증가 추세 때문인지 산부인과, 출산병원, 소아과, 어린이집  아이와 관련된 모든 기관들과의 상담  방문은 예약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거기에 '등록환자' 진료하는 병원들은 보통 환자수가 변동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빈자리'찾기는 어렵다.  달씩 예약을 걸어 놓는 경우도 있고, 여러 차례 전화통화와 방문에도 결국 인연이 닿지 않는 경우도 많다. 우리 부부도 지도에 나와있는  근처 연락 가능한 모든 소아과를 수색하듯이 샅샅이 살폈다. 실로 노력과 운이 적절하게 조합되어야 한다. 여러  이곳저곳 문을 두드린 한참 후에 드디어 연락이 왔다. ' 월부터  자리 가능하네요!' 그렇게 인연이 닿은 곳이 지금 우리 아이가 다니는 소아과이다.


보통의 소아과는 대게 예약제로 운영이 되기에 예약 없이 급하게 가는 경우, 진료를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대기한다. 예약이 어그러지는 경우 중간에 예약 외 진료를 하기도 하지만 병원에서 예약진료가 끝나는 14시 이후에 올 것을 권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보통 부모들도 원래 다니던 병원을 선호하고 병원 측에서도 새로운 환자보다 예약을 통해 진료를 했었던 환자를 더 선호한다. (등록환자 외의 진료를 심지어 거부하는 병원도 있다.) 아이들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검진 수첩'을 통해 아이의 진료기록이나 의료기록들을 어느 병원에서나 살펴볼 수는 있지만 아이에게 익숙한 환경과 익숙한 의사분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이 정도 되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찾게 되는 비공식 '담당의'이다.   


소아과의 모습은 판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출입문 앞의 안내데스크, 그 바로 앞 큰 미끄럼틀과 익숙한 카펫, 손때 묻은 장난감 등등 꽤나 동일한 모습이다. 근무하시는 분들 역시 우리 부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로 변함없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소아과의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나가는 아이들이야 말로 정기검진 때마다 모두를 놀라게 만든다. 신생아 때부터 줄곧 같은 소아과를 다니고 있는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앉지도 못하고 요람에 누워 처음 방문했던 아이가 이제는 혼자 미끄럼틀을 타고 책장에 있는 책들을 뒤적거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 번은 우연히 마주친 '중학생'정도 되는 아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크게 거주지가 바뀌지 않는다면 '소아'를 벗어나 더 성장해도 원래 진찰받던 의사분이 더 편하지.


물론 담당의분들을 비롯한 직원분들의 따뜻함도 큰 부분이다. 코 언저리에 걸친 안경 너머로 선한 웃음을 띄시며 아이를 진찰해주시면 말이 좀 통하지 않아도 괜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정기 검진이 아니라 감기 등의 특정 상황으로 예정에 없던 방문을 하게 되면 좀 자세히 설명을 해 드려야 하는데, '아'하면 '어'라고 잘 알아들으시는 느낌이랄까. 이렇듯 좀 버벅대도 편안하게 대해 주시는 모습도 이 병원을 계속 찾는 이유라면 이유다. 소아과를 선택하는 과정에 '비용'도 있었다면 우리도 다른 선택을 했을 수 있다. 그저 다달이 월급에서 차곡차곡 빠져나가는 건강보험(우리 가족은 3인 기준으로 월 380유로, 한화로 대략 50만 원 정도를 지불한다.) 덕에 개별 진료 시 별다른 비용은 들지 않는다. 처방약도 보통 무료이고 특별한 경우 지불한다 해도 몇 유로 정도이다. 아이의 출생에도 별 다른 비용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퇴원수속도 엄청 단순했다.


처음 병원을 방문하면 병원 측에서는 '산모수첩'과 '검진수첩'등 진료 당사자가 가진 기록을 살펴보며 수첩을 통한 병원기록을 인수받는다. 아이의 검진 수첩에는 아이의 출생일에 맞춘 몇 년 간의 검진 날짜가 잡혀있는데, 출생부터 생후 64개월까지 총 9단계의 검진을 받는다. 아이가 출생하자마자 수술실 및 회복실에서의 검진이 첫 번째 검진이다. 출생 후 진행되는 U2(U는 Untersuchung, 독일말로 '검진'의 약자이고 뒤의 숫자는 2번째 검진임을 나타낸다.)는 출생병원에서 진행되는데 아이의 몸무게, 키, 머리 크기 등부터 여러 번 찾아보고도 잊어버리는 여러 사항들을 검진하는데 이것도 병원에 따라 할 수 있는 곳이 있고 아닌 곳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검진이 있는데, 바로 세 번째였던 U3, 출생 후 100일이 되기 전 받았던 검진이었다.


임신 후 줄곧 이래 저래 알아야 할 의학용어들이나 상식들이 많이 있다. 지식적으로 모르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물론 많고, 가끔 머리를 짜내도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방식의 검사들도 있다. 세 번째 검진 내용에는 '대퇴골 발달사항'이라 불리는 항목이 있었다. 아이의 대퇴골 발달사항을 검사하기 위해 의사분이 아이의 한쪽 발만 잡고 아이를 잠시 거꾸로 자유 낙하하듯이 매달은 적이 있었다. 담당 소아과 의사분은 대퇴골 부분의 발달을 보기 위함이라 이야기했던 것 같다. 사실 나라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이 있고 익숙한 방식이 있는 것이니, 우리 부부가 독일에서 나고 자랐다면 익숙할 수도 있다. 문화적인 차이 때문인지, 언어 때문인지, 육아에 대한 새로움인지에 대한 불확실함이 주는 혼돈이 있었지만 태연한 아이와 말랑말랑한 분위기에 우리 부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의 탈의 상태 역시 검진대상이다. 두 가지를 위해서라고 하는데, 골격 발달, 피부의 상태 등을 검진하기 위함과 아동학대의 여부를 검진하기 위함이라 한다. 의사분은 꼼꼼하게 아이들 이곳저곳 살피고 배나 등 주변을 진찰하기도 한다. 언어 발달 사항도 검진대상이기 때문에 아이와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는 시점부터는 의사분이 아이에게 직접 대화를 시도한다. 아이가 낯선 환경에 경직되면 중간에 보호자가 모국어로 개입해도 사실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결국 의사분에게 직접 의사전달을 하지는 못했다. 가정에서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별로 없다는 보충설명으로 검진을 마무리했었다.


출산 전이나 후나, 항상 병원에 가는 길은 긴장된다. 뭔가 걱정해야 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지금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등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가 많아서다. 물론 거기엔 언어소통에 대한 부담도 있다. 언젠가 우연히 목격한 어느 엄마처럼 의사분에게 이유식이니 잠자는 습관까지 정말 자잘한 질문까지 하고 싶은 적도 있으나 반강제적으로 정말 필요한 질문을 정리해서 예습을 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그래야 진짜 알아들어야 하는 정보들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심전심이라고 우리 아이를 출생 이후 줄곧 봐온 의사분들이 있으니, 그리고 그 내용들이 착실하게 기록된 우리의 '검진 수첩'이 있으니 다행이다.


2019년 생인 우리 아이는 생후 1년이 지나지 않아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였다. 정기 검진에도 보호자 1명만 동석하게 되었고 심지어 나머지 보호자는 건물 밖에서 대기한 적도 있었다. 대기자들의 동선이 겹치는 걸 피하기 위해 시간 단위로 병원 방문 예약이 진행되다 보니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불편함 등도 생긴다. 원래도 약 처방에 대해 깐깐한 곳인데 코로나 상황까지 겹치니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약을 처방받기가 더 어려워졌다. 아이가 일주일째 대변을 못 보는데 변비약은 커녕 물고 차를 많이 마시고 운동을 많이 할 것을 추천해주실 땐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다행히 두 번째 진찰 때는 효과가 있는 약을 처방받았다!) 물론 그중에 정말 요긴했던 자연요법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양파 썰어놓기'다. 코가 많이 막히는 아이가 잘 때 옆에 양파를 채 썰어서 놓아두라는 우리 담당 소아과 의사분의 처방은 백발백중이었다. 물론 침실에 양파 냄새가 아주 가득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잠에서 깨지 않고 잘 잘 수만 있다면야 문제없다.


우리 부부는 독일어로 획득하는 직접적 정보 대신 비슷한 시기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집단지성에 살짝 더 의존한다. 이런 '힌트'들은 매 순간들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만 빨리 약 먹고 빨리 나아졌으면 하는 급한 마음에는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약국에서 쉽게 구입 가능한 신기한 약들과는 별개로 처방전에는 엄격한 독일의 분위기는 더욱더 신속한 증상의 호전을 기대하기 힘들게 한다. '더 독한 약은 없나요'를 즐겨 말하던 나의 청년기를 돌아보며 과연 어떤 방법이 더 옮을까 의문이 생긴다.


36개월인 우리 아이는 다음 주에 정기 검진이 예정되어 있다. 8번째인 이번 검진엔 의사분과의 직접 대화도 있다고 한다. 요즘 한창 말이 많이 하고 싶어 하는 아이지만 의사분의 물음에 얼마나 반응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어린이집 선생님과 나름의 소통 방법을 습득해 나가는 걸 보며 언젠가 의사분과도 그렇게 소통할 수 있기를 슬쩍 바라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는 분명 지난번 독감접종을 마치고 의사분이 주신 선물을 언급하며 이번에도 선물을 달라고 할 것이다.


"아빠, 이번에도 선물 주나?"



-산모수첩(Mutterpass): 임신 중의 산모와 태아에 대한 모든 정보가 기록된 수첩이다. 신체변화에 대한 기록부터 초음파 검사 결과 등 다양한 형태로 기록된다. 출산병원에서 특별히 꼼꼼히 살핀다.

-검진수첩(Kinderuntersuchungsheft): 출생부터 64개월까지 정기검진의 기록이 담긴 수첩이다. 키나 몸무게와 같은 기본적인 신체정보부터 모든 검사 및 검진의 결과들이 담당의의 서명과 함께 담겨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와 함께, 독일어를 배울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