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짓말의 발명'에서는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마크는 작가이다. 하지만 사실적인 스토리가 재미없단 이유로 해고를 당하게 되고,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간다.
은행 직원이 마크에게 묻는다.
'잔고가 얼마예요?'
순간 마크는 우발적으로 '800달러가 있다'라고 말한다. 직원은 대답한다.
'300달러로 나오는데 전산 착오가 있나 봐요.'
그녀는 마크를 믿고 돈을 준다. 처음으로 거짓말이 발명된 순간이다.
마크는 사후세계를 봤다는 말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신처럼 추앙받는다. 현실의 종교도 사실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위대한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밌게도 마크는 종국에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거짓말 속에 숨겨진 진심이 빛을 발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영화 속 세상과 달리 우리는 매분 매초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과 살아간다. 나 자신도 그렇다. 그리고 선의든 악의든 거짓말은 필요하다.
나는 매일매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지겹도록 만난다. 그들에게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기를 쓰고 진실을 숨긴다. 그리고 나는 거짓말을 가려내야 한다. 거짓말을 찾아내지 못하면 피해자도 나도 죽는다.
그래서 검사들은 '의심병'과 '손목터널 증후군'이라는 직업병에 시달린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말이다. 우리가 하는 언어 속에 '사실'인 것은 1프로도 안된다고 한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한 것조차 우리의 감정과 관념에 의해 꼬이고 왜곡된다. 그래서 검사는 객관적인 증거와 조사를 통한 상대의 반응을 논리적으로 유추하여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로스쿨 시험에 논리학이 포함된 이유다.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 같은 경우에는 거짓말을 밝혀내기가 어렵다. 혹은 자신의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리플리 증후군이 있는 사람도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조사를 하다 보면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명확한 심증이 형성된다. 일상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몇 가지 방식을 주섬주섬 써보겠다.
1. 예 또는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가
거짓말을 하려면 뇌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예, 아니오로 대답하도록 질문하면 나도 모르게 진실이 튀어나오거나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하게 된다.
지적장애를 가진 젊은 남성인 한 씨가 복면을 쓴 남성에게 강간당한 후 도끼로 다리를 찍힌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로 같은 마을에 사는 나이 든 남성인 권기남 씨가 지목됐다. 엽기적인 이 사건에서 마을 사람 누구도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용의자 권기남 역시 완강히 혐의를 부인했다.
권기남 씨를 조사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권기남 씨 남성이랑 성관계해봤죠?"
"네? 뭐라고 하셨어요?"
"....... 들었잖아요."
"아니, 남자랑 성관계라뇨!!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는 겁니까!"
권기남 씨는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
내 흑역사를 예로 들자면, 어느 날 친구로부터 남자 친구를 클럽에서 봤다는 사실을 들었다.
나는 '너 어제 어디 갔어?'라고 묻지 않았다. 그렇게 물어보면 '음... 어제 친구 만났지~'라고 대답할 것이 뻔하다.
대신 나는 물었다.
"너 어제 클럽 갔어?"
남자 친구는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말했다.
“응? 뭐라고 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있다가 그는 갑자기 화를 냈다.
“야, 너는 나를 클럽이나 가는 그런 사람으로 보냐?”
그는 억울하다며 나를 몰아세웠다. 그러나 결국 그 x끼가 클럽 간 것이 밝혀졌고 무사히(?) 헤어질 수 있었다.
진실을 물어보면 바로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의 뇌는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시간을 벌기 위해 질문을 못 들은 척 다시 물어본다.
그리고 역으로 화를 내기도 한다. 궁지에 몰리면 화를 내는 것이 상황을 모면하는 최고의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