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실에서의 기다림들
파김치를 담갔다.
파김치는 야속하다.
막 담근 순간 제일 먹고 싶은데 먹을 수가 없다.
양념은 맛있는데 파와 양념이 아직 서로를 잘 모른다.
약간 이런 느낌이다.
파: “안녕하세요.”
양념 : “아… 네… 처음 뵙겠습니다.”
그래서 기다려야 한다. 이제 막 소개팅한 파와 양념이 서로 친해질 때까지.
그걸 알면서도 나는 파김치를 둔 부엌 쪽을 몇 번이나 애타게 쳐다본다.
혹시 지금쯤은 조금 익지 않았을까 싶어서.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했던가
사람은 원래 기다림을 잘 못 참는다.
검사실에서도 그렇다.
구속 피의자가 오는 날이면 하염없이 기다린다.
교도관들이 워낙 바쁘기 때문에 피의자들은 순서대로 검사실 이동을 한다.
그래서 다른 일을 시작하기도 애매한 채 “곧 오겠지” 하고 시간을 보낸다.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제일 급한 일이 자기 사건일 것 같지만 의외로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검사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기다림이 하나 있다.
어떤 소년을 기다리던 날이었다.
그 친구는 한체대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키도 크고 체력도 좋아 유도 올림픽 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죄명은 절도.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편의점에서 먹을 것, 마트에서 식료품 이런 것들을 상습적으로 훔쳤다.
경찰 기록을 보니 피의자는 할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었다.
시골에서 할아버지가 보내온 용돈으로 생활을 하는데 그게 너무 미안해서 말을 못 하고 그냥 물건을 훔쳤다고 했다.
심지어 여자친구가 생리대 심부름을 시켜 그것까지 훔쳤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유도 선수의 손에 들려 있던 건 금메달이 아니라 생리대였다.
특이한 것은 그 친구의 생일이 코앞이었다.
생일이 지나면 성인이 된다. 그전이면 소년범이지만 그 후면 성인이 되기에 처벌은 훨씬 무거워진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연락을 했다.
“조사받으러 와라.”
그런데 오지 않았다.
연락도 잘 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계장님이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검사님, 이 새끼 그냥 처리하시죠.”
나도 마음이 흔들렸다.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다
정말 그랬다.
사실 그냥 처리해도 되는 간단한 사건. 하지만 기록에 남아 있던 몇 줄이 자꾸 눈에 걸렸다.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혼자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손자.
그래서 나는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오겠다 했다가 안 되겠다 했다가 또 연락이 왔다.
“내일 갈게요.”
문제는 그 ‘내일’이 생일 전날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건 니 운명이다. 내일 네가 오느냐 안 오느냐로 인생이 많이 달라질 수도 있다.'
다음 날.
'안 오겠지' 그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쯤 문이 열렸다.
덩치 좋은 친구가 운동 가방을 메고 어색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 Blaise Pascal
왜 이렇게 늦게 왔냐 좀 겁을 주니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검사님… 제가 며칠 동안 큰일 나는 줄 알고… 할아버지 뵙고 왔습니다.”
신변정리도 조금 했다고 했다.
사실 그날 바로 보호처분을 할 수 있도록 보호관찰소에도 미리 연락해 두었고 보호관찰관도 배정해 둔 상태였다. 나의 큐싸인과 함께 노련한 전문가들 덕에 피의자는 처벌 대신 교육과 보호관찰을 받게 됐다.
그는 조사를 마치고 무언가 끄적인 종이를 건네고 갔는데 유도 대회에서 메달을 따고 싶다고, 나중에는 특채로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집에 돌아와 부엌으로 갔다.
담가 둔 파김치가 가만히 익어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기다림은 참 답답한 시간이다.
그냥 빨리 끝내버리고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그 시간을 지나야 만 한다.
내 노르웨이 친구는 느긋한 북유럽 문화를 답답해하는 나를 향해 늘 말했다.
'기다림 뒤에는 더 좋은 것들이 와'
파김치가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파김치 통을 열었다가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