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좋아
카레를 만들었다.
야채를 썰고, 볶고, 물을 붓고, 카레를 넣고 시간을 들여 뭉근하게 끓였다.
카레 향이 부엌을 채웠다. 꽤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낸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냄새였다.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밥.
파김치랑 같이 먹으면 오늘 하루쯤은 괜찮았다고 대충 합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냉장고를 열었다.
없었다...
밥이 없었다.
이럴 수가 있나..!
카레를 다 만들어 놓고 밥을 잊는 사람이 있나.
결혼식장까지 다 준비됐는데 신랑이 안 온 느낌이었다.
하객인 야채들도 다 와있고, 카레신부도 대기 중인데, 신랑만 없다.
잠깐 멈춰 서서 생각했다.
지금 밥을 할까. 햇반을 사러 나갈까. 아니다. 그럴 만큼 내 인내심은 길지 않다.
결국 대충 찬장을 뒤져 파스타 면을 꺼냈다.
그러니까 이건 신랑 대신 급히 다른 남자를 구해온 것이다.
카레 냄비를 보면서 잠깐 고민했다.
이 결혼… 진행해도 되나.
카레양 괜찮겠니...?
끓는 냄비 안에서 면이 천천히 풀어졌다.
익숙한 것이 조금 낯설어지는 순간이었다.
괜찮을까 의심을 하던 차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일들이 가끔 있다.
실수로 시작하고, 그래서 조금 불안한데, 어쩌다 보니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하며 밀어붙이게 되는 일들.
그 사건처럼.
처음부터 잘못 끼워 맞춰져 있었다.
당시 경력이 많지 않던 나는 사건 하나를 배당받았다. 당직 때 여자 선배가 구속을 해 올라온 사건이었다.
아저씨의 죄명은 상습특수절도. 대충 흉기 들고 상습적으로 물건 훔치는 사람이다.
나는 별생각 없이 기록을 넘겼다.
늘 하던 대로, 사실 꽤나 쉽고 명확한 사건이었고, 선배가 한번 판단을 했던 사건이기에.
그런데 범죄경력조회서를 넘기다가 손이 한 번 멈췄다.
이미 상습절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경보음을 울리고 있었다. 이 사건 이전에 저지른 범행으로 처벌받은 것이었다.
나는 아니겠지... 식은땀을 흘리며 날짜를 다시 보고, 판결 확정 시점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이건 따로 처벌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같은 흐름 안에서 상습적으로 이뤄진 절도 범행은 법이 피의자의 이익을 위해 한 번에 묶어버린다.
따라서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저질러진 행위라면, 그 이전의 것들은 이미 한 덩어리로 평가된다.
사고다.
한 번 묶인 시간은 다시 잘라낼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이미 지나간 부분을 다시 끄집어내 다시 처벌하려 하고 있었다.
늦게 알아차린,
너무 명백한 실수였다.
책임은 도장을 찍은 Y선배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그 선배는 심각하게 회의하고 있는 우리에게 오더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상큼한 얼굴 말했다.
“나 이거 빠져도 된대^^”
말끝이 가볍게 올라갔다.
그 말 뒤에는 평소 총애를 받던 차장검사실에 다녀온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자기가 찍어놓은 도장이었는데, 그 도장에서 제일 먼저 손을 뗀 것도 자기였다.
얄미웠지만 어쩔 수가 없다. 얄미워할 시간도 없다. 기록을 받자마자 곧바로 발견 못한 내 잘못도 있었다.
남은 수습은 나와 공판검사가 해야 했다.
부장은 기록을 집어던졌다.
말 그대로 나를 향해 던졌다.
종이 묶음이 공중에서 짧게 흔들리다가
책상 위에 부딪혔다.
탁.
“이게 지금 뭐야!!!!!!!!!!!!”
B부장검사는 판사 출신이다. 보통 그런 이력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권위를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B부장은 피의자 앞에서 조사를 하며 발톱을 깎다가 그 소리가 그대로 녹음되어 언론에 나간 적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그의 승진은 멈췄고, 대신 예민함만 남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날의 분노가 우리 때문이었는지, 자기 인생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우리는 그를 풀어줘야 했다.
지금 당장.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이 사람은 나가면 사라질 사람이었다. 내지 않는 벌금도 있었고 분명 밝혀지지 않은 범죄도 많을 터였다.
그래서 다시 기록을 뒤졌다. 남아 있는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
그때,
이상한 공백 하나가 보였다.
이미 처벌된 범행 이후,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먹고살았는지 그는 설명하지 못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경찰서에 협조요청하고, 최근 비슷한 사건을 뒤지고, 피해자를 하나씩 찾아내고,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천천히 맞춰졌다. 처벌 이후 신고된 강도사건이 의심스러웠다.
피해자가 확인되고, 물건이 나오고, 피의자의 동선이 맞아떨어지고, 마지막으로 DNA까지 확인됐다.
그는 결국 자백했다.
우리는 그를 풀어줬다.
그리고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는 이유로. 그전보다 더욱 중한 강도죄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끝에 다른 길이 시작된다.
그 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 강도 사건의 진범을 모르고 그냥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전에 연쇄살인범이 한 섬뜩한 말이 있다.
"중대한 범죄가 밝혀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이미 교도소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에요. 중간쯤 되는 죄목으로."
우리는 늘 한발 늦고,
어긋나 있고,
완전히 틀린 방향으로 간다.
그런데 그 틀림이 아니었다면 인간은 아무 데도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콜럼버스가 인도를 발견하려 했으나 완전히 다른 대륙에 도착한 것처럼,
스펜서가 실험 중 실수로 녹인 초콜릿을 보고 전자레인지를 발명한 것처럼.
그날 이후로 나는 실수나 변수를 덜 두려워하게 된 것 같다.
파스타를 넣은 카레는 꽤 괜찮았다.
아니, 밥이랑 먹을 때보다
조금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