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는 공사현장이 많다. 예전 동독지역을 비롯해 도시 곳곳에 빈 땅이 아직 많다. 새로 계획하는 곳, 있던 건물을 헐고 다시 짓는 곳, 여전히 논란 중인 곳 등등, 건축장이들과 관련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가끔씩 문득 저 많은 건물들로 먹고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망상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내 발로 지났던 곳, 어렴풋이 장소만 알던 곳 등 꽤나 익숙한 자리에 종종 공모전이 열리곤 한다. 전혀 가보지도 못했고 잘 알지도 못하는 도시의 생소한 장소보다 내가 아는 장소에 상상력을 발휘해 보는 것이 훨씬 매력적이다.
베를린으로 이직한 뒤 참가했던 첫 번째 공모전은 TAZ(타츠)라는, 역시 베를린이 근거지인 신문사의 신사옥 현상설계였다. 결과는.. 아주 보기 좋게 나가떨어졌다. 지금 봐도 결과물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으나 주최자의 성향을 완전 잘못 파악한, 제대로 헛다리를 짚은 작업이었다. 스위스 출신의 E2A라는, 바르셀로나 사무실에서 참가한 공모전에서도 몇 번 만난 적 있는 젊고 정말 매력적인 건축을 하는 이들이 당선되었다. 이 건물은 벌써 작년에 완공을 끝내고 입주도 완료됐다.
이어 참가한 두 번째 공모전은 독일 연방상원회 방문자센터를 건립하는 현상공모였다. 공모전의 1차 단계는 내가 사무실에 오기 몇 달 전 벌써 끝내고 2차 마감을 앞둔 상태였다. 일할 시간은 3달 정도로 여유 있었으나 1차 마감을 한 사람들이 아무도 할 수 없는 상황인 게 문제였다. 심지어 마땅히 할 사람이 없어서 이걸 마무리하느냐 마느냐까지 이야기 나왔으니까 말이다. 물론, 당시 나는 이 일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독일어도 문제였지만 독일의 연방제에 아주 생소했기 때문이다. 각국의 관공서 건물들은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많다. 그러기에 더더욱 부적합했다. 그러나 결국 하느냐 마느냐까지 이야기 나온 마당에 누가 됐건 마무리만 해보자는 식으로 결국 나도 끌려 들어갔다. 그렇게 3개월의 미친듯한 ‘나 혼자만의 초과근무’가 시작되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처럼 좀 오래된 사무실들은 항상 공모전마다 비슷한 고민을 하며 일을 시작한다. ‘이 공모전은 과연 원래 하던 데로 우리답게 해야 할까 아님 전혀 다른 걸 해야 할까.’ 맨날 하던걸 하자니 일하는 사람도 살짝 지루하고 보는 사람도 지루할 것 같고, 전혀 새로운 걸 해보자니 확신이 안 서기도 하고 책임지지 못할 것 같은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무엇이 됐건 전략이 정해지면 ‘소장’은 체스판을 두듯이 적절한 사람을 일에 배치한다. 그리고 당시 이 공모전에 나를 배치했다는 것은 뭐 거의 깽판에 가까운 수였다. 다른 관광객처럼 독일 연방상원회에 가서 투어 먼저 해야 할 지경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독일의 연방제도에 대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각 주가 상당히 독립적인 면모도 있고 다 같이 어우러지는 점도 있다. 여기서 이원복 씨의 ‘먼 나라 이웃나라’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됐더랬다. (그는 정말 어려운 얘기를 쉽게 쓴다.)
주최자가 바라는 새로운 ‘방문자센터’는 비단 새로운 시설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민주적인 정치의 현장’을 좀 더 세련된 그릇에 담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추상적인 표현인가. 사실 건물이 기능적으로 제대로 작동만 한다면 철과 유리의 옷을 입은 건물도, 자연석의 옷을 입은 건물도 모두 ‘민주적인 정치의 현장’인 것을.
우리는 모험성이 강하지 않은, 사무실이 여태까지 꾸준히 해왔던 방향으로 결정했다. 무거운 돌을 입은, 보기에도, 만지기에도, 들어가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무게 있는’ 건물이 탄생했다. 규칙적이고 예외 없는 축이 어디서나 보이고 선을 딱딱 맞춰서 모든 것들이 열 맞춰 있는, 군기가 바짝 들은 건물 말이다. 그리고 이 공모전을 하기 전에는 나는 자연석을 다뤄본 적도, 유심히 들여다본 적도 없었다. 그냥 배운다 생각하고 까라는 대로 깠다.
심사 당일날, 심사가 끝나고 입상이 결정된 사람들에게 슬슬 연락이 갈 즈음, 우리는 기다리다 지쳐 기대를 접었다. 이번에도 아닌가 보다고 스스로 마음을 접었더랬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었다. 일어나 보니 핸드폰에 전화가 몇 통 왔었었고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우린 사실 운이 아주 좋았다. 열심히 하는 거야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만 공모전에 당선이 되는 것은 아주 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시상식에서 건네듣길 심사위원들이 자정에 가까워지도록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우리에 이어 2등을 차지한 작업은 철과 유리를 입은, 우리와 다르게 딱 봐도 한결 가볍고 투명해 보이는 건물이었다. 그 두 가지 가능성을 놓고 심사위원들은 나름 치열하게 토론을 한 모양이다. 그리고 아주 고맙게도 행운은 우리에게 왔다.
이 건물은 아직 진행 중이며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열심히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Anbau mit Besucherzentrum für den Bundesr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