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판사와 검사의 관계는 미묘하다.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유죄'를 구하고, 판사가 결정한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로 판사에게 피고인의 '무죄'를 구하는 입장이다. 두드리는 것은 우리요, 응하는 것은 그대들이니 얼핏 갑을관계처럼 보인다. 그래서 '갑질'을 하는 판사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너네가 유죄를 받고 싶으면 나를 믿고 따르라!"
하지만 검사에게는 사건을 시작하는 '기소권', 법관의 판단에 불응하는 '항소권'이 있다. 가장 중요하게 우리의 목표는 개인의 이득이 아닌 공익이다. 판사도 검사도 진실을 밝혀내고 공익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당신은 나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무죄라고 판단되면 기소한 검사라도 잘못된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쨌든 이런 미묘한 관계의 두 법조인은 '인간'이므로, 자칫 인간관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잘못된 관행에 따라 전관예우가 생기고, '을질'도 생겨난다. 그날따라 판사님이 눈치를 본다 싶으면 자신이 모시던 부장님이 변호인으로 온 날이다(나 같아도 끔찍하다). 어떤 날은 피고인의 발언이 판사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변호사가 의뢰인인 피고인에게 오히려 화를 내기도 했는데, 의뢰인은 '왜 내 편을 안 들어주냐'며 황당해했다. 내가 보기엔 적(?)이지만 그런 변호인이 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너무 한쪽이 눈치를 보거나 갑질을 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다. 판사든 검사든 법과 정의에 따라 더 나은 국민의 삶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국가가 사용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은 맞지만 너무 낮출 필요도 없고, 항상 겸손 또 겸손해야 한다.
어떤 국가적 지위를 갖게 되면 '나'를 지워야 한다. 나 자신의 명예와 이득을 위해 움직이면 반드시 안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 하지만 우리는 부처가 아니므로 매일 노력하지 않으면 참 어려운 일이다.
'대한민국' 검사 선언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따뜻함'이란 뭘까? 사실 주관적이다. 내 편의에 맞게 이 사람은 봐주는 것이 따뜻한 것이고, 이 사람은 처벌하는 것이 따뜻한 걸까? 내 상황에 따라 따뜻함의 온도도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검사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사실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앞서 봤듯이 우린 이토록 수면욕, 성욕, 식욕에 의해 판단이 흐려지고 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나는 공정하다'라고 착각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검사는 따뜻함이나 감정에 의해 움직이기보단 오히려 법과 원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처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판사를 AI로 대체하는 입법안이 발의되고 실제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며칠 전 조두순의 출소로 떠들썩한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2008년 당시 나는 법대생이었다. 그리고 8세 여자아이는 안식처가 돼야 할 교회의 작은 화장실에서 지옥을 경험한다. 아이는 음부와 항문이 심하게 훼손되어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했다. 내 가법률 공부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그 일로 심한 충격에 휩싸인 나는 매일 그 사건을 마음에 되새기며 '반드시 검사가 돼서 저런 놈들을 잡아 처넣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는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12년 감형을 받고 출소했다. 어떻게 그런 끔찍한 사건을 벌인 이에게 그런 판결을 내렸을까?
그래서 이런 생각도 가끔 든다.
같은 사건이라도 김 판사님은 5년, 이 판사님은 2년을 선고했잖아.
피고인이 예뻐서 봐줬다는 판사도 있었어. AI가 훨씬 나은 거 아니야?'
법이라는 원칙에 따라 일을 하는 곳이지만 가장 원칙 없는 별별 인간들이 다 있는 곳이다. 말도 안 되는 주관적인 판단을 해놓고 그게 정의라고 우기는 사람들. 그래서 가끔은 인공지능이 우리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대의를 위해서 옳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싶다. 조두순 출소가 말이 되냐며 술잔을 기울이며 화를 내는 판사님이 있다. 지금 회사에서 몇 주째 침낭에서 잠을 자며 범인을 잡느라 꼬질꼬질해진 검사도 있다. 정말로 이 세상에서는 정의를 위해서 행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다. 그래서 아직은 따뜻한 비둘기의 가슴을 품고 차가운 뱀의 머리로 노력해 나가는 사람들의 세상을 믿고 싶다.
음, 아니 먼저 나 자신부터 믿고 싶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다.(브금 god 길) 그래서 사건을 해결할 때나 샤워를 할 때조차 나를 거울에 비춰본다.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는 것은 아닌지, 자존심을 세우려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성한다. 그러면 비로소 내가 로봇보다는 낫다고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치만 밥은 제때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꼬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