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를린부부 Jun 06. 2019

아기가 태어나던 날

by 베를린 부부-Piggy

임신 37주 차부터 산부인과에서는 아이가 태어날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언제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즈음 가진통이 시작되었고 이러다 진짜 아이가 일찍 나오겠구나 싶어서 급하게 아기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엄마가 39주에 오기로 되어있었고 내 욕심으로는 40주에 맞춰서 아이가 나오면 해외에 처음 나오는 엄마와 1주일 정도 베를린 여행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점점 무거워지던 몸은 거짓말처럼 엄마가 베를린에 도착하고 일주일 동안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줬고 예정일 전 날까지 베를린 일대를 엄마와 함께 돌아다녔다.


37주부터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던 아이는 40주가 되던 날 다시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예정일. 마침 예정일 오후에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더라도 병원에 가보자며 신랑과 일단 가봤다. 싸르르르하게 아프던 배는 거짓말처럼 병원에 도착하니 아무렇지도 않았고 살짝 민망하게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가진통과 진진통이 구별이 될까 고민하던 시간이 무색하게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강한 진통이 시작됐다. 낮에 병원에 갔다가 돌아왔으니 애매하게 다시 가고 싶지가 않아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나를 엄살쟁이로 볼까 봐 싫었던 것 같다. 진통 간격이 점차 줄어들면서 샤워를 하고 신랑을 깨웠다. 밤 12시, 그렇게 우리는 다시 병원으로 갔다. 내진 결과 다행스럽게도(다시 집으로 가라고 할까 봐 아픈 와중에도 긴장했다) 입원이 결정되었다.


분만실은 생각보다 컸고 쾌적했다. 신랑과 첨부터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무통을 맞기 전에 진통을 줄여볼 수 있는 방법을 담당 헤바메가 이것저것 제시해준다. 그중에 욕조에 아로마를 풀고 반신욕을 하기로 했다. 신랑과 둘이 큰 욕조가 설치된 곳에서 조명을 어둡게 한 채 반신욕을 하고 있으니 진통이 많이 줄어들었다. 혹시나 병원에서 제안한다면 꼭 해보길 추천한다. (독일 병원에서 출산을 한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는데 겪어보니 산모가 원하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주고 도와준다.)


한 시간 정도 반신욕을 하는 동안 진통이 완화되 결딜만 했는데 물 밖으로 나오자 마자 진통은 더 큰 놈이 되어 있었고 우리는 바로 무통주사를 요청했다. 그렇게 분만실로 이동해 생각보다 순조롭게 무통주사로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배고프면 먹으라고 아침도 주고(빵, 요구르트, 주스) 자세도 바꿔가면서 신랑과 11시간을 분만실에 있었다.


병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독일은 임신기간 동안 가는 병원과 아이를 낳으러 가는 병원이 다른데 임신기간 동안 다니던 병원에서는 초음파는 두 번만 했고 막달까지 질초음파와 내진으로 아기의 위치만 확인했었다. 그러니 계략적으로 출산하는데 '큰 문제가 없음'정도의 포괄적인 확인만 하였을 뿐 출산시 일어날 수 있는 유사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대비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출산병원에서 자궁문이 8센티쯤 열렸을 때 정밀 초음파로 아기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는데 그제야 아기가 하늘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아기의 위치를 바꾸기 위해 이것 저것 시도해 보았다.

결국 의료진은 15시간 진통 후 아기가 하늘은 보고 있는 상태로는 질식의 위험이 있어 위험하다며 응급제왕을 제안하였다. 처음의 느긋했던 무통주사의 시간과 다르게 수술을 결정하게 된 마지막 30분은 나와 아기의 체온이 급상승 하는 등의 위험요소가 늘어나며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자궁문이 10센티 다 열린 상황에서 수술이 결정되었고 무통 주사는 더 이상 효과가 없었다. 이런 저런 고통에, 어수선한 상황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수술실로 들어가던 것도 기억 나지 않는다. 신랑만이 모든 과정을 목격했다. 한국이었으면 미리 초음파를 통해서 아기의 자세나 위치를 파악하고 진통 없이 바로 수술을 결정했을 텐데, 진통은 진통대로 모두 하고 수술을 해야만 했던 억울함이 남았다.


수술 준비가 끝나고 신랑이 수술실로 들어왔고 잠시 후 아기가 태어났다.

한국에서 흔히들 말하는 3대 굴욕인 관장, 제모, 내진 중에서 수술실로 옮겨진 후 제모를 했고 만약 자연분만이었으면 관장과 제모는 하지 않는다. 분만실에 있는 동안 내진은 수도 없이 했는데 무통이 들어간 후라 아픔을 느끼지는 않았다. 분만실에서는 신랑이 계속 함께 하기 때문에 그는 내진하는 걸 내내 지켜봤지만.


내가 경험한 독일의 분만실은 가정집의 거실 같은 느낌이었다. 한 팀씩만 들어가서 충분히 공간을 편하게 쓰고 차분하게 진행된다. 수술이 끝나면 다시 분만실로 들어와서 수습을 한 뒤 입원실로 옮겨진다. 입원실은 가족방과 2-3인실로 구분되는데 가족방은 하루에 100유로의 추가금액이 있다. 가족방은 미리 예약은 되지 않고 출산하는 날 병원의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데 우리는 가족방을 미리부터 쓸 수 있도록 계속 부탁을 했지만 첫날은 자리가 없어서 3인실을 혼자 쓰게 병원 측에서 배려해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족방이 아닌 이상 산모와 아기만 병원에 남고 신랑은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날 아침에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자동실인 독일의 병원에서 아기 낳은 산모와 아기가 오롯이 있어야 된다. 나는 독일어도 부족하고 아기와 둘이 남아 밤을 보낸다는 사실이 무서웠는데 밤새 간호사들이 돌아가면서 체크해주고 영어로 소통도 가능해서 걱정보다 훨씬 쾌적하게 첫째 날을 보냈다. 물론 아기도 첫날은 잠만 자니깐 가능했던 것 같다.


퇴원하는 날은 아기와 산모 각각 검진을 하고 알아서 집으로 가면 되는 뭔가 허전한 느낌인데 한국처럼 비용을 지불하고 퇴원하는 것이 아닌 일주일쯤 후에 집으로 비용 청구서가 온다. 금요일 오후에 수술을 해서 월요일에 퇴원했으니 3박 4일 병원에 있었고 3인실에 있던 첫째 날을 뺀 2박, 200유로의 금액이 청구되었다.


독일에 와서 열흘이 채 안돼서 임신을 했고 임신기간 내내 한국의 맘카페와 독일의 맘카페를 들락날락하면서 정보를 찾았다. 그동안 만약 한국이라면 병원에서 한국말로 궁금한 점도 속 시원하게 다 물어보고 친구나 가족들의 도움도 받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고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나의 경험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외국에서, 독일에서, 더 작게는 베를린에서 출산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출산, 병원생활, 모유수유 등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내가 경험한 작은 팁

1. 출산 가방

한국 맘카페에서 보고 미리 준비했던 출산 가방은 이 곳 독일 병원에서는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아기-퇴원할 때 입을 옷, 카시트

엄마-퇴원할 때 입을 옷, 간단한 세면도구(가족실의 경우 기본 세면도구는 있었다), 입원기간 동안 뒤가 뚫린 병원복을 입기 때문에 남방이나 카디건 정도 있으면 입고 있기 좋다.

2. 음식

가족방의 경우 신랑의 식사까지 나온다. 내가 있던 병원은 아침과 저녁은 빵과 치즈, 햄 등의 차가운 식사가 나오고 점심은 따듯한 식사가 나왔다. 내 경우 친정엄마가 미역국을 매일 병원으로 가지고 왔다. 전자레인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어서 1리터 정도 되는 큰 보온병이 있으면 수월하다.

3. 샤워

나는 수술한 다음날, 샤워를 했다. 몸을 욕조에 담그는 것은 안되지만 샤워는 가능하다. 병원에 드라이기가 없는 경우가 많으니 따로 챙겨가면 좋다.


4. 진통제

독일 병원에서 무통이나 진통제를 잘 주지 않는다는 흉흉한 소문을 듣고 걱정했는데 내 경우 무통도 잘 주고 진통제도 알아서 다 챙겨줘서 수술 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술한 다음날 바로 스스로 걸어 다닐 정도였다. 진통제의 힘을 빌려서라도 걸어 다녀야 회복 속도가 더 빠르다고 한다.


5. 속옷과 산모패드

병실에 산모패드와 속옷이 넉넉하게 구비되어있고 다 쓰면 바로 채워준다. 나는 임신 때 입던 사이즈가 큰 팬티를 준비해 갔었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팬티는 그물처럼 생겼는데 상처부위도 공기가 통하고 패드 착용도 편하다. 사이즈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불편함 없이 착용이 가능하다. 퇴원할 때 간호사들이 챙겨준 몇 장으로 수술부위가 다 아물 때까지 잘 썼다.




"건축사무실에서 일하는 신랑과 그림 그리는 아내와 아기가 살아가는 베를린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인스타그램 @eun_grafico


이전 03화 38주 차 임산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