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가 되고픈 꿈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매일 사무실에 출퇴근하는 ‘직장인’은 베를린 생활의 명분일 뿐이었다. 실은 그전부터 꾸준히 준비해온, 뭐 그래 봐야 공모전에 내 개인 시간을 꾸준히 때려 박는 것뿐이었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 내 사무실을 해 보겠다는 다부진 꿈! 자영업자가 되어 회사를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은 내 머리 한편에 항상 있었다.


‘건축으로 먹고 살기-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편에 종종 등장했었던 K선배가 있었다. 시간으로도 꽤 긴 기간 동안 등장한 걸 보면 그는 분명 나의 유럽 생활에 뿌리 깊은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그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된 ‘공모전 놀이’는 몇 번의 연습 및 습작을 거쳐 진짜로 ‘제출해도 되겠다’싶은 퀄리티를 냈고 ‘이제 그럼 아예 제대로 준비해서 덤벼보자’가 된 것이었다. 공모전을 하나 당선시켜서 그걸로 베를린에 사무실을 차리고 그 계기로 이곳에 정착을 한다는 빅픽쳐였다. 실은 이런 동기부여가 있었기 때문에 무모한 베를린행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이차저차 해서 어쨌거나 베를린에 온 이상, 더 이상 이 빅픽쳐를 미룰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린 집 하나를 제대로 얻고 작업실 겸 거주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구체적인 실행 안을 추진했다. 낮에는 각자의 회사로, 밤에는 그 공간에 모여 대박의 내일을 작당 모의하는 것으로 말이다.

walter benjamin platz 2.jpg
walter benjamin platz.jpg
Walter Benjamin Platz. 사진을 몇 개 파노라마로 붙였더니 위의 차 모양이 이상하다. ©HK Shin

주말 낮에 마침 둘 다 집에 있다거나 좀 일찍 퇴근한 날, 둘이 베란다에서 고기를 굽는 것은 덤이었다. 둘 다 원룸에서 옹기종기 살았으니 나아진 거주 환경에 만족해했다. 김하나X황선우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처럼 드라마틱하거나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많지는 않았으나 <남자 둘이 어찌어찌 살고는 있었더랬습니다.>

먹고살며 그럭저럭 같이 지내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같이 일하는 관계’에서 금방 문제가 생겼다. 집을 얻어놓고 시작한 첫 번째 공모전부터 의견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났다.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믿었던 당사자들도 좀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두 번째 공모전에서, 그러니까 같이 그 집에 살기 시작한 시작한 지 6개월 즈음이 됐을 무렵, 난 더 이상 같이 협업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스트레스를 피해 도망 온 도시에서 다시 스트레스와 이렇게 빨리 조우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일”은 둘 다 각자 알아서 일하고 살림만 기존 구조대로 나눠하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 순수하게 건축을 바라보는 의견에 대한 차이 때문은 아니었다. 일과 사생활이 어느 정도 분리되는데 중요한다는 것은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시간을 잘못 다뤘다. 개인적인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다. 너무 놀러 다녔다! 그러니 선배 K가 뚜껑 열리는 건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동시에 이 시기를 지나며 건축가 부부들이 일하며 사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순간을, 일과 생활이 모두가 붙어있다면 조금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각자의 공간이 있다면 모를까. 우리의 경우엔 협업의 균열이 대부분 내 탓이어서인지 나는 곧장 그 집에서 사는 것이 불편해졌다. 어차피 협업을 위해 구한 집이고 그런 최초의 목적이 없어졌으니 난 따로 나가겠노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 집에 들어간 지 1년여 만에 난 다시 홀로 살집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여전히 독립해서 내 사무실을 갖고 싶은 “자영업자가 되고픈 꿈”은 간직한 채 말이다.

berlin dom.jpg Berlin Dom / Julius Raschdorff / 1894–1905 ©HK Shin

자영업자가 되고픈 꿈은 무엇일까? 누구 밑에서 까라면 까는 관계의 탈출을 원하는 것일까. 아님 나도 내 작업을 시작하면 여느 대박집 사장님처럼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인 걸까. 2014년, 난 당시 34살이었다. 어차피 결혼이 늦어질 것이라면 일이라도 끝장 내 보고 싶었다. 진짜 갈 수 있는 데까지! 근데 그 끝이 자영업, 즉 나의 사무실이란 생각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주변에 한국으로 귀국하여 자신의 사무실을 시작하는 선후배, 각자 회사생활에서 독립하는 사람들도 분명 영향이 있었다. “왠지 나도 빨리 뛰쳐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 그냥 가만히 회사에 있으면 뒤쳐질 것 같은 느낌. 이것이 항상 내 궁둥이를 들썩하게 만들었다.


자잘한 일상들과 일주일에 40시간의 근로시간을 꾸준히 채우는 동안 나는 지금 일상에 너무 익숙해졌는지 모른다. (사실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조금 큰 사무실로 오니 좀 편한 것도 있다.) 그리고 여러 날을 같은 일을 하며 이 바닥에서 구르다 보니 조금씩 보이지 않는 것이 생기는데 이것이 날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세상엔 건축을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뭐 딱히 그렇다고 내가 할 일이 없어지거나 생기지는 않을것이다. 리그가 다를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나의 “자영업자”를 향한 꿈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내가 익숙히 보아왔고 주서들은 경로가 아닌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내가 어찌어찌 베를린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 방법이 뭔지는 현재 나는 당연히 모른다.

‘준비가 되면 기회가 올 것’이라는 클래식한 마인드로 나는 오늘도 퇴근길을 재촉한다.


이전 01화다섯 번째 ‘첫 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