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사이다 Jan 05. 2021

김 판사가 왜 그럴까? 1화

판사님 밥 좀 먹고 갑시다

사람은 언제 불행할까? 아니, 검사는 언제 불행할까? 신념과 의지를 갖고 노력한 사건이 잘 안 풀렸을 때? 몇 년 동안 검찰에서 굴렀는데 부장검사 승진에서 누락될 때?

아니, ㅈ(삐-) 배고픈데 ㅆ(삐 -) 밥을 못 먹을 때이다!




째깍째깍. 11시 50분.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하나 둘 점심을 먹으러 도란도란 떠나는 소리가 복도 끝 내 수사실까지 들린다.

하지만 나는 가지 못한다. 눈앞에 이 샠... 피의자가 10분이면 끝날 사건을 아직도 억울하다고 우기며 2시간을 끌고 있다. 하... 검찰은 왜 진실의 방이 없을까? 오후 회의까지 부장님이 끝내란 보고서도 써야 되는데.

배고프다. 왜 이러고 살아야 하냔 말이다.

공판검사로 가면 좀 나으려나...?!(응 아니야)

이번 인사 때 공판으로 옮겨달라고 해야겠다.


수사검사의 일상



11시 50분. 와 점심시간이다. 법정에 걸린 시계를 흘끗 쳐다본다.

꼬르륵. 크게 소리가 들려 괜히 얼굴을 붉히며 방청석을 본다. 하지만 판사는 오늘도 정시에 재판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피고인은 죄가 있냐는 질문에 대해 "제가 어릴 때 엄마가 저를 다른 집에 보내며..."라며 인생 스토리를 줄줄 털어놓는다. 후비적. 귀에서 피가 나는 것 같다.

점심 식비로 한 달치 다 냈는데... 또 못 먹게 생겼다. 돈 아깝다.

하... 오늘 도다. 내일은 나도 탕수육 먹을 수 있겠지?!(응 못 먹어)


공판검사의 일상




인간에게는 삼대 욕구가 있다. 식욕, 수면욕, 그리고 성욕. 생존을 담당하기 때문에 적당히 채워지지 않으면 정신병이 걸리거나 심하게 망가진다.


이런 욕구불만에 매일 시달리는 검사와 판사의 일상은 어떨까?


식욕


검사가 된 이후 마음 편히 점심을 먹어본 적이 언제인가 싶다. 먹는 것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일한 낙이었는데. 아, 검사는 두 분류로 나뉜다. 수사 즉, 경찰에서 송치된 기록을 보고 사건 관계인(피의자, 피해자, 참고인)을 불러 조사하고, 피의자에게 죄가 있으면 법정에 넘기는 기소(수사) 검사가 있다. 또 법정에 출석해 이 기소된 사건에 대하여 판사에게 '유죄'의 선고를 하도록 공판절차를 수행하는 공판검사가 있다. 요새 일부 국회의원이 주장하는 공소청이다.


앞의 일화에서 처럼 수사검사나 공판검사나 여유가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래도 수사 검사일 때는 그나마 내가 조사 일정을 잡고,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공판 검사일 때는 나는 장기판 위의 말처럼 수동적으로 재판 일정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형사재판은 원래 오후 6시까지 지만 매일 늦게 끝내는 판사님에게 재수 없게(?) 걸리기도 한다.

아이를 혼자 키우던 여검사가 그 생활을 1년 하니 나에게 '매일 애를 데리러 가지 못하고 혼자 유치원에 둬. 나를 어찌나 원망하는지...'라며 울먹이며 말하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되면 변호인도, 직원도, 생업을 포기하고 온 사건 관계인들도 재판을 위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한다.

솔직히 판사님 나빠요.


"판사들은 점심시간이 2시까지니 늦어져도 밥 먹잖아요... 우리 점심시간은 1시까지라 맨날 밥 못 먹어요!"

윤판사님께 큰소리로 외친 줄 알았는데, 아 꿈이구나.


부끄럽지만 밥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다 보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밥이라도 잘 챙겨 먹었으면 한다. 검사도 판사도 당신들도 다 인간이고 동물이다. 그렇기에 기본적인 생존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그냥 그 즉시 불행해진다. 그리고 이 불행은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재밌게도 이런 '동물적인 욕구'가 은근히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수면욕


검사들은 주 4회에서 주 5회 재판을 들어간다. 재판을 들어간다는 의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오른쪽 검사석에 목석처럼 앉아서 하루에 수십 건의 사건을 처리한다는 의미다. 실무관님들이 재판이 있는 날 아침에 수레에 사람 키보다 높이 쌓인 기록들을 '탈탈탈' 실어 법정에 가져다준다. 어느 날 지인이 재판을 방청(국민이라면 누구나 재판을 방청할 권리가 있다.) 한 적이 있었는데 솔직한 후기를 말해줬다.


"나 솔직히 실망했다. 변호사님은 되게 깔끔한 정장 입고 주변정리도 잘되어 있었는데, 검사님은 산더미 같은 기록에 파묻혀서 얼굴도 잘 안 보이고, 가끔 발언할 때만 일어서서 보이는 얼굴은 쾡한 게 밥은 먹고 다니시나 싶더라... 그래도 눈빛은 매서워서 굶주린 승냥이 같았어. 으으~(몸을 떤다)"


응 인정. 하지만 굳이 변소 하자면 이렇다. 판사님들은 자신의 재판부, 즉 1개의 재판을 담당하기 때문에 주 2회 재판을 한다. 변호사님들은 다 다르겠지만 통상 1건의 사건만 하고 일어난다. 하지만 검사들은 통상 2~3개의 재판부를 맡게 되니 거의 매일 재판을 들어가고 종일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재판을 다녀오면 다음날 재판 준비를 해야 하니 당연히 야근은 필수다. 그러면 머릿속엔 하나의 생각만 자리 잡는다.


'자고 싶다'


지금 자고 있는데도 더 격하게 자고 싶다. 그러다 보니 재판할 때 더 예민해지기도 한다. 죄가 명백한데 큰소리로 우기면서 피해자를 욕하는 피고인을 보면 진짜 법복 벗고 한 대 때리고 싶다. 괜스레 증거 채택을 안 받아주는 판사님께 '형사소송법 위배가 아니냐'며 날 선 소리를 하기도 한다. 판사님들도 유난히 힘든 날이 있다. 사건이 안 풀려서 밤샜거나 피고인이 말이 많아서 점심시간을 넘기는 그런 날. 그럴 때는 평소엔 들어주었던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요청에 불응하는 모습을 보이시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당일 판사가 어떤 컨디션인지에 따라 재판의 진행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것도 피고인의 '운'이라면 운이겠지만, 객관성과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 관리가 필수인 직업이란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성욕(명예욕)


다음편에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너 거짓말하는 거 다 알아 2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