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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Jan 06. 2021

김 판사가 왜 그럴까? 2화

판사님 집에 무슨 우환이라도?

성욕(명예욕)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스님도 '내가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것이 바로 이 명예욕이다'라고 했다. 명예욕은 사실 달리 말하면 성욕이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침팬지들을 보면 가장 강한 수컷이 다른 암컷들을 모두 차지한다. 나머지 수컷들은 짝짓기에 실패하고 쓸쓸히 홀로 노후를 맞는다. 인간도 사실은 동물인 고로 생존과 번식을 위해 더 높이 올라가야 더 많이 자신의 씨를 퍼뜨릴 수 있었다. 즉 이러한 번식욕은 인간에게서 명예욕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돈을 더 많이 벌고, 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애쓰는 것도 결국은 성적 욕구를 채우려는 행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을 하다 보면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소위 말하는 '명예'는 얻었지만 명예욕을 충족하지 못한(그러니까 스스로를 명예롭게 여기지 않는, 요즘 말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을 만난다.


춘천에서 근무할 때이다. 매년 변호사들은 연말 연예대상처럼 검사나 판사에 대해 익명의 설문조사를 통해 '베스트'와 '워스트'를 뽑는다. 평소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분들도 이때만큼은 겸손해진다. 베스트에 대해서는 시상을 하고 워스트는 입방아에 오른다. 그리고 김 모 판사님은 워스트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단 한 명의 판사였다.


나는 당시 아직 초임 검사였고,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김 모 판사님의 재판을 맡았다. 하지만 그땐 알지 못했다. 내 인생 최악의 재판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니 김 모 판사님의 별명은 '저은하'였다.


"네놈이 가암히!!!"


"우리 전하께선 절대 틀린 말씀을 하지 않으시니! 감히 전하의 말에 토를 달아 노엽게 하면 아니 되옵고, 말씀하실 때는 항상 호통을 치셔서 아랫것들이 듣기 좋게 하시니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성군이 아니시더냐."





하루하루 전쟁을 나가는 기분으로 법복을 입고 재판정에 들어갔다. 그는 매일 소리를 지르며 사람을 가리지 않고 화를 냈다. 여검사인 나에겐 복사를 해오라는 등 자신의  비서처럼 대하기도 했다. 참다못한 나는 "형사소송을 주재하는 검찰에 예의를 갖춰주십시오."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감히 나를 무시하는 겁니까! 검사장에게 정식으로 얘기해 조치를 취하겠습니다!"는 협박성 멘트였다. (검사장님은 나에게 똥이 무서워서 피하느냐고 했고.)


검사에게도 그러니 변호인, 피의자에게는 오죽하겠는가!

당시 춘천에서 가장 나이가 지긋한 변호사님이 있었다. 어느 날 김 모 판사가 그에게 묻는 것이었다.

"변호사님, 다리가 부려졌나요?"

나는 '갑자기 웬일로 소름 돋게 다정한 척이지'라고 생각했다. 변호사님도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요, 재판장님? 괜찮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호통을 치며 말했다.

"그런데 왜! 본관에게 예의 없이 앉아서 변론을 하는 것입니까!"

울그락 붉으락 해진 아버지뻘의 변호사님이 연신 죄송하다며 일어난 기억이 나 아직도 쓰리다. 앉거나 서는 것은 법관에 대한 예의일 뿐 누구도 강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화를 내는 판사님들도 있다.


하루는 피고인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최종 선고를 들었다는 이유로 선고 내용을 바꿔 법정 구속을 하기도 해 모두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읭?)  귀찮다는 표정으로 가난한 피고인에게 국선변호인을 선임해 주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재판권의 남용이었다. 검사는 형사소송 집행의 지휘, 감독 역할도 한다. 당시 나는 초임검사로서의 열정과 패기(곤조)가 있었고, 소송 녹음 파일(형사소송법에 따라 재판은 반드시 녹음을 한다)을 확보하여 해당 사항에 대하여 항의성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 판사가 왜 그럴까?


나는 이 일을 겪으며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김 판사가 왜 갑질을 할까? 비단 판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검사, 대통령 혹은 국회의원, 재벌 경영인 나아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소위 말하는 '권력집단'을 많이 만난다. 그리고 그가 가진 '파워'에 '자기반성'이 없다면 그것은 '선'이 아니라 '악'으로 변한다. 타노스에게 인피니티 스톤을 쥐어주어 슈퍼 빌런이 되는 것이다. 


사실 갑질의 이면에는 사실 뿌리 깊은 열등감이 있다. 나 스스로 나에 대한 자신과 확신이 없이 돈과 권력으로 자신을 포장해버리니, 조금만 누가 거슬리면 '나를 감히 무시하는구나!'란 생각에 그 사람을 짓밟아버린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서 보장하는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독립된 사법기관이다. 이에 양심에 따라 죄를 심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높이려 애쓰지 않아도 우리는 그들에게 예우를 다한다. 그럼에도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고 무시할까 봐 항상 벌벌 떨며 가시가 돋아있는 모습을 보자니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분을 운명적으로 또 다른 지역에서 만났는데 여전히 '네임드'로서 주변의 원성을 들으며 잘 지내시더라. 여전히 김 판사님은 나에게 좋은 스승이다. 나 자신도 저렇게 사건 관계인들에게 검사라고 나대지 말자고 반성하게 해 준 고마운 사람.




몇 년 간 재판을 하면서도 해결하지 물음이었다. 검사와 판사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갑을 관계일까? 김 판 사가 갑질을 한 건 당연한 걸까?


사실 판사도 검사도 피고인도 사람이기에 그래서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곤 한다. 물론 따뜻한 가슴으로 청소년들을 품은 '호통판사님'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든다. 법정에서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삐딱한 자세로 소위 '싸가지' 없이 행동하는 피고인이 있다.

'피고인은 언행이 무례한 것을 보니 반성을 덜 했군. 처벌을 강하게 해야겠어'

모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일까? 사실은 그저 자신에게 예의를 다하지 않아 화가 난 것은 아닐까? 법의 집행에 있어서 나의 '인간성'이 과연 도움이 될까?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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