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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Dec 17. 2020

나를 싸게 팝니다 1

현대판 노예제도

우리 가까이에 아직도 사람을 사고파는 노예시장이 있다.

헐값에 중개인들에 의해 팔려간 사람들은 감금을 당한 채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간다.

섬으로 팔려가는 섬노예, 사창가로 팔려가는 성노예 등이 만연해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전라남도 신안군은 천사의 섬으로 불린다. 실제로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아름다움 때문이다.

태양이 비치면 염전 위로 빛이 다이아처럼 부서지고, 먼지 한 점 없는 바닷가의 아름다운 경관은 외국의 어느 휴양지 못지않다.

하지만 날씨에 따라 일주일씩 배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한 이 아름다운 섬마을은, 배가 끊기면 무법지대가 된다. 

아름다운 빛 아래는 반드시 어둠이 있다



이덕수 씨는 20대에 섬으로 흘러들어 가 평생을 노예처럼 살다가 검사인 내 앞에 앉기까지 20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의 지워져 버린 청춘 20년을 어디서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사실 그는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은 유령인물이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주민등록번호 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바다에서 죽는다 해도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덕수 씨가 피해자로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던 날 처음 그를 맞이했다.

그는 약간의 지적장애로 말을 더듬고, 고난에 찌든 수척한 얼굴로 다리를 절고 있었다.

다만, 순진한 눈망울만은 빛나며 나를 올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간절하게 첫마디를 내뱉었다.


"검사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가슴이 너무나 답답해지고 화가 났다. 전화가 있고 인터넷도 있는 이 시대에 왜 지금까지 짐승같이 당하고만 있었나! 이제 와서 살려달라니. 사실 나는 이렇게 된대에는 그의 탓도 크다고 생각했다.

나는 책망하듯 물었다.


"대체 왜 더 빨리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나요? 정말 평생 월급을 관리해주겠다는 그들의 말을 믿었어요?"

"... 검사님, 저도 빠져나오려고 무진 애를 썼었습니다. 하지만 배표를 구할 돈도 없고, 표를 구해도 주인 귀에 들어갑니다. 하루는 큰마음먹고 짐을 싸서 동네 경찰한테 도와달라고 갔더니, 바로 주인집으로 절 끌고 갔었죠. 그때 저는 저를 포기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저를요." 



출처 : SOS 섬에 갇힌 사람들 방송 캡처본




나는 그가 나에게 어떤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했을지 생각하니 왈칵 감정이 차올랐다.

수천번 수만 번을 내뱉었을, 그러나 외면당하고 외면당했을 그 말.

그 말이 오히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살려주세요."

살려달라고. 인간답게 살게 해 달라고.


그에 따르면 그 동네 섬사람들 모두가 한패였다. 

문득 1년 전 전근 온 여교사를 마을 사람 3명이 강간했던 섬마을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선배 검사가 사건을 담당했었는데 피의자들을 감싸고도는 동네 주민들 반응이 더 소름 돋았다고 했다.

그 사건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그의 긴긴 삶을 6시간에 걸쳐 조서에 꼼꼼히 남겼다. 조금이라도 판사가 피의자의 범행에 통감하고 높은 형을 내리길 바래서였다. 

하지만 그의 잃어버린 삶과 달랠 길 없는 억울함, 공허함, 원망 등을 다 담아내기엔 종이는 적고,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덕수 씨의 삶은 그야말로 비참했다. 

지능이 낮은 덕수 씨는 서울역에서 노숙하며 전전하던 중 낯선 남자 두 명이 따뜻한 어묵을 사준다는 말에 순진하게 그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대로 눈을 가리고 봉고차에 억지로 태워진 채 정신을 차려보니 배안에 있더란다. 

그들은 수평선처럼 끝이 안 보이게 펼쳐진 드넓은 염전 앞에서 그에게 통장을 보여주며, 

"매달 여기로 돈을 모아줄게. 5000만 원이 다 모아지면 그 돈을 주고 집도 구해줄게!"라 말했고, 그는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믿었다.


염전 옆의 버려진 컨테이너가 그의 집이었다. 그 혹한 섬의 겨울을 난방기구 하나 없이 담요 하나를 덮고 견뎠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염전 일을 하고, 염전일이 없는 계절이면 또 다른 농사나 잡일을 했다. 

잠은 2~3시간 밖에 자지 못했고, 하루 한 끼를 라면으로 버텼다.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게으르다고 맞았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맞았다. 맞아서 아픈 다리는 고칠 때를 놓쳐 영원히 쓰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덜 맞게 되어 좋았다고 웃으면서 말할 때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계좌를 조사해보니 그의 앞으로 줘야 할 월급 수천만 원은 그의 통장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현금으로 인출되어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현금으로 쓰인 것이라 누가 어디에 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그에게 베트남 신부를 구해준다는 명목으로 인출된 2,000만 원이 주인집 건물을 확장하는데 쓰인 것을 추적을 통해 확인했다.



너무 충격적이라 오히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더구나 마을 주민들 모두가 '아는 게 없다'며 진술을 못하겠다고 하거나, '주인집은 좋은 사람이며, 덕수 씨를 비롯한 모두에게 꼬박 월급을 주고 잘해준다.'고만했기 때문이다.

까딱하면 피의자를 풀어줘야 할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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