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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May 26. 2024

나의 당나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꿈에게

술을 마시고 가까운 거리란 생각에 운전대를 잡아버렸다. 운전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눈앞이 흐려진다. 쿵!!! 

누군가를 친 것 같다. 어떡하지? 

순간 나는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도망가 버렸다.


당신이 검사라면,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어떤 비난을 하실 건가요?

그에게 몇 년 형을 내릴 건가요?

어떤 형벌을 내려야 죽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늘 '감히 내가 해도 될까?'하는 판단의 기로에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검사가 음주 뺑소니 사망 사고에 영장을 기각하였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해당 검사를 비판하는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매우 많습니다. 판사님들도 정치적인 사건 당사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 실명까지 거론되며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마녀사냥(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고 나면 내부적으로도 신중을 기하라는 여러 가지 지침이 내려오곤 합니다.
누군가의 판단에 대해서 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가 그 기록을 본 당사자도 아니기에.

다만, 한 가지 공감이 갔던 것은 검사들이 매일매일 일상적으로 하는 이러한 결정들이, 갑자기 기사화되고, 언론의 뭇매를 맞을 만큼 엄청난 책임감이 부여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일하는 데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래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5년 차였던가요.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던 때의 일입니다.


사장이 여비서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해 왔고 나이가 어렸던 그녀는 저항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비서에게 동영상을 몰래 찍으라는 이야기를 했고 어느 날 용기를 내서 핸드폰을 들고 들어가 자신이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순간에도 이를 악물고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했고, 확실한 물증이 있는 비교적 간단한(물론 사안은 중하지만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우리 방으로 송치되었습니다.

당시 두 명의 계장님 중 베테랑이었던 계장님이 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 뒤 당직을 서는데 변사(사망) 사건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익숙한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김 ㅇㅇ씨...? 아! 몇 주 전 조사 했던 그 성폭력 피의자잖아...!'

가슴이 쿵 내려앉고 식은땀이 났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직감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나를 비롯해 부장님까지 경찰과 함께 모든 사실관계를 집중적으로 확인했습니다.

남자의 유서에는 피해자와 경찰 수사기관에 대한 원망도 들어있었습니다. 본인은 억울함에도 범죄자로 조사받는 것이 수치스러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검찰 내부적으로 조사 과정에서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당시 영상으로 녹화를 하며 조사를 하였기 때문에, 조사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결론이 났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러한 요소가 있었다면, 저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당시 내부 조사를 담당했던 검사님도 상황이 끝나고 따로 저에게 연락을 주며 위로를 해주셔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본인의 신고로 인해 사람이 죽었다고 자책하던 그 어린 피해자가 받았을 정신적인 상처는 어땠을까요? 죽은 피의자 유족들의 심정은요? 그리고 최선을 다해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고 정의에 맞게 일을 한다고 매일 같이 야근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책과 후회, 비난뿐이었던 계장님과 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렇게 검사가 하는 일은 정말 많은 부분에 있어서 책임이 막중하고 조금만 잘못된 판단을 해도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제가 겪었던 일처럼 일 순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로도 문제가 생기고는 합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조금씩 지쳐갔던 것 같습니다. 처음 검사의 꿈을 꾸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 검사로 임관해서 검사선서를 했을 때, 강하게 느꼈던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마음은 점점 퇴색되어 가고 그저 하루하루 눈앞의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데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오직 미제가 몇 건인지만 세면서요.
저도 모르는 사이 내가 왜 일을 하는지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아, 이런 게 번아웃이구나.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고객은 피해자 혹은 피의자였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써내려 갔습니다.

일기를 쓴 지 300일이 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저에게 동화책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린아이가 당나귀를 데리고 길을 가는 단순한 내용의 동화였습니다.

꼭 전달을 하고 싶은 마음에

부족하지만 내용을 떠올리며 직접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아무리 찾아도 인터넷에 없어요.)


아이는 자신의 당나귀를 데리고 뚜벅뚜벅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아이는 당나귀와 함께 갈 그 길이 설레고 기대됩니다.



그러다가 아이는 무서운 괴물을 만납니다. 괴물은 당나귀를 공격하고 당나귀를 마구 상처 입혔습니다.

당나귀가 절뚝거립니다.

함께 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계속 당나귀를 데리고 뚜벅뚜벅 길을 갑니다.



또 어느 날, 무서운 귀신이 나타나 당나귀를 뿅! 하고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는 주저앉아 웁니다. 

당나귀 없이 길을 갈 수 있을까?


아이는 당나귀를 찾아 헤맵니다.

상처 투성이의 당나귀가 아이 앞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당나귀는 상처 입었지만 어느샌가 더 굳건해져 있었어요.


아이는 행복해하며 자신만의 당나귀를 데리고 길을 갑니다.




동화책을 읽고 나서 나는 선생님을 부여잡고 부끄럽게도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선생님, 참 힘들었습니다. 꿈을 지켜나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말로는 못하고 그렇게 속으로 외쳤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멋진 사람이 될 거야.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라며 저마다의 예쁜 씨앗을 품고 어른이 됩니다.

저도 그랬어요. 저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검사가 될 거예요!


그런데 씨앗이 예쁘면 예쁠수록 아이는 지킬게 많은 어른이 됩니다.

씨앗이 크면 클수록 짊어질 것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짊어진 짐이 무거워 포기하고 맙니다.

자신의 당나귀를 잃은 것도 모른 채 그냥 걸어가는 거예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참 공허했습니다.

다시는 잃고 싶지 않습니다.

당나귀의 모양은 변할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용기 내서 끝까지 외로움을 감내하며 가겠습니다.


당신의 당나귀는 무엇인가요?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함께 가고 싶은 당나귀를 찾으셨나요?


찾았다면 그 감내하고 감사한 그 과정을

찾고 계시다면 그 불안하고 설레는 그 과정을 응원하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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