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지난번 원룸을 구하는 과정을 종합하자면 ‘너무나 치열한 과정에 의한 반 강제적 거주’였다. 일단 보는 집마다 전화하면 집은 벌써 나갔다 하고 뭐 하면 계약됐다는 식으로, 내가 이 매물을 보는 순간은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 살면서 천천히 숨을 고르고 다음 기회를 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지리멸렬한 집 구하는 과정을 힘들지만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한 촉매제는 ‘우체통의 부제’였다. 은행카드와 같은 중요한 자료는 항상 우편으로 날아다니는 이곳의 문화를 생각하면 우체통의 부제는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그리하여 난, 그 원룸에 살기 시작한 지 1년 반이 되어갈 무렵부터 주변에 이야기하고 다녔다. ‘어디 아는 투룸 있으면 소개 좀 해달라’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집을 구하는 과정을 피해 가고 싶었다. 이런 ‘알음알음’, ‘건너 건너’의 문화는 사실 부럽고도 질투나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렇게 내가 일하는 사무실의 많은 동료들이 하나같이 이야기를 했다.
“난 운이 좋게도 말이야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을 통해 아주 싸게 집을 얻었다고.”
여기서 싸다는 이야기는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부동산 업계가 설정한 월세보다 현재 기준으로 매우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래서 보통 저 부러운 문장의 리액션은 “진짜? 그렇게 싸게?”였다. 심지어 한 직장동료는 나의 이런 투룸에 대한 욕구를 들은 뒤 안 그래도 자신의 친구가 베를린에 투룸을 가지고 있다며 전화를 해 보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거기 역시 대기 번호는 한참이나 길었다. 본인의 지인도 아니고 자신의 친구의 직장동료는 사실 남이니까. (집주인과 임대인이 직접 만나는 일은 사실 아주 드물다. 집의 임대관리와 유지관리는 보통 부동산업체에서 같이 한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베를린의 주거 공급 상황은 또한 아주 다양한 계약문화를 만들어냈다. 일단 한 번 맺은 계약을 어떻게든 계속 지켜내는 것이다. 임대인(Vermieter/in)의 입장에서 임차인(Mieter/in)이 바뀐다는 얘기는 월세를 올려 받을 수 있는 기회인 셈이었다. 물론 그들은 이를 위해 법적인 방어장치를 만든다. 단열재를 덧입힌다던지, 내부의 일정 부분을 공사를 한다던지 등의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월세 인상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동시에 월세 계약을 해지한다는 것은 당연히 오를 월세로 인해 다음 임차인에게는 불리해지는 기회였다. 그러니 나에게 계약이 필요 없어져도, 쉽게 말해 내가 베를린을 떠난다 하더라도 나의 이름으로 계약된 월세 계약을 파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다시 한번 집을 빌려주는 계약의 형태가 생겨난 것이다. 몇 년 동안 살던 계약을 내가 넘겨받는다는 것은 몇 년 전의 월세로 나도 살 수 있음을 뜻했다.
독일말로 운터미테(Untermiete)라고 불리는 이런 종류의 계약이 딱히 불법인 것만은 아니다. 계약서에 따로 분명하게 명시되지 않는 한 이런 임차인간의 임대계약, 속칭 월월세는 위법행위가 아니었다. 몇 달 동안 집을 비워야 하는 경우 이러한 임시계약의 형태로 빈 집을 활용하는 것은 오히려 현명한 문화 중 하나다. 그러나 아주 굳이 이 항목을 딱 짚어 말해 ‘금지’로 규정하는 임대인들이 늘어났다. 자 이제 다음 라운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약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리고 그즈음, 나에게도 수년 전 쓰인 계약을 건네받을 행운의 기회가 한 번 쓰윽 나타난 적이 있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득 말이다.
Hohenzollerndamm
내 지인의 지인, 이래 저래 지나가며 얼굴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분은 독일에서 대학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꽤나 오랫동안 체류한 학생이었다. 그런 분이 베를린에 정착해 이 집을 얻은 건 정확히 2009년이었다. 내가 그 집에 이사 간 것이 2016년 말이었으니 그분이 가지고 있는 월세 계약은 만 7년 정도가 된 조건이었다. 그 뒤로 월세는 나름 물가상승률을 이유로 몇 번 올랐는데 그게 448유로였다. 순수 월세(Kaltmiete)가 308유로, 난방 및 수도 요금을 포함한 관리비가 140유로였다. 집 크기가 52m2였으니 통상 이야기하는 m2당 월세 가격은 5.9유로 정도로 당시 시세에 비해 많게는 절반에 가깝게 싼 가격이었다. 무려 이 당시 내가 살던 헤어만 슈트라쎄의 원룸보다 저렴한 가격이었으니 다달이 월세로 나가는 소비는 살짝 줄어드는 동시에 방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었다!
통상 월세 계약에 명시되어 있는 조건 그대로 그분은 집을 비우기 3개월 전에 이미 계약 종료를 부동산 측에 통보한 상태였고 부동산 측의 확인 편지도 우편으로 도착한 이후였다. 그러니 계약이 종료되는 것만 남은 상황에 내가 나타난 것이다. 정확히 이 시기에 우연히 동석한 나와의 자리에서 안부를 묻길래 ‘방 하나 더 있는 집을 찾고 있다’고 했고 그분은 눈이 번쩍 뜨이며 나에게 상황을 이야기해줬다. 사실 그 자리에서 그분이 아주 조금이라도 귀찮게 생각을 했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고맙게도 그럼 자기가 부동산에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면 이제 가장 중요한 구실을 만들어야 했다. 모든 서류 절차가 끝난 이 시점에 왜 계약을 종료하지 않아야 하는지 말이다.
이 지점이 그분이 나에게 선의를 베푼 지점이다. 사실 독일어로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는 등의 행위는 생각보다 번거롭다. 심지어 그냥 아는 지인을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스토리가 내가 서류상의 ‘남자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베를린을 떠나지만 나의 남자 친구가 베를린에 남는다. 그리고 그가 이 집을 계속 사용하길 원한다’고 썼다. 물론 제삼자는 이 스토리를 들으면 실눈을 뜰 수도 있지만 정말 ‘선의’로 이 모든 과정이 이루어졌다.
거주자 등록이 남았다. 2016년부터 발효된 행정법상 이제는 어느 집에 거주 등록을 하건 해당 주거의 집주인이 동의한다는 서류가 필요하다. 정확히 이 경우를 위해 마련된 법안 이리라. 내 이름과 나이 주소 등이 적힌, 신분 구별이 가능한 정보들이 담긴 이 종이에 집주인, 혹은 본래 임대인의 서명이 있어야 거주지 등록이 가능하다. 이런 행정절차들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베를린도 이제 조금씩 통계에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지지난 달에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한 신입사원이 한 명 있다. 이탈리아에서 온 그 친구는 집을 구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과 위장전입을 했다고 했다. 하나가 버는 것 보기는 둘이 버는 게 나으니 그렇게라도 서류를 합쳐 집을 구하려는 것이다. 그 얘기에 나도 꼰대처럼 아는 척을 했다. ‘정말? 나도 비슷한 적 있었어.’
내가 이사 올 당시 원래는 저렇게 카펫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뿐만 아니라 벽에 얼룩이 많아 칠을 다시 해야 하는 등 은근히 할 일들이 있었다. 내가 집을 넘겨받은 이상 앞으로의 집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나에게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집의 상태를 백지상태로 만들어 내가 이 집을 나갈 때도 임대인이 꼬투리를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많은 노동이 필요했다. 나에게 계약을 건네준 그분의 흔적을 복구하는 것 까지도 나의 몫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 가격에 그 크기의 집에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달기만 한 노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