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Piggy
두 달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신랑은 회사로 복직했다. 아기와 단 둘이 집에 있어보니 열정으로 아기와 놀아도 고작 3분 지나있을 뿐. 나는 외출을 하기로 결심했다.
무작정 나가면 쉽게 포기할 것 같아서 구체적인 외출을 계획했고 목표는 이케아에 가서 지퍼백을 사 오는 것으로 결정했다.
3시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분유 텀을 계산하고 유모차에 아기 짐을 가득 챙겨서 집을 나섰다. 집에서 이케아로 가는 길은 S-Bahn을 한 번 갈아타고 내려서 15분 정도 걸으면 되는 그다지 멀지 않고 복잡하지 않다.
첫 번째 S-Bahn을 타고 한 정거장쯤 지나는데 아기가 부릉부릉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아직 다음 수유 텀까지는 약 40분의 시간이 남았고 내 계획대로라면 이케아에 도착하고 바로 수유를 하고 유모차에서 재운 뒤 여유롭게 쇼핑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기는 이미 결심을 한 듯 본격적으로 울겠다고 준비를 하는 듯했다. 다음 역에서 내려서 우선 수유를 하고 다시 이케아로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에 내릴 때쯤, 아기는 잠에서 깨어나는 용처럼 분노하고 있었고 거의 뛰다시피 수유할 곳을 찾았다.
나는 분유수유여서 그다지 상관은 없지만 모유수유를 하는 경우 장소가 애매하기 나름인데 베를린은 수유실이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물론 이 곳 엄마들은 굳이 수유실에 찾아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수유를 한다.
쇼핑몰을 갈까 하다가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의 유아코너는 의자도 많고 무엇보다 평일 낮에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정신없이 분유를 타서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다시 이케아를 향해 출발했다. 환승역에 도착하니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다. 결국 나는 도서관에서 아기 분유나 먹이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고민하다가 오기가 생겨서 버스를 타고 이케아에 갔다.
평소 30-40분이면 도착하는 이케아를 그 날, 2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이케아에 가면 이것저것 구경하겠다는 처음의 마음과는 달리 막 도착했는데 집에 가야 될 것 같은 체력과 영혼이 남아있었다.
아기 짐 챙긴다고 새까맣게 까먹은, 텀블러에 곱게 내려놓은 나의 아이스커피는 집에 남겨둔 걸 이케아에 도착하니 생각이 난다. 궁한 대로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시작해야겠다 싶어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더니 생크림과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커피가 나온다. 시원하게 마시고 싶었는데 느끼해서 속이 더 답답해진 채로 쇼핑을 시작했다.
한 두 코너를 지날 때쯤 아기는 기저귀를 갈아달라며 다시 찡찡거렸고 나는 번호대로 여유롭게 지나치던 이케아의 동선을 역주행해서 다시 느끼한 커피를 마셨던 카페 옆에 위치한 수유실로 들어갔다.
이케아의 수유실은 기저귀 갈이대와 세면대, 그리고 수유 소파가 있는데 설치된 모든 가구들은 실제로 판매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유등과 작은 인형들까지 준비되어 있어서 아기와 들어가서 기저귀를 갈던 수유를 하던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의 아기, 신찰리는 먹고-놀고-쪽잠 자고 다시 놀고 쪽잠 자고 먹고를 반복하는데 낮잠은 내가 안거나 배 위에서만 자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용처럼 다시 분노하기에 기저귀를 갈고 카페 앞의 소파로 가서 아기를 배에 얹고 눕다시피 앉았다. 2시간 만에 도착한 이케아에서 마법에 걸린 것처럼 입구의 카페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자니 과연 내가 여길 왜 왔나 싶었다.
그렇게 또 쪽잠을 잔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서 지퍼백을 사서 나왔는데 또 S-Bahn에서 어서 우유를 내놓으라며 아기는 세상 끝의 분노를 표출했다. 하필이면 퇴근시간쯤으로 겹쳐서 기차에 사람은 어찌나 많던지.
결국 나는 또 집까지 바로 가지 못한 채 중간에서 내려서 수유를 하고 지쳐서 퇴근하는 신랑을 만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 전, 아니 아기를 낳기 전에 아기 엄마들과 약속을 하면 간혹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내가 아기를 낳고 배운 한 가지를 꼽자면 내 맘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독일판 올리브영 같은 DM이나 Rossmann에는 아기 기저귀 교환대가 매장 안에 설치되어 있다. 자체 브랜드인 기저귀와 물티슈 등이 구비되어 있어서 외출했을 때 유용하다. 무료로 사용 가능하니 외출하는 동선에 매장이 어디에 있는지 미리 알아두면 편리하다. 간혹 기저귀 교환대가 없는 매장이 있기도 하니 미리 확인은 필수!
"건축사무실에서 일하는 신랑과 그림 그리는 아내와 아기가 살아가는 베를린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인스타그램 @eun_grafi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