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그녀

사랑한다곤 안 했다

by 버켓노트

가슴 떨리는 첫사랑, 급성심근경색 이외에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또 있습니다.

나를 미치게 하는 사람.


2년간의 첫 회사에서 이직했을 때였습니다.

나름 이 업계에 기반을 다졌다고 생각했던 것이 매일 박살 나고 있는 날들이었죠. 아는 것들은 지금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새로 알아가야 할 것들은 꼴랑 학사 나와서 아는 척하기에는 꽤나 전문적인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챙겨봐야 할 꼬부랑 영어 문서들이 아니라 따로 있었죠.


같은 팀의 그녀.

사람이 미우면 이렇게까지 미울 수 있을까요? 업무에 관해 물어봤을 때 한숨으로 시작해서 짜증으로 끝납니다. 내가 멍청해서 그런 거겠지. 아, 난 왜 이 정도밖에 안 될까. 하루에도 몇 번씩 깨지고 다시 동태눈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있으면 내 시간은 거기서 또 멈춰버립니다. 해는 저물고 하루이틀 나보다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 줄어갑니다. 청소 아주머니가 전 층의 불을 꺼야 퇴근하시는지 우리 층에 어리바리한 남정네 하나만 앉아서 머리 긁고 있는 걸 30분 간격으로 확인하시던걸 생각하니, 그때의 아주머니께도 죄송하네요.


같은 팀이니 매일 마주해야 하고, 연관된 업무가 많아서 이야기하지 않고 지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너는 계약직 직원보다 못하다', '내가 네 일까지 해야 하냐'로 박아대는 저 입에 대홍단 감자를 꽂아 넣고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었던 때마다 100원씩 모았으면 100억 부자가 바로 나다.


업무를 하면서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어쩔 수 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 선생, 친구, 연인까지 그 모습은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우리의 매일을 미치게 한다는 것이죠. 생각만 해도 불안함에 가슴이 죄어오는 느낌이고, 숨 쉬기가 어렵습니다.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보려 해도 현실적으로 결단을 내리기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것들이 나를 해칠 때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 환경에서 자랐을까'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연민이 피어나진 않습니다. 계속 미워요.

그래도 이해는 됩니다. 그때부터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봐요. 아 이 사람은 자라면서 무언가 틀렸을 때 타박받고 자랐고 그걸로 자기를 꽁꽁 얽매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방법 외엔 모르는 거구나.


아 다르고 어 다른 건 누구나 알아도 자기가 말하는 게 아인지 어인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 사람은 나한테 뾰족하게 말하는 방법 밖엔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부족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나는 실제로 몰라서 혼났고, 몰랐던 것 때문에 팀 목표에 피해를 끼쳤기 때문에 질타를 받아도 마땅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정도의 말까지 들으면서 해결될 것은 없다. 감정과 이성은 구분해서 문제 해결에 포커스를 맞춰야 성과가 나는 거니까. 전임자가 아니면 모르는 거니까 물어봐야 하는 거고, 그렇게 자신의 업무 레퍼런스를 쌓아가는 게 회사원 아닌가.


회식 때 잔뜩 술을 먹고서도 아이패드를 펼쳐 그 선배의 숙제를 하며 집에 가고, 출근해서 바로 마주하기 싫어 빈 회의실에서 출근 시간이 될 때까지 엎드려있고, 여자친구에게 위로받고, 선배들에게 너무 힘들다며 덩치값 못하고 울며 털어놓던 시간들을 지나 결국엔 팀장과의 면담을 통해 다른 팀으로 옮겼고, 옮긴 팀에서 '아... 후...'가 아닌 '어~'를 해주는 팀원들을 만나 회사를 웃으며 다닐 수 있구나라는 걸 느끼고 있다. 웃으며 다니니 내 업무와 다른 팀원들의 업무까지 모두 소중해지고 개인적인 일에도 관심이 간다. 그래, 친해지고 싶다.


'그 사람 때문에 그만둔 사람 많으니까 뭐라 하더라도 상처받지 마요'라는 말을 그 팀에 배정받자마자 해줬던 다른 팀의 선배님, '저 이 팀에서 이런 대우받으면서 이 회사 더 못 다니겠어요'라며 메신저로 말해주던 팀을 옮긴 내 자리로 온 지금은 그만둔 다음 신입사원의 말이 떠오른다. 그 팀에서 그만두기 전에 내가 해줄 수 있었던 것이 있진 않았을까 하는 회한까지 같이.


나를 상처받게 하는 모든 것들에게서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그날까지.

누군가는 당신을 항상 응원하고 있길 바라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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