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제도
나를 싸게 팝니다 1에 이어서...
이렇다 할 증거가 없었다.
통장엔 매달 돈이 들어오고 있었고,
몸에 맞은 흔적은 있으나 진료받은 기록이 전혀 없어 입증하기도 어려웠다.
다만, 피의자가 자백한다면 모든 게 설명 가능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라면 피의자가 이제라도 반성하고 죄를 인정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다음날 바로 피의자 구림 씨를 소환했다. 그는 201호 검사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왔다.
몸에 꼭 맞는 정장을 차려입고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로 들어온 구 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인상 좋은 CEO였다.
나는 그간 피해자가 겪었던 일들과 피해사실들을 설명해주고 사실인지 엄히 물었다.
그는 억울하다며 대답했다.
"덕수 씨는 나를 만나 행복한 거예요. 내가 장애인 하나 먹여 살렸잖아요."
난감했다.
구 씨는 은혜도 모른다며 오히려 피해자를 원망했다.
피해자를 제외하고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상황.
구림 씨는 갈 곳 없는 장애인들을 거두어 일을 시키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의인이었다.
실제로 덕수 씨 명의 통장으로 매달 돈이 꼬박꼬박 들어가고 있기는 했다.
물론 덕수 씨는 그 돈을 자신이 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고.
하지만 피해자의 말만 듣고 덜컥 피의자에게 죄를 씌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최대한 객관적인 사람의 말을 듣고 싶었고, 마을 주민 명단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긴긴 설득 끝에 마을의 유일한 의사이자 외부인인 공보의 조 모 씨를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공중보건의란 섬마을 같은 의료취약지로 군 복무 대체로 배치된 의사를 말한다.)
비장한 얼굴로 검사실로 들어오는 조 씨의 뒤로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는 그곳에서 1여 년 정도 근무하다 곧 있으면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진술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검사님, 이덕수 한 명이 아니에요. 그 사람 외에도 마을에 노예처럼 끌려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수십 명입니다. 저도 그동안 많이 망설였습니다.
누군가에게 맞은 것 같은 상처도 당연히 봤죠. 그럴 때면 내가 이러려고 의사를 한 건가 하는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덕수 씨가 굽은 손으로 감을 건네면서 '선생님 저한테 담배 하나만 달라'라고 웃으면서 말을 걸었던 날에는 죄책감 때문에 며칠 밤잠도 설쳤고요...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소용없을 것이라는 회의감과 함께 마을 사람들이 저한테 위해를 가할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웠습니다."
나는 충격과 함께 고마움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덕수 씨도 그도 단지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두려우신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진술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사건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가명조서로 최대한 익명성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시면 바로 저에게 연락 주세요. 선생님 덕분에 영원히 묻힐뻔한 큰 사건이 수면 위로 나왔습니다."
"아니요, 이제라도 말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사님께 말할 수 있어서 안심이네요. 그 사람들 꼭 처벌해주십시오"
긴장이 풀린 그는 그제야 자기 나이에 맞는 순수한 얼굴로 마치 마블 캐릭터를 보듯이 나를 쳐다봤다.
실제로 비슷한 사건에서 최초 염전 노예를 제보한 공보의가 시체로 발견되어 사인 불명의 자살사건으로 처리된 일도 있었기에, 더욱 몸을 사렸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자신의 목숨과 안위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가 용기를 낸 덕분에 그의 진술을 토대로 우리는 악독한 '주인님'을 처벌할 수 있었다.
타인을 생각하는 선한 용기는 작은 빛이 어둠을 밝히듯 세상을 바꾼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가끔씩 이런 기회들이 찾아온다.
그 순간만큼은 정의로운 증인들이 대한민국 검사고 부처이며 예수이고 구세주다.
덕수 씨의 노예생활이 오랫동안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현대판 노예들의 '주인님'께서는 해당 지역사회의 유지였다. 큰손인 그가 없으면 마을 사람들 역시 생계를 이어나가기 힘들었다. 심지어 그는 검찰청에서 만든 봉사단체 위원장이기도 했다.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로 돌아가는 폐쇄적인 마을에 약자들의 인권은 없었다.
서로의 이득을 위해 잘 짜인 긴밀한 판에서 법은 약자를 보호할 아무런 힘도 권한도 없었다.
익명성이 보장된 곳에서 오히려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것일까?
어느 시대든지 이런 거지 같은 불공평한 일들은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사건 이후에도 한동안 심한 무력함을 느꼈다.
하지만 검찰의 시계는 돌아가고, 무력감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덕수 씨 한 명이 아니었다.
이후 사건의 심각성을 느낀 우리는 1004개의 섬을 모두 전수 조사하여 주민등록이 되지 않고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명단을 만들고 받지 못했던 임금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들 중 과반수가 다시 그 섬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오히려 우리에게 '왜 귀찮게 하냐'며 화를 내는 피해자도 있었다.
왜 고통으로 돌아가나?
도대체 왜? '왜'라는 질문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그들은 다시 고통 속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고통 또한 그들의 삶이자 전부였다.
나는 고통 속에서 그것을 견디는 것도 박수받을 일이지만, 익숙한 것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오랜 시간 집단 따돌림을 당한 학생이나,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가정폭력으로 자살한 피해자들에게 꼭 필요했던 것이 바로 이 용기였을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데미안 -
'안정'을 좋아하는 우리의 본능은 항상 이런 생각으로 우리의 발목을 묶어둔다.
'이 일이 나의 전부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여기를 나가면 나는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할 거야, 무서워...'
나도 그랬다. 불행한 연애를 할 때도 그와 헤어지는 게 더 두려웠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을 때에도 교실 밖을 나가는 것이 더 무서웠다. 회사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덕수 씨에게는 다행히 이런 용기가 있었다. '불안해질 용기'말이다.
덕수 씨가 자유를 선택한 데에는 엄청난 불안이 따랐을 것이다.
도망치다 붙잡혀서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설령 탈출에 성공한다 해도 다리를 저는 지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덕수 씨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했다.
그 덕에 익명의 마을 사람의 도움으로 뭍으로 도움의 편지 한 통을 보낼 수 있었다.
자네가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라네.
조금 불편하고 부자유스러워도 지금의 생활양식에 익숙해져서 이대로 변하지 않고 사는 것이 더 편하니까.
'이대로의 나'로 살아간다면 눈앞에 닥 친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추측할 수 있어.
하지만 떨어지면 어떤가? 그걸 계기로 더 성장할 수 있고 아니면 다른 길을 찾으면 되지.
가장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이대로 멈춰서 있는 것'이라네.
- 미움받을 용기 중에서-
사실 우리가 고민하는 것, 눈 감고 저질러보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종류의 행복과 결이 다른 고통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뿐.
하지만 그 세계를 깨고 나온 사람 앞에는 분명 더 나은 길이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사람은 앞으로도 여러 갈래길이 나온다 해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을 믿고, 씩씩하게 내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줄 사람이나 제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법이, 국가가 제2 제3의 덕수 씨가 생기지 않도록 완벽하게 막을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을 해결하며 나는 아픈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범죄를 처단할 수는 없다. 특히 점점 무섭게 늘어나는 피싱 범죄만 봐도 그렇다. 국민 모두가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을 위해 공모전에도 참여하고 신고하는 등 갖은 노력을 하지만,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기술의 발달이 우리에게 편의를 가져다주었지만 오히려 잡기 힘든 신종범죄들도 많아진 것이 팩트다.
결국 우리 스스로가 용기를 가져야 할 때이다. 그것은 덕수 씨가 그랬듯 자신을 위한 용기가 될 수도, 혹은 증인이 되어준 조 씨처럼 타인을 위한 용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검사인 내가 낼 수 있는 용기는 쏟아지는 사건들의 무게에 힘들고 지치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사건이 전부인 것처럼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당시 증거 없는 사건의 가운데 멈춰서 있지 않고, 용기 내어 조 씨에게 증언해달라고 설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지금 세상을 바꿀 어떤 용기 있는 한걸음을 내딛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