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외국인의 초과근무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2014년의 여름은 정말 더웠다. 에어컨은 무슨,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서향의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앉아, 엉덩이와 팬티가 항상 붙어있는 날씨의 연속이었다. 습하지도 않은 날씨에 옷은 온몸에 들러붙어 버렸고 처절하게 돌아가는 선풍기를 발로 걷어차고 싶을 정도의 더위는 집중력은 물론 맨 정신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나는 역대급으로 더웠던 2014년의 그 날씨보다 심지어 더 뜨거웠다. 말 못 하는 외국인으로 사무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뜨거운 인상을 주기 위해, 주눅 들지 않기 위해 말이다.


내가 현재 일하는 직장은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한다. 그러니 하루에 8시간씩,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을 일하는 셈이다. 이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노동의 환경은 누군가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노동 환경의 고귀함을 깨닫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한국보다는 스페인이, 스페인보다는 독일의 노동환경이, 아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노동 환경’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낫다. 정해져 있는 법의 테두리를 얼마나 진실하게 이행을 하는가, 얼마나 존중하려 하는 태도를 가졌는 가의 차이일 것이다. 사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처럼 이곳저곳의 노동시장을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시장 차원’에서 제일 골칫거리일 것이다.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노동 환경의 생태계를 어지럽히니 말이다.


더운 여름날 해질 무렵, 무려 10시 가까이 되면 가끔씩 불타는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 보통 이 시간엔 집에 있어야 한다.


나의 주된 업무인 공모전은 노동 생태계의 교란이 자주 목격되는 동네였다. 공모전 자체가 투자의 개념이다 보니, 그래서 확실한 노동의 대가를 어느 누구도 확답하지 힘들기 때문에 더 심했다. 자연스레 사람도 자주 바뀌었다. 법의 테두리가 정해놓은 쉬는 시간, 주말 등의 노동환경은 사실 분야를 막론하고 사람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이다. 그리고, 그 제도의 영향 아래 있는 사회 구성원은 당연히 주말은 개인의 시간이라 인식한다.

그러나, 그러나... 어느 누구도 주말에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적 약속인 이 제도를 역이용, 도리어 주말에 열심히 나와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며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나였다. 노동의 덤핑 공급으로 이미 생성된 노동의 값어치를 교란시키는 생태계 파괴자 말이다.

사람이 선의의 목적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 룰을 지키고 그 룰을 만든 사회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하다는 것은 내가 어릴 적 도덕책에서 본 지루한 내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그딴 것은 항상 안중에 없었다.


말이 안 통하니 당연히 모든 일에 시간이 더 걸렸다. 그냥 쭈욱 읽고 넘어가면 되는 공모전 요강도 구글 번역기부터 사전까지 뒤질려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 거기에 프로그램도 버벅거리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허둥대는 시간만큼 다른 사람보다 더 길게 일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가서 익히는 것도 만만치는 않았다.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없는 프로그램을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해진 룰을 지키고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멋진 삶의 자세는 정말 먼 나라 이야기였다.


사무실에는 각자의 근무시간을 기록하는 프로그램이 모든 컴퓨터에 깔려 있다. (일기처럼 매일매일 기록하는 사람도 있고 짧은 메모를 해뒀다가 한 달 치를 몰아 입력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한 일주일 정도로 끊어서 했다.) 이 근무시간의 기록은 사무실 차원에서 다양하게 이용되는데 직원들이 가장 관심 있어하는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초과근무”항목이다. 예를 들어 오늘 내가 9시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했다면 6시간의 초과근무를 한 셈이다. 그러면 여기서 감가상각 10% 제외하고 5.4시간이 나의 계정에 기록되는 셈이다. 이상적이고 이론적인 수치로 본다면 이 초과근무 시간은 매달 몇 시간을 넘기면 안 되도록 되어 있다.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에 150시간 정도가 쌓였었다... 그걸 입력하면서도 뭐가 잘못됐는지 몰랐던 것이 잘못이었다. (이 시간을 추후에 휴가로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이것저것 빼면 가용한 시간이 별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주변 직원들도 이런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이곳에도 상습적으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퇴근을 뭉개 뭉개 생각하며 시계를 보는 오후 5시 정도부터 불이 붙는 스타일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의 리그에서도 초과시간 150시간은 상위 5위 내에 랭크될 정도의 노동이었다. 그리고 이 리그의 선수들은 주기적으로 비서팀 및 인사팀 담당자에게 경고를 먹었다. 일하는 시간을 좀 더 잘 통제할 것을 권고받는다. 그렇다.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일을 효율적으로 정해진 시간 내에 잘 끝내는 것 말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닭이냐 달걀이냐 논쟁이 시작된다. 일을 '열심히'하다 보니 시간이 넘어가는 걸 어떻게 하느냐와 일을 비효율적으로 하니 시간이 넘어간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어찌어찌하여 결과까지 좋아버리면... 그게 더 난감하다. 잘못된 '기준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일의 결과가 좋았으면 됐지 뭘 그래?'라는 식의 난감한 태도 말이다. 옳은 과정을 통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세련됨은 도덕책에서만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난 더 이상 주말근무는 '하지 않는다.' 그냥 노력한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2015년 정도부터 없는 시간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왔다. 물론 스스로 그렇게 깨우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일해도 가능하다는 사람과 함께 꾸준히 오랜 시간 같이 일해서 '아 이렇게 공모전을 하는 게 가능하구나'라고 배웠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으레 그렇게 시간계획을 짠다. 최대한 초과근무 없이, 주말 없이, 개인 시간의 희생 없이 말이다. 그래도 가능하다는 것을 배운 것이 일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을 변화시킨 아주 큰 사건일 것이다.


주말엔 공원에 가서 멍도 때려보고 낮잠도 자고 그렇게 쉬고 충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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