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첫 출근’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정확하게 횟수로는 다섯 번째 이직이지만 다른 이들처럼 '이직'의 과정들을 겪는 것은 아주 처음이었다. 익숙했던 사람들, 환경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생소한 사람들, 환경과 첫인사를 나누는,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옮기는 과정 말이다. 이직 스토리에 매번 등장하는 그 시간을 나는 사실 처음 겪는 중이었다. 회사를 옮기는 사이에 10일 정도 이런저런 일을 처리할 시간을 미리 계산해 넣은 것도 그랬다. 비자를 받고, 집을 찾고, 은행 계좌도 열고, 거주지 등록도 하고, 이삿짐도 옮기는 등의 일련의 과정들을 처리하는 것은 아무리 긴 시간이 주어져도 항상 모자랄 것 같지만 말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베를린으로 이직하며 가장 기쁜 사실은 ‘세금을 내고, 그걸로 비자를 얻어낸’ 많은 외국인들 중 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이젠 더 이상 비자 때문에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실 베를린에는 올만했다. 그 설렘 때문이었는지 나는 첫 출근 2달 전에 벌써 근로계약서를 손에 들고 비자를 신청하러 갔었다. 첫 출근할 때는 모든 게 준비된 상태였으면 하는 욕심이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사실 베를린에 처음 정착하는 과정 중에 가장 복잡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집 구하기’이다. (휴우...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 이 과정은 브런치 매거진을 통째로 할애해도 모자랄 듯하다. 아마 후에 이와 관련된 몇 개의 시리즈 글이 분명 나오지 싶다.) 그것도 큰 덩어리지만 뭐니 뭐니 해도 첫 출근 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새로 일을 시작하는 사무실은 예전에 내가 썼던 프로그램과는 다른 생소한 프로그램을 쓴다고 했다. 아키캐드(Archicad)라는, 독일어권에서 주로 많이 쓰이는 프로그램을 쓴다. 여태껏 꾸준히 써온 오토캐드(Autocad)란 프로그램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별 일이나 있겠어, 배우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물론 면접 때 나에게 먼저 일러주기는 했다. 프로그램을 써 본 적이 있느냐, 일을 시작하려면 배워야 할 것이다, 등등의 염려들. 난 패기 있게 대답했었더랬다. ‘내가 그 프로그램을 연마하고 출근하겠다고.’

이사 갈 준비로 바쁜 틈틈이 유튜브를 뒤지고 인터넷을 뒤지고, 디지털 유목민처럼 관련 자료를 찾아 헤맸다. 확실히 이 프로그램을 쓰는 한국 사람이 그리 적은 지 없어도 너무 없는 자료 때문에 애를 먹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조사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자료가 도움이 많이 됐다. 대강 뭐가 어디 있는지 정도만 익히고 출근한 첫날, 프로그램이 문제가 아닌 걸 깨닫고 말았다. 프로그램이 독일어로 깔려 있었다.


아, 그 순간 난 정말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그냥 그곳에서 ‘아임쏘뤼’하고 나오고 싶었다. 아이콘이 입혀져있지 않은 영역은 하나씩 모두 사전을 찾아봐야 했다. 프로그램에서 띄우는 간단한 경고 메시지조차 구글에 찾아보려면 한참 걸렸다. (텍스트 형태로 복사만 되어도 훨씬 나았을 것이다.)

Berliner Philharmonie / Hans Scharoun / 1960–1963 ©HK Shin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나의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새로운’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좀 적은 편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새롭기 때문에, 그리고 무지하기 때문에 생기는 시행착오나 실수 등도 꽤 담대하게 받아들인다. 이방인으로 살면서 멘탈에도 살짝 굳은살이 배긴 탓일 것이다. 그래서 독일어를 전혀 못하지만 독일의 직장에 영어로 일하러 온 다는 것 자체도 나쁘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를린으로 이사를 오며 주변에서 은근히 많이 들은 말이 이것이었다.


‘베를린에는 외국인들이 꽤 많아서 독일어 못해도 영어로 떠듬떠듬 살만하다.’


사실 베를린에 다녀간 적, 정확하게는 '방문'은 꽤 많이 했었으므로 나 스스로도 동의하고 있었던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냥 사는 일상이 아니라 매일 8시간씩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 문제였다. 어쨌거나 영어는 독일 사람들에게도, 한국사람에게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국어”이다. 내가 한국말을 가장 잘하듯이 보통의 사람들도 모국어가 가장 편하다. 그러므로 독일의 직장에서 독일어를 1도 이해를 못하는 나를 위해 누군가는 나의 이해를 위해 신경을 써줘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에브리바디가 영어가 편하다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일을 시작하면서 물론 당연히 영어를 편하게 쓰는 사람들과 먼저 친해졌다. 영어가 조금 불편하거나 귀찮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간단히 인사만 하게 되니까. 그런 그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면 그들만의 독일어 대화를 이해 못하고 앉아 있는, 멀뚱멀뚱 있는 나를 위해 누군가가 대화에 대해 설명해주는 상황이 계속된다. 어느 순간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를 쫓아가기 위해 살벌하게 눈치 보는 내가,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옆자리의 동료를 위해 점심시간을 열심히 할애하는 그 친구가 안타까웠다. 그렇게 난 한동안 혼자 점심을 먹었다. 점심시간은 잠깐 쉬는 시간이었다. 나도 잠깐이나마 머리를 좀 쉬게 하고 싶었다. 물론, 친절한 '영어를 잘하는'친구들도 편하게 밥 먹게 내버려 두고 싶기도 했다.

4월에 날리는 꽃가루 '눈'. 에취! 훌쩍훌쩍!

베를린에 정착하는 과정이 대강 이런 식이었다. 예상치도 못했던 시간들, 계획대로 되지 않은 시간들, 들뜬 나의 마음 때문에 공중에 붕 떠버려 그냥 '지나간' 시간들이 나의 기회비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베를린에서 건축으로 먹고사는 모습들에는 시행착오들이 정말 많다. 내 일을 하는 과정에도, 내 삶을 사는 과정에도 서툴고 어설픈 순간들이 많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직도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독일어를 조금씩 하긴 한다. 베를린에 오기 전까지 가장 오래 한 곳에서 일했던 시간이 3년 반 정도였는데 이제 이 곳은 5년이 넘어 6년째다. 이렇게 오래 다닐 생각이 정말로 없었지만 어떤 지점에서 나의 어떤 관성을 베를린이 건드려서 여기에 이렇게 오래 앉아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야기를 조금씩 털다 보면 나도 모르던 상관관계를 발견하거나 이해할지도. 그 시간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여기서 '먹고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성공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