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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Dec 07. 2021

저기 앉아있는 피고인이 부러울 때

인간의 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식욕과 성욕이 그게 전부란 생각이 든다.


고자는 맹자의 성선설에 반박하며 '음식남녀'가 본성의 전부라고 했다. 
식(食)을 음식(飮食)이라 하고 색(色)을 남녀(男女)라고 풀어서 '음식남녀'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식은 먹고사는 문제이고, 색은 남녀 간의 관계로써,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성인 (食)과 (色)을 위하여 생겨나고 움직인다고 했다.

그러니 인간은 살아있는 한 식과 색을 거부할 수 없다. 사기꾼이나 나쁜 남자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처럼.


오늘 법정에서도 나는 또 뒤통수를 맞았다.

사기죄 피해자로 증인석에서 똑 부러지게 진술하던 여성이 갑자기 검사 측인 나를 보며 운다.

"검사님, 저는 아직 저 사람 사랑해요. 지금이라도 다시 만나준다면 용서할래요."


피고인 김민기씨는 희재씨에게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었다.

나는 법정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희대의 사기꾼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카톡 내역을 제시했다.


민기 : 자기야, 우리 결혼하려면 나 이 사업 성공해야 돼. 1억만 더 어떻게 안될까.

희재 : 응, 아빠한테 말해서 집 담보로 대출받아볼게. 밥 좀 챙겨 먹어.

민기 : 정말 사랑해. 빨리 결혼해서 행복하게 해 줄게.


민기씨는 희재씨보다도 더 그녀의 하나뿐인 아버지를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의심치 않았던 민기씨가 긴 출장을 간 날, 희재씨는 의문의 여성으로부터 한통의 문자를 받는다.

"저, 민기씨 여자친구인데, 지금 우리 둘 다 속고 있는것 같아요."


민기씨는 결혼을 약속한 두 사람에게 모두 수억의 빚을 지웠다.

피고인 김민기씨는 법정에 나와 희재씨에게,

"아직도 너를 사랑해. 합의해주면 빨리 나갈 수 있어. 결혼하자."라고 말했다. 

그래, 이 사건은 '사기'죄이고 돈에 관한 사건이다. 하지만 실상 '치정'사건이기도 했다.

결국 희재씨는 '다시 만나겠다'고 대답한 피고인을 용서하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돌아갔다.


나는 평소대로인 허탈감과 함께 평소와 다른 생소한 감정도 함께 느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검사가 되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빨리 정의로운 나의 세상으로 끌어들이거나 영원히 배제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을 하면 할수록, 그들을 비난하고 통제하기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밥 먹고 살려고 절도를 저지르고, 사랑에 배신당해서 사람을 죽인다.

그뿐이다.

그래서 살만하면 돈을 갚고 끝나거나, 사랑을 확인하면 죽을죄를 졌어도 용서해주기도 한다.

검사로서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지만, 가끔은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앞뒤 안재고 사랑하고,

돈에 집착하는 그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물론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좋았겠지만.


어쨌든 평범한 우리도, 그들도 먹고, 살고, 사랑하려고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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