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한때는 나도 저녁을 한가득해서 다음 날 점심으로 도시락을 싸곤 했다. 불쑥불쑥 당기는 매운맛이나 얼큰한 맛을 어느 정도 내가 먹고 싶은데로 달랠 수 있고 점심 값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더운 날씨에 시원한 냉면 혹은 냉메밀을, 오싹하고 서늘한 날씨엔 설렁탕이나 뜨끈한 칼국수를 먹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언제나 절박하다. 정해놓은 듯 주기적으로 먹던 중식도 빠지면 섭섭하다. 별미인 헛제삿밥, 내 사랑 만두, 순두부찌개, 제육볶음 등 점심으로 먹을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허깨비일 뿐, 매일 비슷한 점심 메뉴로 고민한다. 나에게는 너무 익숙해진, 그러나 여전히 흥미로운 몇 가지 베를린 크로이츠베억(Kreuzberg)의 점심 메뉴를 소개한다.
크로이츠베억(Kreuzberg)은 독일이 통일되기 전, 이른바 냉전시대에는 베를린의 아주 가난한 동네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나 통일이 되고 이곳은 다양한 문화를 바탕으로 베를린의 힙한 장소의 대명사가 되었다. 물론 서독의 전통적인 주거 지역에 비해 무언가에 취해 있는 사람을 지하철역에서 만날 가능성은 살짝 높지만 그래도 모험심이 가득한 눈동자에게 예상치 못한 광경을 선물해주는 '재미진 지역'이다. 여느 날은 긴급 호송 헬기가 지하철역 앞 공터에 급하게 착륙하는 '인생 사진'을 건지게 해 주기도 한 이 다채로운 지역에서만 즐길 수 있는 메뉴로 고민해봤다. 현재 2019년 8월 기준이므로 후에 이 글을 읽는 분은 방문 시 여전히 유효한지 확인을 하시기 바란다.
Maroush
Adalbertstraße 93, 10999 Berlin
레바논식 샤바르마(Shawarma, 2012년 개봉된 ‘어벤저스’에서 토니 스타크는 샤와르마라고 발음했다. 독일식으로 w로 인해 굳이 ‘바’라고 발음됐다.)를 파는 곳이다. 일단 고기의 품질이 정말 꾸준하고 월등하다. 거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저렴한 가격을 자랑한다. 지난 5년 동안 가격 변동이 없었다면 거의 끝판왕이다. 공갈 호떡같이 생긴 동그라한 타원형 빵에 고기와 갖가지 야채를 넣어주는 ‘빵’의 형태와 접시에 모든 걸 보기 좋게 깔아주는 ‘접시’ 형태가 있다. 제이크 질렌할(Jake Gyllenhaal)을 닮은 꽁지머리 사내가 주로 계산 및 주문을 담당하는데(사실 이 가게는 아주 조그마한 가게라 모든 직원들이 멀티다!) 영어와 독일어에 모두 정통하다. 그리고 요새는 관광객들도 꽤 많은 모양이라 일단 가서 어떻게 주문하는지 물어봐도 오케이다.
고기도 점심시간 전에 가면 소고기도 고를 수 있다. (소고기는 항상 양이 조금만 달려있다.) 보통은 닭고기나 채식의 형태인 팔라펠(Palafel)을 많이 시킨다. 거기에 생과일과 야채를 갈아주는 주스는 특미이다.
샤바르마 빵 3,5유로(닭고기, 소고기 모두 가격 동일), 샤바르마 접시 5유로. 난 아직 채식 메뉴인 팔라펠을 먹어본 적이 없어 가격은 모르겠다. 케밥의 성지와도 같은 크로이츠베엌(Kreuzberg)에서도 제대로 된 케밥을 먹으려면 단일 메뉴에 10유로 이상은 생각해야 하지만 여기는 다르다! 10 유로면 원하는 메뉴와 원하는 음료를 남길 정도로 먹을 수 있는 곳이다.
Olmo (Alimentari & Vini)
Skalitzer Str. 23, 10999 Berlin
이태리 식료품 가게로 가게 한 켠의 부엌에서 간단한 점심메뉴를 파는 곳이다. 이곳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식당 파트가 점점 커졌다. 그 날 그날에 따라 보통 3-4 종류의 파스타가 메뉴로 올라온다. 8,5유로의 가격은 몇 해전만 해도 비싼 가격이지만 요새는 새로 생긴 식당이 많아져 그렇지도 않다. 그러나 이곳은 한 잔의 음료를 포함한다. 적포도주, 백포도주, 물이나 가스 물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몇 달 전부터 심지어 더 비싼 9,5유로의 메뉴가 하나씩 올라온다. 살짝 더 귀한 재료를 넣는 식으로 말이다. 저녁에 약속이 있는 날 여기서 점심을 먹고 와인이나 파스타 재료, 혹은 간식 등을 사 가곤 했다. 몇 해전 친하게 지내던 동료는 송별회 날 이곳에서 몇십 병의 와인을 주문하기도 했는데 무엇을 사던 신뢰가 가는 곳이다. 가게 입구 반대쪽 깊숙한 곳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먹는 곳이다!
Café Alibi
Oranienstraße 166, 10999 Berlin
가게의 분위기로 봐서나 메뉴로 봐서 아주 아주 특별함이 가득한 곳은 아니다. 더군다나 7,5유로에서 9,5유로까지 꽤 비싼 편에 속하는 점심이기에 처음에 상당히 꺼려하긴 했었다. 그러나 자주 바뀌는 점심 메뉴는 일단 어떤 것을 골라도 맛있다. 이 가게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상당히 고퀄의 음식이 숨어있는 곳’이다. 다양한 파스타들, 혹은 다양한 부위의 스테이크 메뉴들을 비롯해 오후 16시까지 주문 가능한 아침메뉴도 훌륭하다. 친절하게 입구 옆에 오늘의 메뉴를 손으로 써 놓지만 필기체라 알아보기는 힘들다. 친절하게 영어로도 메뉴를 써 놓으니 걱정 말고 대강 아무거나 시켜보시길!
여담으로 스위스 출신 건축가 크리스티안 케레츠(Christian Kerez)가 자주 나타난다. 몇 해전인가 그는 취리히 사무실을 정리하고 베를린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 사무실이 마침 내가 일하는 곳 근처라 점심시간에 종종 마주친다.
Café Luzia
Oranienstraße 34, 10999 Berlin
이 동네 가게들이 보통 Café라는 가게명을 달고 있지만 커피 및 간단한 음료부터 점심에는 식사, 저녁에는 안주거리와 술까지 시간대에 따라 파는 내용이 변화하는 식으로 운영이 된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정말 날 것의 거친 내부 광경이 여러 가지 배경을 제공한다. 예전 통일 직후의 크로이츠베억(Kreuzberg)의 모습이 이랬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실내에서 보나 길에서 보나 거칠고 까끌까끌한 벽돌과 콘크리트의 느낌과 새로 덧댄 큰 통유리의 깔끔함의 대비가 장관을 이루는 이곳에서는 칵테일을 한 잔 추천한다. 이곳만의 특별한 레시피로 만들어진 특별한 칵테일이 아니라 장소와 알코올이 이루는 조화가 좋다. 오래돼서 가죽이 쩍쩍 갈라진 라운지 의자에 앉아 브랜디 한 잔을 주문해 보는 것도 좋다. (주말이 되기 직전 금요일 저녁 늦게 가면 어디서 쏘는지 모르는 요란한 레이저와 음악과 함께 가게 전체가 클럽과 같이 바뀌기도 한다.)
Art en chocolat
Oranienpl. 15, 10999 Berlin
마지막으로 후식이 빠지면 섭섭하다.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주로 팔지만 본래 초콜릿 가게이다. 이 가게 주인분의 초콜릿 컬렉션은 아주 심오하고 엄격하다. 초콜릿뿐이랴, 유럽의 각국에서 실어온 달콤함이 가게 가득이다. 그러니 무엇을 무작위로 짚어도 나풀나풀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
겨울에는 길게 문을 닫기도 하지만 봄이 되어 햇살이 뜨거워질 즈음 사람들은 벌써 줄을 다퉈 한 스푼의 아이스크림을 주문한다. (오늘 난 호기롭게 두 스푼의 이이스크림을 과식했다!) 베를린의 아이스크림의 가격은 정찰제라도 있는지 보통 한 숟갈에 1,2유로 정도씩 하는데 (아이들은 심지어 20센트 깎아준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향도 진하고 무엇보다 자주 바뀌는 메뉴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 직장 가까이에 있는 서운할 정도로 맛있다.(주말에는 이 근처에 오기도 싫으니까.)
(대문사진을 제외한 모든 사진의 출처는 구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