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나에게 급격한 외부 환경 변화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곳은 항상 ‘코’였다. 훌쩍훌쩍. 아침에 일어나면 막힌 코 때문에 삑삑거림과 훌쩍거림은 어렸을 때부터 달고 살았던 나였기에, 그만큼 익숙한 대응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살았다.
처음 베를린에 왔을 때 역시 코막힘으로 인한 두통은 아주 익숙했다. 그러나 코가 막히는 원인이 꽃피는 4월이라 꽃가루가 날려서 그런 건지 아님 일교차가 커서였는지 아님 진짜 감기가 걸린 건지 헷갈렸다. 보통 아침에 일어나 코가 꽉 막혀 있으면 세수하며 코를 풀기도 하고 숨을 살살 쉬면서 코가 뚫리길 ‘기대하곤 했다.’ 그다음 단계는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쉽게 살 수 있는 코 소독기나 간단한 스프레이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것도 안되면 병원 진료였다. 버티다 버티다 병원을 가는 것이 알레르기를 달고 사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었다. (정말 가관은 어렸을 적 명절 때 여럿이 모인 친척들이 아침에 우르르 일어났을 때다. 어른 아이 없이 훌쩍훌쩍 삑삑 거리는 광경은 꽤나 가관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나 나름 해결해보려 이리저리 돌파리처럼 스스로 진단에 처방을 내려보다 결국 이비인후과에 진료를 예약했다. 나름 답답하고 급한 상황이었지만 여기선 한 두 달 뒤의 예약된 진료를 기다리는 것도 보통이었기에 예약된 진료 날짜까지 그냥 참아야 했다. 이 시간을 버틴 유일한 나의 응급 도구는 아스피린 콤플렉스였다. 아스피린이긴 한데 가루로 되어 있고 겉포장에 특별히 기관지 그림이 있는, 이비인후과에 더 효과가 있는 아스피린이다. 출근길에 꽈악 막혀있는 코가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나아지지 않으면 하나를 복용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후에 의사에게 물어보니 아스피린 콤플렉스가 코의 점막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나에게 잘 들었던 모양이라고 했으나 중독을 염려하며 그런 약은 그렇게 오래 장기 복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
아무튼 드디어 진료 날, 이비인후과 의사에게 이래 이래 증상이 있었고 저래 저래 버텨왔다고 했더니 그녀는 나에게 ‘알레르기 검사’를 권유했다. 아니, 권유 정도가 아니라 해야 한다고 했다. 팔에 일정 간격으로 정해진 샘플을 떨어트리고 몇 분뒤 반응을 검사하는 식이다. 이 반응과 내 피검사 결과를 종합해 도표를 그려준다고 했다. 결과가 한 달 뒤에 나온다는 친절한 안내도 잊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를 처방해주었다. 이 스프레이는 뭐 즉방 정도는 아니었지만 급한 데로 숨 쉬는데 거스르지 않는 정도로만 뚫어줬기 때문에 추후에 다시 구입하지는 않았다.
한 달 뒤 받은 검사 결과에서 몇 가지 '유독'조심해야 할 알레르기 요인들이 드디어 밝혀졌다. (집먼지진드기, 헤이즐넛, 자작나무, 그리고 고양이 털과 개털 등이 피부에 직접 닿았던 시약 중에는 가장 심하게 반응했다.) 내 침구류에 가득 침투해 있었던 집먼지진드기가 내 코를, 내 수면을 그렇게 괴롭혔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원망했던 외부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중고로 구입한 침대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뭐 물론, 중고 침대도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난 지독히도 오래돼서 싼 걸 구입했다.) 나는 그때 한창, 괜히 독일로 와서 생고생한다고 나 스스로를 원망하곤 했었다. 근데 원인은 나 스스로 구입한 침대였던 것이다.
결국 난 이비인후과에서 알레르기 전용 침구류를 처방받았다. 친절하게도 건강보험에서 부담이 되며, 언뜻 보면 병원 침구류처럼 생긴 이 제품은 살짝 뻣뻣한 느낌이 나는 하얀색 침구류였다. 사실 안티 알레르기 텍스틸이라고 검색하면 수없이 나오는 제품들이지만 모르는 걸 어찌 쓸 수 있었으랴. 이 침구류를 매트리스, 배게 및 이불에 절차대로 덮어 씌우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정말 상쾌하고 개운하게,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다. 잠의 질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생스러운 깨달음이었다. 그 뒤로는 국소적으로 주변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코가 훌쩍일 뿐, 다행히도 아침마다 훌쩍훌쩍 촵촵하지 않는다.
가장 격하게 반응한 물질은 자작나무(Birke), 오리나무(Erle, 자작나무과) 그리고 진먼지 진드기(D.farinae)였다. 자작나무는 일단 저가 가구에 꽤나 많이 쓰이는 재료다. 그 뒤로 나무의 재질도 유심히 보게 됐는데 생각보다 일상에, 주변에 이 나무로 되어 있는 가구들이 흔하다. 그리고 그 외에도 개암나무(Hasel), 물푸레나무(Esche) 등이 있는데 개암나무 열매는 과자 등에 많이 쓰이는 헤이즐넛이고 물푸레나무는 고급 가구에 많이 쓰이는, 진한 색깔이 멋진 재료다.
이 알레르기 반응 검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나에 대해 아주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을 더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다. 어떤 이가 '나는 오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먹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존중하고 그런가 보다 이해해주는 자세는 내가 남에게 배려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방어하는 행동이기도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