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베를린에서 이제껏 살았었고 지금도 살고 있는 '집'에 관한 3부작 이야기 중 대망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사를 향한 욕구는 항상 무언가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어딘가 허전하고 간절한 생각이 나의 행동을 지배하면 나는 또 그 난장판에 뛰어들어 내가 들어갈 집을 구하기 위해 무장을 시작한다. 투룸에서 쓰리룸으로 이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두 가지였다. 결혼과 이웃집의 소음이었다.
투룸에 이사 갈 당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작성된 계약서를 넘겨받아 월월세의 형태로 들어가는 것이었으므로 부동산과의 모든 행정적 절차에는 본 계약인의 이름이 항상 명시됐다. 전혀 불편할 것이 없었던 이 생활은 내가 혼인과 동시에 2인 가구가 되며 다른 상황이 됐다. 벌써 약간의 ‘편법’으로 꼬여진 상황 때문인지 부동산 측에선 다른 3자가, 이 경우 나의 아내가, 같은 집에 거주지 등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해왔다. 아내는 나와의 결혼으로 서울에서 베를린으로 오는 상황이었다. 거주지 등록이 불가능하면 그 뒤에 따라오는 모든 행정적 절차가 주르륵 불가능했다.
두 번째 계기는 이웃집 소음이었다. 집 자체가 1960년대에 그냥저냥 지어진 집이어서 수직방향으로 소음이 심했다. 벽에 못을 박으면서 마주한 시커먼 벽돌가루는 전쟁 후의 남겨진 벽돌이라 그렇고 바닥은 프리캐스트 콘크리트로 하중만 버티는 두께라 윗집에서 뛰는 소리가 둥둥 아주 잘 전달된다. 사람이 걷는 정도야 뭐 그런가 보다하고 살았으나 윗집에 말괄량이 꼬맹이가 이사 오면서 그 수준을 벗어났다. 물론 좋은 말로 몇 번 찾아가기도 하고 길에게 만난 아이에게 좋게 이야기도 해 보았지만 아이의 엄마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아랫집 이웃은 어찌나 예민한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기 바빴다. 소음 때문에 마주치면 소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인이 아니라고 무언가 계속 가르치려 드는 유형이었다.
그러나 지난번 편에 밝힌 바와 같이 현재 시세보다 우월하게 저렴한 월세는 그래도 내 엉덩이를 계속 짓눌렀다. 그나마도 아내의 거주지 등록 문제가 겹치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자 이제 새로운 집을 구하는 즐겁고도 설레며 긴장감 넘치는 모험이 다시 시작된다. 일단 아내와 내가 서로 동의한 부분에 의거 어떤 집이 필요한지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해본다.
첫 번째로 집의 위치이다. 이미 살던 집이 링반(Ringbahn, 베를린의 도심을 서울의 지하철 2호선처럼 빙 둘러싼 고속도로 및 에스반의 경계를 이야기한다.)에 걸쳐 있은 위치였다. 여기까지는 도심을 뜻하는 A존이었으나 우리 부부는 자연스레 점점 더 도심과 반대방향의 집을 봤다. 뭐 마음이야 뭐든 가까운 도심 속, 조용한 주거단지에서 살고 싶으나 그것은 마음뿐이었다. 아무튼 우린 살짝 도심에서 벗어나더라도 대중교통이 잘 연결된 장소면 괜찮다고 동의했다.
두 번째로 집의 크기다. 이미 살던 집에서 조그마한 방이라도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항상 가격의 거센 저항에 꺼질 듯 말 듯 간당간당했다. 사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방이 왜 더 필요한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단순히 작업실인지, 혹시 모를 아이에 대비한 예비공간인지 등 말이다. 이 부분에서 가족계획에 대한 얘기가 집중적으로 나왔다. 생길지도 모르는, 그리고 생기면 낳는다에 동의한 미래의 우리 아기를 위해 방이 하나 더 필요하며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은 가급적 고층을 피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사실 둘의 보금자리를 찾는 기쁜 여정이었으므로 우리 부부는 서로에 대한 배려를 최대한 지키고자 했다. (그래도 집을 보면서 싸우긴 많이 싸웠다.) 그러기 위해 ‘이것만은 절대 안 된다’의 조건도 정리했는데,
첫 번째는 중앙난방이 아닌 난방 및 온수시스템이었다. 이미 예전 집에서 전기로 물을 데워 고양이 샤워를 몇 년 동안 한 탓과 스페인에 있던 내내 열악한 난방시설로 인해 항상 추운 겨울을 보낸 나의 경험이 합쳐진 결과였다. 스페인은 참 따뜻하지만 난방시설이 아예 없는 집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안된다’는 너무 많은 입주공사를 요하는 집이었다. 난 역시 직업병으로 인해 도전의식이 마구 치솟았고 아내는 고개를 절레절레할 뿐이었다. 부엌 정도야 뭐 든든한 이케아가 있지만 집 전체를 손봐야 하는 식의 최대한 추가 작업이 없는 집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 살던 사람이 몇십 년 살다가 나간 경우, 집주인은 집을 아예 싹 수리를 하던지 아님 그 상태로 싸게 내놓아 ‘너네가 살고 싶은데로 해. 대신 그만큼은 저렴하게’ 내놓는 경우가 있었다. 난 후자도 아주 매력적으로 생각해 이런 조건의 집도 많이 봤지만 그녀는 완강했다.
Zehlendorf
그렇게 우리가 찾은 집은 베를린의 B구간의 끝에 걸터앉은 첼렌도프(Zehlendorf)이다. (사실 이 정도 도심에서 벗어나면 거리 이름을 이야기하는 게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첼렌도프라고 해도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특징은 유치원, 학교 등 아이를 키우기에 필요한 시설들과 요양원 등의 고령인구를 위한 시설들이 서로 경쟁하듯 많다는 것이다. 확실히 최근 트렌드를 주도하는 ‘힙’한 동네는 아니다. 그 부분에서 항상 젊고 힙하게 살고 싶은 30대의 욕구를 일부분 접어야 했다. 집이 위치한 동네는 1호선 에스반(S Bahn)이 지나는 지역이라 도심지역까지는 꽤 편리하게 이동 가능했다. 이 대중교통의 장점이 사실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집 자체가 워낙 오래된 집이라(서류에 1928년 지어진 것으로 되어있다. 전쟁은 어떻게 피해 간 모양이다.) 편리한 최신식 시설은 없지만 한 번쯤 알트 바우(Altbau, 오래된 집이란 뜻으로 보통 세계대전 전에 지어진 집들을 말한다.)에 살아보고 싶었던 우리 부부의 바람은 충족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요새 지어지는 집들과 다르게 집에 들어오는 길과 입구에 몇 개의 계단이 있다. 이 몇 개의 계단 때문에 유모차를 가지고 이동하기에 좀 불편하다. 사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빨리 세상엔 올 줄 알았다면 이 입구 계단을 더 심각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이 집이 위치한 동네는 말 그대로 '주거 지역'이다. 슈퍼마켓들이 여러 군데 있고, 탁아소, 유치원 및 학교 등 아이들의 교육기관 등과 녹지도 많다. 처음부터 이렇게 계획된 동네라 그런지 이 틈을 비집고 상업시설들이 들어올 틈새가 잘 없다. 그러니 주말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디든 번화가로 이동해 시간을 보내던지 집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식이다. 집 바로 앞의 힙한 카페에서 늘 마시던 음료를 주문할 수는 없지만 많은 녹지와 한산함은 도심 지역보다 한결 낫다. 동네 대부분의 주민들도 나와 같이 규칙적인 출퇴근 시간에 어디에선가 나와 어디론가 바삐 향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의 대중교통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모습은 꽤나 균일하다.
우리 아이가 세상에 나온 뒤 이 동네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점잖게 적응이 됐다. 워낙 동네에 아이들이 많다 보니 이곳저곳에 부모들과 아이들을 위한 배려(라고 쓰지만 난 마케팅이라 읽는다.)들이 있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역시 아이에 대해, 유모차를 가지고 밖에 나온 우리 부부에게 호의적이다. "모르는 사람과 길에서 눈을 마주치면 살짝 미소를 지어 '인사'비슷한 것을 하는 거야"라고 나의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사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살벌하게 불어나는 살림에 점점 두려워지기는 한다. 세 식구의 살림은 세명의 살림 ‘곱하기’ 알파이다. 살림들을 해결하게 위해 수납공간에 대해 머리를 많이 굴려야 했는데 그렇게 얻어걸린 우리 집 '베란다'는 내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공간이다. 아주 가끔씩, 모든 가족이 아침에 깨지 않은 조용한 아침에 베란다에 앉는 걸 즐긴다. 너무 자주 주어지지 않는 그 빈도수마저 나에겐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