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랑한다.
"당신이 내일 죽는다면 과연 지금 그 일을 할 것인가?"
스티븐 잡스가 대학교 연설에서 한 말이다.
우리는 왜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까? 왜 골치 아픈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할까?
어느 날 야근을 하다가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을 그만두면 행복할 거야. 늦잠도 자고 여행도 가고 춤도 배워야지! 내가 지금 불행한 것도 몸이 아픈 것도 삶의 의욕이 없는 것도 모두 일 때문이야!'라고.
늘 그렇듯 다른 쪽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은 아니야. 지금 돈을 벌어놓지 않으면 무서워. 다른 직업을 못 구해서 백수가 되면 어떡해? 친구들과 부모님이 한심하게 생각하겠지?'
그래서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나는 해답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인생은 문제를 풀고 나서 맨 뒷장의 정답지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문제에 뛰어드는 것일 뿐. 정답을 찾으려고 뒷장을 넘기면 하얀색 백지이기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후배가 고민이 있다며 찾아왔다.
"선배님, 너무 힘들어요. 지금부터 영어 공부해서 유학 가면 행복해질 것 같아요. 유학 가는 선배들 부럽다..."
내가 그랬듯 그는 미래에서 행복을 찾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지금 당장 해봐!"
후배는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일화가 있다. 월가의 아주 잘 나가는 경영자인 Joe는 그리스의 섬으로 휴가를 떠난다. 그는 한 어부가 어망의 반만 물고기를 채워 나오는 것을 보고 한심해하며 말한다.
"왜 물고기를 전부 채워오지 않는 것이죠?"
"물고기를 다 채우면 뭐가 좋은데요?"
"당연히 돈을 더 많이 벌겠죠. 그러다 큰 배를 사는 겁니다. 그러면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죠."
그러자 어부가 다시 물어본다.
"그러면 뭐가 좋은데요?"
"나중에 늙어서 하고 싶은걸 하며 살 수 있겠죠. 이런 한적한 바다에 누워 여유를 즐기면서 사는 거죠."
그러자 어부가 웃으며 말한다.
"난 또 뭐라고. 그거야 지금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산다. 혹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꿈이 이뤄지면 그 이후의 삶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검사가 되는 것이 고등학교 때부터의 꿈이었다. 매일의 지옥 같은 나날들을 견디며 가족과 친구 나의 건강과 삶의 희생으로 꿈을 이뤘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공부를 함께 한 친구들과 밥을 먹던 중 전화를 받았다.
"주민등록번호 확인하겠습니다. 네, 맞으시네요. 합격 축하드립니다."
모든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그 커다란 기쁨은 잠시일 뿐 아무것도 약속해주지 않는다. 그 이후의 삶은 새로운 태엽을 감은 오르골처럼 다시 돌아갔다. '검사'와 '검사로서의 삶'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 이뤄진다고 해서 갑자기 행복한 Pooh가 되진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막연히 이러면 좋겠지... 란 생각으로 현실을 도피할 뿐이다. 타인의 시선, 사회적인 평가 등이 기준이 될 때도 있다. 나 역시 누구보다도 부족한 사람이라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했다. 남들이 똥차라고 해도 연애를 하고 마음이 쓰라려봐야 이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것에 다 뛰어들 수는 없다. 우리의 생존본능이 끊임없이 우리를 가로막고, 실제로도 잃을 것이 많으니까.
그래서 용기를 내어 차디 찬 낯선 물에 발을 조금만 담가본다. 친구들끼리는 담금질이라고 부른다(조폭들이 하는 그 담금질이 아니다).
이혼을 하고 싶었던 친구는 한 달 동안의 별거 후 다시 만났다. 그들은 서로를 놓치기 싫었던 만큼 꽉 껴안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후배는 용기를 내어 조금 길게 회사를 쉬었다. 쉬고 돌아오니 일하는 게 낫다고 했다.
드럼을 배워보고 싶다고 노래 불렀던 친구는 원데이 수업을 다녀왔다. 드럼은 체질에 안 맞는다고 한다.
부끄럽지만 내 버킷리스트는 연극무대에 서는 것이다. 시간이 날 때 조금씩 연기수업을 받는다. 하지만 지금의 일상이나 내 옆의 사람들도 내가 간절히 바라왔던 것들이다. 다만 조금 지쳤을 뿐. 그럴 때는 잠시 떠나 있어본다. 그러면 다시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