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구한 집 1 - 원룸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베를린에서 이제껏 살았었고 지금도 살고 있는 '집'에 관한 3부작 이야기 중 첫 번째 이야기이다. 원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 뒤 우연한 기회에 조그마한 방이 하나 더 있는 투룸으로 이사를 갔고 지금은 거기에 반칸의 방이 더 있는 집에 살고 있다. 그 사이 난 싱글에서 결혼을 했고 아빠가 되었다. 식구가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거주 공간이 조금씩 더 필요했고 그에 따라 참 바지런을 떨며 집을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 문장으로 적어놓으니 압축적이기도 하고 왠지 간단해 보이는 이 과정은 참으로 요란스러웠다. 그리고 그렇게 주거지가 자연스레 시내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지며 출퇴근은 번거로워지고 길어졌지만 그래도 그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브런치로 세상을 볼 수 있으니 그것도 다행이다.


시계를 거꾸로 2015년으로 돌려 첫 집을 구하러 다니던 상황을 기억해본다. 선배와 협업을 위해 구한 집은 협업에 문제가 생기며 내가 이사를 나오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내가 나가며 비는 방에 선배는 다른 룸메이트를 들인다고 했다. 그 이야기인즉슨, 내가 새로 집을 구해 짐을 옮기는 시기와 새로 이사 오는 사람과의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집에서 나가는 사람이나 이사를 오는 사람이나 모두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어 한 달 정도쯤이야 여유롭게 '빠그라져도' 상대방의 타이밍을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나부터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아주 예리하게 집을 구해 나이스 하게 빠져나가야만 최대한 경제적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누군가와 집을 같이 쓰다가 혼자 살게 되면 이것저것 장만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2015년 5월에 이사를 나가는 것을 목표로 봄이 되기 전인 2월 말쯤부터 본격적으로 집을 보러 다닌 것 같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잠깐잠깐씩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열심히 집을 보러 다녔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갈수록 집을 보는 지역, 가격 모두 너그러워졌다. 집을 구경간 것도 여러 번이었지만 인터넷을 얼마나 뒤졌는지는 나 조차도 모른다. 그저 비슷비슷한 내용들의 '보낸 이메일'들이 그때의 치열한 흔적을 얼핏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매년 진입 인구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대도시들이 늘 그렇듯, 베를린도 원룸이나 투룸이 가장 치열한 집의 유형이다. 찾는 사람도 많고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과 경쟁적으로 서류를 들이대는 영역인 것이다. 결국 집을 구하는데 필요한 서류가 없어서 집을 못 구하는 게 아니다. 서류는 당연히 다 있어야 하고 그렇게 서류가 다 있어도 집을 구하기가 힘든 게 문제다. 원래 이 도시에 있는 집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집을 짓는 속도가 사람이 늘어나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거실과 부엌을 제외한 순수한 '방'의 개수를 이야기하지만 이곳에서는 화장실과 부엌 등 상하수도 시설이 포함된 공간을 제외한 모든 실을 '방'으로 센다. 그러니 어느 집에 방이 두 개란 이야기(독일식으로 2 Zimmer Wohnung)는 한국식으로 '거실, 침실, 부엌, 욕실' 이렇게 구성된 집을 이야기한다. 내가 2015년에 구한 집의 유형은 한국식 원룸, 혹은 방이 하나 더 있는, 독일식으로 1 Zimmer Wohnung, 2 Zimmer Wohnung였고 크기는 45~50m2 정도의 집이었다. 집을 보러 가면 보통 나처럼 혼자이거나 커플, 혹은 어린 아기가 있는 가족들과 마주치곤 했다. 집을 구한다 하면 베를린의 거의 모든 지역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같은 사람들과 마주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피해의식 때문이겠지만, 나는 독일 말을 못 하는 외국인에, 혼자 사는 사람이라 집을 빌리는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밀린다, 좀 불리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물론 이런 찌질한 피해의식에는 사무실 동료들이 쉽게 집을 구하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독일의 어느 지방에서 온 어떤 사람들은 집을 참 쉽게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돌파구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세운 나만의 해결책은,

1. 제대로 독일어로 작성된 이메일을 만들었다. 보통 처음 보내는 메일에는 간단한 자기소개로 시작해 집을 보고 싶다는 약속을 잡는 메일이기 때문에 여기에 구체적으로 언제쯤 가능한지 먼저 '내가 가능한' 시간대를 알려주는 게 좋다. 월세의 개념으로 빌리는 집은 보통 매달 1월에 계약이 시작되나 15일에 시작되는 계약도 있다. 어차피 그들도 한 달 더 집을 비워두면 손해니 빈 집은 부동산 측에서도 사람을 되도록 빨리 들이려고 한다. 그러니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최대한 빠른 시간대에 집을 보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지금 당장 집 좀 봅시다'는 곤란하다.) 내용이 잘 정리된 좋은 독일어 메일 샘플을 가지고 날짜와 수신자, 집 주소 등을 변형하며 이곳저곳 집 보는 약속을 잡았다. 뭐 물론 전화번호만 있는 경우엔 지인의 도움을 받거나 나중에는 나는 그것도 부탁하기가 좀 미안해서 전화번호만 있는 집은 아예 안 봤다. 그리고 후에 집을 보러 간 자리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준비해 온 서류 뭉치들을 건네주며 한 마디씩 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분위기를 봐서 살짝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혹시 영어 괜찮으면 영어로 이야기해도 되겠냐고.' 여기서 좀 갸우뚱한 표정이 나오면 그 사람은 영어가 불편한 사람이니 작정을 하고 독일어를 하던지 아님 아쉽지만 포기하는 게 나을 수 있다.


2. 모든 서류를 스캔, 디지털 자료로 항상 핸드폰에 가지고 다녔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낸 메일에 바로바로 붙임 파일로 무언가를 보내야 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드물지만 진짜 간발의 차이가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3. 한 번은 7호선 Bayerischer Platz근처의 집을 보러 갔을 때다. 집의 문턱을 들어서는 나를 부동산에서 온 사람은 대놓고 아래위를 훑어보며 '여기는 음악 하는 사람은 살 수 없어'이렇게 이야기했다. 물론 베를린에 음악으로 유학을 온 사람들이 꽤 많긴 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경우 없이 내 면전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예외 없는 '무식한' 경우다. 그래서 나는 '난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닌데? 난 건축가야.'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녀는 시종일관 뚱한 표정과 알 수 없는 틱틱거림으로 나의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억울하게 집이 마음에 들었다. 억지로 그녀에게 내 서류를 들이 밀고 며칠 뒤 아무런 연락이 없자 회사의 동료에게 부탁해 그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아줌마의 대답이 명작이었다. '집주인이 그냥 싫데'라고 했다. 뭐가 어떻게 싫다는 건지 더 이상 이야기하기도 싫어졌다. 사실 이런 비슷한 경우가 한 번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유사한 대답을 들은 건 정확하게 3번이었다. 물론, 부동산 담당자가 싫은 건지, 진짜 집주인에게 물어나 본 건지, 집주인은 어디가 싫었는지 그런 건 안드로메다행 질문이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나도 모르게 집을 보러 가는 날에는 다른 날보다 더 말끔하게 차려입게 됐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집을 구하는 입장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것도 싫었고 왠지 부탁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래도 집은 구해야 했기에 말이다. 물론 이런 복장상태가 얼마나 도움을 줬을지는 확인 불가이지만.


Hermannstraße

결국 나에게는 회사에서의 거리와 가격이 가장 중요했다. 그 기준으로 계약한 이 집은 8호선 헤어만 슈트라쎄(Hermannstraße)의 근처로 지하철을 이용하면 집에서 회사까지 20분에 도착할 수 있으며 가격은 모든 부대비용을 포함에 2015년 7월 기준으로 544유로였다. 순수 월세(Kaltmiete)가 370유로, 관리비 및 수도, 난방 비용이 174유로였으며 정확한 집의 크기는 41m2로 원룸이었다.

최초 이 집을 보러 갔을 당시, 살짝 주저하긴 했었다. 집이 베를린의 A구역과 B구역을 나누는 링반(Ringbahn)에 걸쳐있는 지점이라 당시 나의 느낌으로 왠지 살짝 외진 듯한 느낌도 있었고 집에 발코니나 테라스 같은 외부 공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는 무조건 약속이 잡히면 집은 일단 봤으므로 가서 서류를 기계적으로 주고 부동산 사람과 인사도 하고 그러고 왔더랬다. 그 후 며칠 뒤 다른 사람과 계약하기로 했다는 슬픈 소식을 접했다.

그 뒤로 다른 집들을 보러 다니느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부동산에서 다시 메일이 왔다. 계약을 진행하던 사람과 일이 어그러 졌는지 나에게 아직도 이 집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면서 말이다. 보통 이런 경우는 원래 계약하려는 사람의 서류에 문제가 생겼거나 다른 여타 이유들로 인해 계약이 불발되는 경우다. 그리고 내 기억으로 이때는 정말 월말에 해당하는 28일 정도였다. 그 이야기인즉슨 부동산 측에서도 누군가와 계약을 서두르지 않으면 다음 결제일까지 이 집을 빈 채로 놔둬야 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나도 집을 구하지 못해 짐은 예전에 살던 집구석에 쌓아 놓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메뚜기 생활을 하던 때라 빨리 이사를 마치고 짐을 풀고 싶었다. 이 집을 어영부영 놓치면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직 당연 관심 많다고 당장 계약서를 꾸리자고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계약서를 쓰기로 한 날, 나는 선배에게 동행해줄 것을 부탁해 독일어 계약서를 같이 훑어봤다. 다행히 선배는 계약서에 관해 경험이 좀 있어서 바로바로 모든 내용들을 이해했고 별 이상 없이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까지 성공했다. 그 계약서 내용 중 가장 흥미로웠던, 그리고 굉장히 베를린스러웠던 내용은, 매년 월세를 3%씩 인상한다는 내용이었다. 부동산 측에서는 임대인이 바뀔 때마다 법적으로 정해진 10%의 최고 월세 인상률을 적용시키기 위해 건물의 이런저런 부분을 손보고 꽤나 열심히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런 번거로운 과정 없이, 임대인이 나가지 않고 계속 거주하는 경우에도 어느 정도 월세를 인상해 받겠다는 아주 자본주의스런 내용이었다. 독일말로 Staffelmiete라고 정해진 시간에 따라 점점 올라가는 월세 형태를 이야기한다.

거실 및 침실 및 작업실 등 화려하게 항상 변신하는 방.
왼쪽 문이 현관으로 들어오는 문이다. 정면 벽 뒤에 화장실이 있고 오른쪽 문이 조그마한 열린 부엌이다.

텅 비어 있던 부엌에는 부동산 측에서 아주 간단한 싱크대와 핫플레이트와 오븐이 결합된 살림을 놔주었다. 혼자 살기에 아주 적절한 크기를 가진 이 원룸 집에 나는 17개월 정도를 살았다.

이 집의 장점은 옆집 및 아래, 윗집의 소음이 안 들린다는 것이었다. 물론 건물 앞에 제법 큰 도로가 지나가 차 다니는 소음은 항상 창문 너머로 좀 있었지만 세대들끼리의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에 마트들 및 음식점들이 많았다. 1인 가구가 살기엔 만족스러웠다.

이 집에 살면서 가장 불편했던 점은 우체통이 없다는 것이었다. 독일은 아직 서류를 우편으로 부치는 경우가 많은데, 건물의 현관 입구에 세대 별 우체통이 있는 게 아니라 각 세대현관에 별도의 구멍이 우편물을 받는 유일한 창구였던 것이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사람은 A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몇 층 몇 호에 사는지 건물을 돌아다니며 명패를 확인해서 우편물을 배달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안온다! 이 집에 살기 시작한 첫겨울에 마침 은행 체크카드를 잃어버렸는데 카드 및 비밀번호가 적힌 우편물을 제때에 받지 못해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그렇게 받아야 할 우편물을 지속적으로 잃어버리며 이사를 아주 조금씩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당장은 아니라도' 인터넷으로 눈팅은 계속 지속해 더 나은 옵션이 나오면 움직이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고 건물 앞으로 지나가는 헤어만 슈트라쎄(Hermannstraße)는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로라 통행량이 모든 시간대에 많았다. 밤에는 대형 트럭 및 과격한 운전자들이 왱왱 엔진 소리를 들뿜으며 다니기 일수였고 소방차 및 경찰차 소음도 자주 들리는 편이었다. 다른 계절은 뭐 나쁘지 않았지만 더워서 창문을 모두 열어야 하는 여름이 조금 힘들었다.

이사 가던 날 나의 모든 살림이다. 부엌에는 세탁기가 들어가지 않아서 빨래방을 다녔고 1인용 냉장고는 너무 싼 걸 사서 그런지 1년 사용 직후부터 빌빌 거려 가지고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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