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의 늪

by 베를린 부부-Piggy

by 베를린부부

출산한 날, 아기와 단 둘이 하룻밤을 보냈다. 제왕절개로 몸은 회복이 되지 않았는데 단 둘이 병실에서 보내야 되는 사실이 참 까마득했다. 2-3시간에 한 번씩 간호사가 와서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산모의 몸상태를 봐주는데 바로 젖을 물려야 된다며 아기를 내 가슴 위에 얹어놓고 나갔다. 젖은 그냥 아기가 빨면 알아서 나오는 줄로만 알았던 나는 출산보다 힘든 모유수유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걸 그 날 눈치챘으면 나는 모유수유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정일을 꽉 채우고 나온 아기는 빠는 힘도 어찌나 세었는지 인정사정없이 나의 가슴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수술한 산모가 첫날부터 모유가 나올 리도 없고 수유자세와 방법도 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아기가 빨기 시작하자 가슴은 가슴대로 아프고 아기는 양껏 젖이 나오지 않으니 울기 시작했다.


가족실로 옮기고 이틀째 되던 날, 새벽 3시가 넘어서까지 아기는 배가 고파서 자지러지게 울고 나와 신랑은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자초지종을 듣더니 신생아는 태어나자마자 3일은 굶어도 된다고 울면 계속 젖을 물리면 된다는 소리만 하고 나가려던 참에 나는 울음이 터졌다.


crying.jpg 나도 울고 아기도 울던 밤 by Piggy

어찌나 서럽던지 끅끅거리고 울자 나가려던 간호사가 나를 달래면서 그제야 분유를 한통 갖다 줄 테니 아기에게 10ml 만 먹이고 산모가 좀 자고 안정을 취하라고 한다. 진짜 속으로 얼마나 욕이 나오던지.

배고파 우는 아기도, 회복되지도 않은 내 신세도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호르몬이 넘쳐나는 시기였으니 감정이 더 폭발했겠지만.

그렇게 겨우 얻어낸 분유 10ml를 먹고 아기는 말 그대로 아기처럼 잠이 들었다. 숨소리를 쌕쌕거리면서.

그 뒤로 퇴원하는 날까지 눈치 보면서 분유를 계속 얻어와서 아기에게 주었다. 젖동냥했다던 할머니 시대도 아니고 이게 21세기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어서 헛웃음이 얼마나 나던지.


집으로 퇴원하고 본격적으로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이미 가슴은 찢어져서 피가 나고 땡땡 붓기 시작했고 수유시간이 되면 발끝까지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집으로 퇴원을 하면 헤바메가 2일에 한번 방문해서 산모와 아기의 건강상태를 체크해주는데 수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원래 그렇다며 계속 물리라는 소리만 했다.

대체 독일 엄마들은 모유가 얼마나 잘 나오길래 맨날 원래 그렇다고, 물리면 나온다고만 하는지.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37일간의 모유수유와 3일간의 단유를 통해 출산 후 40일 만에 처음 아프지 않게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아기를 맘껏 안아줄 수도 없었고 깨어나면 또 수유를 해야 되니 아기가 그냥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쁜 나의 아기는 그냥 나를 뜯어먹는 죠스로만 느껴졌다.

shark.jpg 나의 베이비 죠스 by Piggy

단유 후 처음으로 아기가 이뻐 보였고 우울했던 나의 기분도 많이 좋아졌다. 모유 수유하는 동안 통증 때문에 가슴을 까고 있는 내 모습이 어찌나 처참하던지. 그렇다고 옷을 입기에는 고통이 심해서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앞으로 한 달 후 출산을 앞두고 있는 나의 사촌에게 이야기하니 깔깔거리면서 너무 이상하다고 하는데 너도 곧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얘기해주고 있다. 그리고 덧붙여서 그냥 분유 먹이라는 조언까지.

nude.jpg 하의만 입던 시절 by Piggy


모유의 좋은 점은 당연히 참 많다. 하지만 엄마가 행복하지 않다면 아기를 돌봐줄 수 없다. 아이 둘을 키우는 친구가 모유수유는 육아의 정말 작은 부분 중에 하나라며 너무 힘들게 하지 말라는 소리를 이제야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출산의 고통은 미리 많이 들어서 그나마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모유수유의 어려움을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혹시나 나처럼 아기가 물면 젖이 나오는 줄 아는 분들을 위해 다시 말하자면 출산보다 어려운 게 모유수유다.




한국처럼 가슴 마사지, 조리원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 곳에서 모유수유에 꽤 도움이 되었던 것들을 소개한다. 물론 나는 단유 했지만.


1. Multi mam Kompressen

유두상처치료에 탁월하다. 유두에 붙였다가 씻지 않고 바로 수유가 가능하다.

나는 한 번 붙이면 반나절 정도 쓰고 새로 교체했다. 3일 이상 연속적으로 붙이면 유두가 짓무를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2. 메델라 심포니 유축기

담당 헤바메에게 이야기하면 다니던 산부인과에 연락해서 대여할 수 있다. 산부인과에서 확인증을 써주면 약국에 가서 받아오면 되는데 60일 사용을 위해 보증금 50유로를 지불하고 반납할 때 돌려받으면 된다. 연장도 가능하다. 나는 한참 후에 대여했는데 출산 후 바로 요청해서 대여하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손유축기부터 자동유축기까지 3종류를 써봤는데 차원이 다르다. 마사지 기능부터 유축까지 통증 없이 짧은 시간에 가능하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한국에서는 유축기계의 샤넬이라고 부르는 제품이라고 한다. 무료로 대여 가능하니 미리 꼭 챙겨놓기를)


3. Retterspitz

젖몸살이 왔을 때 거즈에 적셔서 가슴에 올려놓으면 된다. 성분을 보면 천연 약초로 이루어져 있는데 파스 냄새가 난다. 나는 락앤락 용기에 용액을 붓고 거즈를 담근 채로 냉장 보관했다가 사용했다. 나중에 단유 할 때도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됐다.


4. 라놀 크림

건조한 유두에 바르고 씻지 않고 수유가 가능하다. 수유 후 자주 바르고 말려주면 된다.




"건축사무실에서 일하는 신랑과 그림 그리는 아내와 아기가 살아가는 베를린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인스타그램 @eun_graf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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