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

스웨덴 강간 피해자의 고백

by 검사이다

나는 요새 스웨덴에서 공부를 하며 ‘동의(consent)’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법률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스웨덴에서는 2018년부터 성관계에서 ‘동의’가 명확히 표현되지 않으면 강간죄가 성립된다.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자발적인 동의가 있어야 하고, 술에 취해 의사 표현이 어려운 상태라면 그것만으로도 동의가 없다고 본다.


"비동의강간죄가 시행된 후 저는 비로소 자유로워졌어요. 그전에는 제대로 거절하지 않은 저를 탓하느라 너무 괴로웠는데... 처음으로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인정받는 기분이었어요"

- 엘렌, 28세, 스톡홀름 거주, 성폭력 피해자


법이 제정된 이후 스웨덴 한 피해자의 인터뷰이다.

동의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피해자가 자신을 탓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게 왜 당연하지 않은 나라가 있지?’라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한국에는 아직 비동의 간음죄가 없다. 누군가 ‘싫다’고 말하지 않았고, 상대가 폭력을 쓰지 않았으며, ‘거부하지 않았다’ 면 합법적인 성관계가 되어버린다. 피해자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아도,

“그때 왜 거기 갔어?”, “왜 같이 잤어?”, "왜 제대로 거절 안 했어?", “왜 신고를 바로 안 했어?”라고 묻는 사회.

경찰관이나 검사가,

법정에서 가해자의 변호사나 판사가,

주변의 친구들이,

부모가,

피해자에게 이런 질문들을 한다.

그러니까 결국, 피해자가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구조다.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스웨덴의 친구들에게 법 제정 전후로 달라진 것이 있냐고 물어봤다.


"성관계 전에 동의를 ‘확인하는 문화’가 눈에 띄게 늘어났어요. 특히 음주한 상태에서는 더 조심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졌죠. 예전에는 술을 마신 상황에서 일이 생겨도, ‘내가 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탓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동의를 명확히 받지 않았다면 잘못은 상대에게 있다’는 인식이 많이 퍼졌다고 생각해요.”


“동의법은 단순히 처벌 기준을 바꾼 게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인 성적 상호작용을 바꿨어. 동의는 더 이상 ‘말로 거절하지 않았으면 괜찮다’는 식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명확해야 한다’는 기준이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야”


스웨덴도 한때는 강간 피해자의 야한 옷차림을 지적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까지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였다.

우리는 늘 ‘왜 그랬을까’라고 자책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렇게 교육받았고, 그렇게 살아야 효율적이라고 배우며 컸다.
특히 한국은 전쟁 이후 빠르게 성장해야 했고, 개인의 권리는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자주 뒷전으로 미뤄졌다.
‘한강의 기적’을 만든 원동력은 그 효율성이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개인의 존엄이 외면당했던 시간이었다. 특히 여성의 몸과 권리는 그 그림자 안에서 더 오래도록 침묵을 강요받았다.


스웨덴 대법원은 이후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어떤 남성이 술에 취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다. 그녀는 명확한 거부도, 동의도 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거부하지 않았잖아”로 끝났을 사건.
하지만 법원은 이렇게 말했다.
“동의는 분명하게 확인했어야 했다. 너는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죄를 선고했다. ‘과실 강간(negligent rape)’이라는 이름으로.


동의를 확인할 ‘의무’라니. 나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놓였다.
누군가의 몸에 접근하려면, 상대가 괜찮은지, 마음이 있는지를 ‘확인할 책임’이 있다는 이 단순한 진리가, 어째서 한국에서는 법이 아닌 ‘예의’로만 취급되는 걸까.

이미 미국, 스웨덴, 독일, 영국, 캐나다, 호주, 아일랜드 등에서는 이런 개념을 도입해 폭행 및 협박없는 성범죄도 처벌하고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과실간음죄라는 개념도 없다. 누가 동의 없이 관계를 맺어도, 정말 강제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은 어렵다.


그리고 그 ‘입증’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수치심과 혼란 속에서 피해자가 기억을 되짚어야 하고, 사회의 수많은 의심을 뚫고 ‘내가 피해자다’라고 증명해야 한다. 가해자는 침묵하고, 피해자는 온몸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 불균형한 구조에서 누가 감히 신고를 할 수 있을까. 그러니 침묵은 반복되고, 자책은 내면화된다.
“내가 조심했어야지.”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어.”

하지만 진짜 잘못은 ‘확인하지 않은 사람’에게 있다고 국가가 못 박아 준다면?


그리고 우리는 그 책임을 사회와 제도가 지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의미의 ‘동의’ 문화다.

물론 스웨덴식 동의법도 완벽하지는 않다. 여전히 입증은 어렵고, 무고한 가해자를 만들지 않아야 하며, 법원에서 피해자의 말이 의심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법은 방향을 제시한다.
“당신은 상대방의 동의를 확인할 책임이 있다.”
이 말 한마디만으로도, 피해자는 자책하지 않을 수 있다.
더 이상 자신을 탓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나는 그 시작이 ‘동의’라는 두 글자에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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