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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Dec 31. 2020

너 거짓말하는 거 다 알아 2화

검사의 좌충우돌 거짓말 밝혀내기 


<너 거짓말하는 거 다 알아 1화에 이어서>


2. 역순으로 기억하는가?


나는 다음날 지적장애를 가진 젊은 남성 한 씨를 도끼로 강간 상해한 용의자 권기남 씨를 2차로 조사했다.('도끼사건'이라고 칭함, 귀찮은 건 아니다.) 장장 12시간에 걸친 긴 조사였다.


보통 구속된 피의자들은 첫날에는 고분고분하다. 하지만 다들 1차 조사 후 빵으로 들어갔다오면 무슨 조언을 받고 오는지 갑자기 '존버'가 된다.(존x 버텨) 조사 둘째 날, 예상대로 그는 조사를 하는 나에게 큰소리로 계속 역정을 냈다.


“아니, 어느 미친 노인네가 여자도 아니고 남자를 그러겠어!”


나는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날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순서대로 말해봐요."


그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그날의 행적을 상세히 말했다.     


“그 날 5시경 와이프가 심부름을 시켜서 가게에 가서 막걸리를 사고, 오는 길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가 한잔하자고 해서 집에서 마시고, 갑자기 한 씨(피해 남성)에게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 들르려고 했는데, 논일이 생각나서 논으로 가서 일을 봤습니다. 그 후 철물점에 갔다가 9시경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권기남 씨의 친구와 철물점 주인은 그와 막역한 사이었다.


나는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역순으로 한번 말해보세요.”    



자신 있게 말하던 그는 갑자기 자신감을 잃고 우물쭈물했다.


“네? 아.. 집에 가기 전에 다방에 갔다가... 아, 아니다. 친구랑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한 씨한테 문자를 받았습니다. 가게에도 들렀고요.”


거꾸로 말하게 하니 엉망진창이었다. 그전에 없었던 '다방'까지 더해졌다. 

그는 목이 타는지 계속해서 물을 마셨다.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경험한 일은 역순이어도 수월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지어낸 일은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권기남 씨가 피해 남성 집에 들르지 않았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지어낸 알리바이들은 오히려 그의 목을 죄었다.

이상함을 느낀 나는 다방 직원을 조사했고, 그가 다방에 있다가 피해 남성 권 씨의 집에 간다고 자리에서 일어난 사실을 확인했다. 그 덕에 우리는 유리한 패를 쥘 수 있었다.

  


3. 말뿐 아니라 몸이 주는 신호를 동시에 관찰하기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 증거가 없어 골머리를 앓는다. 피해자와 피의자의 진술밖에 없을 때는 정말 내가 신이 되고 싶다고 빌기도 한다. 

'도끼사건' 그랬다. 피해자는 강간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초동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증거가 전혀 없었다. 나는 피의자 권기남 씨에게 물었다.

"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어요?"
 “음... 비빔밥이요.”


기억을 떠올리는 뇌가 작동되고 오 씨의 눈은 왼쪽 위를 향했다.

사건에 대한 질문을 했고, 권기남 씨는 그날 피해자와 함께 있지도 않았다고 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사건 당일 피해자와 같이 안 있었다면 무엇을 했는지요?"
"음... 그날 아마 그 시간에는 논에서 일을 봤던 것 같아요..."

창의력을 담당하는 뇌가 작동되고 권기남 씨의 눈은 오른쪽 위를 향한다.


조사 내내 권기남 씨의 눈은 갈 곳을 잃고 헤맸다. 우리는 강한 의심을 느끼고 그날 바로 압수한 핸드폰 내역, 그리고 다방 직원의 진술 등을 토대로 자백을 받아냈다.



나는 피의자의 눈을 사랑하는 상대를 보듯이 본다. 

눈은 말보다 진실하다


눈은 정말 중요하다. 거짓말을 할 때와 기억나는 대로 말할 때 눈의 방향이 다른 것이 자주 관찰된다. 또한 오히려 긴 시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내 눈을 보는 것은 자신의 떨림을 숨기는 방편이기도 하다.


말보다 몸이 더 정직할 때가 많다. 거짓을 말하다 보면 호흡이 거칠어지고, 점막이 말라 갈증으로 계속해서 물을 찾는다. 거짓말을 할 땐 특히 입을 많이 가리고, 손에 땀이 나서 휴지가 조각조각 묻은 손으로 이마를 훔치기도 한다.

그래서 조사자는 상대의 말뿐 아니라 행동도 유심히 관찰한다. 오죽하면 ‘동공 지진’이란 단어가 유행하게 되었을까.          



물론 이런 방식들은 오차도 있고, 글에 나온 방식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재미로 읽어주셨길 바란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사건에 매몰되어 열심히 파다 보면, 내가 맞다는 생각 때문에 정작 사실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나도 평소에 직업병이 발동되어 남자 친구나 친구들을 추궁하다가 진실을 확인하고 현타를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경찰과 검찰, 이중으로 수사기관이 존재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한 사건을 올인하게 되면 당연히 오류는 늘어난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습관대로 사물을 보고 판단한다. 부디 사랑하는 사람과 내 주변의 타인을 믿고, 중요하지 않은 거짓말은 수용해주는 하루가 되시길 바란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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