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날들

도자기를 만드는 법 2

by 검사이다

나는 내가 꽤 섬세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물레 앞에 앉고 나서야 알았다.
그건 생각보다 허술한 자기 평가였다는 것을.


도자기 물레 작업은 생각보다 섬세하다.

흙은 거칠게 다루는 것을 싫어하고

손끝의 작은 망설임도 알아챈다.


마치 연약한 몸을 감싸듯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밀어 올린다.

깨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 그러나 정확하게 —
잠깐 힘을 주고 곧 풀어주어야 한다.

말이 쉽지.


그날도 그랬다. 물레 위에서 흙은 빠르게 돌고 있었고 나는 두 손으로 그 중심을 잡고 있었다.

연필만 잡아본 가느다란 내 팔이 조금씩 떨렸다.

선생님이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손에 힘을 너무 주지 말고, 중심을 느껴 보세요.”


그때였다.

옆에 있던 친구가 갑자기 소리쳤다.

"으앗, 나 망했어! 봐봐"
아주 잠깐이었다.

나는 아주 잠깐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손끝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흙은 그 작은 흔들림 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정성을 들여 끌어올리던 그릇이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주저앉았다.

나는 놀란 채로 멍하니 손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뒤에서 내 손 위에 손을 얹었다.

“괜찮아요. 안 무너지는 게 이상한 거예요. 다시 중심을 잡아 보세요.”

타인의 힘을 살짝 보태자 흙은 다시 천천히 모양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물레 위에서 중요한 것은 재능도 노력도 아니다. 중심이다.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그 중심을 잃고 헤맸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아이들이 청소를 안 해서 그날도 선생님은 반장을 교실 앞으로 불러 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반장이니까 맞아야지.”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내 얼굴보다 큰 손으로 뺨을 맞곤 했다.

어쩌면 그때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어쩌면

늘 서로에게 날이 서 있던 부모님이 내 성적 이야기에 서로 웃음을 보이던 날부터였을지도.


그 이후로 나는 어떤 선 안에서 살아왔다.

그 선 안에서 나는 안전했다.

하지만 동시에 늘 그 선 밖으로 나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사이에서 내 손은 오래 팽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중심을 잃었다.



어떤 날에는 누군가가 흔들리는 내 손 위에 손을 얹어 주기도 했다.

선배들도 선뜻 맡고 싶어 하지 않던 사건이 돌고 돌아 내 책상 위로 올라왔다.

네 달 동안 네 명의 검사가 바뀌었고 나는 다섯 번째였다.

기록은 수십 권이었다. 언론은 매일 떠들었고 정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처리가 늦다며 고소장에 내 이름까지 올라갔다.

막 배당받은 사건이었지만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그날 힘들어하는 나를 보던 옆부 부장님이 밥을 사 주겠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그녀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살다 보면 기준이 필요해.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끝까지 놓지 않을 거 하나.”

그녀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거 없으면 계속 흔들려. 여론에도, 조직 분위기에도"

그리고 다정하게 그러나 단호히 말했다.

“하나 정해. 네가 끝까지 지킬 거. 누가 네 인생 대신 살아주진 않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묘하게 오래 그 말이 남았다.

마치 물레 위에서 흔들리던 손을 누군가 잠깐 잡아 준 것처럼.


나는 아직도 많이 흔들린다.

그치만 금방 중심을 잡는 법을 배우고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시인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꽃은 흔들릴수록 더욱 깊게 뿌리내린다.


그래서 나는

툴툴 털고
다시 물레 앞에 앉는다.

나를 지키고 있다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