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형은 믿거? 나는 언제 걸러질까
혹시 지금 본인의 성격을 만들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나요?
저 같은 경우는 군대에서였습니다.
점심시간이었고 바리깡 냄새도 식지 않은 이등병이었던 저는 선임들보다 빠른 식사를 마친 후 각을 잡고 있었죠. (이때 표현으론 '땡기고 있는다'였습니다)
우리 소대 선임이 타 부대 병장과 신입 이등병이었던 저를 두고 신입이 들어왔네 얘 주특기가 뭐네 하면서 얘기를 하던 중 그쪽 병장이 저한테 뭔가 농담을 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등병답게 어리바리 당황하면서 '어.. 아 그게 아니고..'라고 하고 있으니 정색을 하더니 '야, 누가 너보고 뭐래?'.
저는 지금까지도 이 한마디를 제 인생을 관통하는 한마디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병장과 일면식도 없었고 그 뒤로도 친해지긴 커녕 전역할 때 잘 가십시오 인사가 두 번째 나는 대화였을 만큼 아무 관계도 없었지만 느낀 것은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기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학교, 회사, 노인정 거쳐서 무덤에 들어가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상처받죠.
저는 그중에서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끝까지 감싸 안아야 한다, 이해해야 한다 등으로 포장하는 위선자들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병장의 말로 저는 지금까지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는 전혀 눈치 볼 필요가 없다.'라는 신념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사람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을까 하며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남의 기분에 휘둘리고,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잘 나가던 TV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사회의 룰을 바꾸고,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돈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인간이 본능적으로 덜 상처받기 위해 택한 방법이 MBTI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성격을 16가지로 나누는 건 혈액형 따지기에서 하나도 진보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그래 이 사람은 T라서 내 기분을 생각해주지 않는구나, J라서 나와 여행 중에 싸우게 되는구나'같은 자기 암시로 스스로 상처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부작용으로는 같은 MBTI라면 믿고 거른다는 사회 통념도 같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마치 유행하는 MBTI가 아니면 '비주류 인간'취급하듯이 말이죠. B형 남자는 나빠, AB형은 돌+i라는 것에서 진전이 없다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죠.
나는 누구를 거르고 살아갈까, 나는 언제 걸러질까.
내리는 비에 쓸려가는 많은 것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