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옛 수도 '에스테르곰' [엄마와의 여행]
엄마와 함께 헝가리의 옛 수도 '에스테르곰(Esztergom)'으로 향했다.
에스테르곰은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에 속하며 두너 강이 흐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 도나우 벤트(Danube Bend) 도시라고도 불린다.
헝가리 도나우 벤트, 3대 도시(에스테르곰, 비셰그라드, 센텐드레)는 모두 부다페스트에서 멀지 않은 근교에 있기 때문에, 차, 기차, 버스 여행으로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다.
강을 끼고 드라이브하는 것을 강력 추천! 에스테르곰까지 향하는 헝가리 국도의 전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5년 전 이맘때, 갔었던 그 여정이 여전히 생생할 정도로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
매번 차량으로 이동했는데, 오랜만에 기차의 감성을 느껴보고 싶었다.
부다페스트 '뉴거티역(서역)'에서 약 1시간을 달리면,
헝가리 옛 도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뉴거티역 (Nyugati Palyaudvar)
(*헝가리어로 Nyugati는 '서쪽'이란 뜻, 부다페스트 서역)
‘뉴거티역'은 1877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옛 것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이들의 문화 덕분에 역사(驛舍) 중에서 가장 '헝가리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우리나라 7-80년대 서울역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 드라마에도 여러 번 등장했을 정도로 잿빛 매력 가득한 곳이다.
파리 에펠사에서 설계한 건축물로 역사 자체도 유명하고, 그 때문에 뉴거티역 옆에 큰 광장이 '에펠 광장'이라 불린다.
* 역사 내, 역무원들은 주로 나이 든 중년이 많은데 영어를 거의 못 한다. 짧게라도, 헝가리어를 준비해가면 좋다(예를 들어, 몇 명인지, 시간대라든지, 날짜(요일), 편도인지, 왕복인지 등의 내용).
요즘 웬만한 것은 다 디지털화되어 있기 때문에, 어플로도 티켓 구매가 가능하지만, 뉴거티역이 집에서 멀지 않고,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아날로그 감성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매표소로 고고!
여행의 시작은 손에 쥔 티켓의 촉각으로부터.
기차를 타기 전, 필수 코스! 햄버거로 워밍업!
평소에 쳐다도 보지 않는 맥도널드 버거가 왜 기차를 타기 전엔 미쉘린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식사가 되는 것일까.
내 마음밭이 이미 여행 생각으로 충만해져 있기 때문이겠지.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뉴거티역에는'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맥도널드가 자리하고 있다. (이 세상엔 '세상에서 가장 ~한'이란 형용사가 붙어 있는 곳들이 참 많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들러보라고 권장하고 싶은 곳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
움직이는 기차 밖 풍경이
내 마음을 순전하게 변화시킨다.
고인 것에서 흩어지는 것으로.
그 흐름이 참 좋다.
오후의 나른함을 느낄 때쯤, 헝가리 북부에 위치한 '에스테르곰'에 도착했다.
오늘은 출발 전부터 많이 걷기로 작정한 날-
마침 역에서 에스테르곰 성당까지 도보로 40분이 나오길래, 걷기 적당한 거리라며 땡볕 아래 그늘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무더위 속에 오며 가며 계속 걷다가 나중에 제대로 뻗음, 체력을 기르자!)
비행기, 기차, 승용차 등 각 이동수단의 각기 다른 매력이 존재하지만, 아무래도 내 두 다리로 걷는 움직임이 하나의 장소를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두 발로 내딛으며, 이 땅의 모든 흔적을 담아야지'
인적이 너무 드물다 싶었는데, 그래도 불쑥 불쑥 문 열고 사람이 나오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겨울에 오면 스산한 모습으로 변모하겠다 싶다.
헝가리의 옛 수도, 에스테르곰 -
옛 도시의 '쇠락한(하루의 모습으로 쇠락을 논해 미안한 마음 얹고) 위엄'을 느끼며 걷고 또 걸었다.
"엄마, 저기 보이는 언덕이랑, 성벽 전경 보니 '베르가모' 생각난다. '이탈리아 소도시로 여행 갔던 곳' 기억나지?"
-"아! 맞다, 맞아. 그때 참 더웠는데.. 걷기도 엄청 걷고, 버스도 많이 늦게 오고.. 그게 벌써 작년이네. 엄만 헝가리가 더 좋아. 교통도 편리하고, 한적하고, 공기도 좋고"
"그러고 보니, 둘이 참 많이도 다녔다. 올 상반기 한국에서 국내 여행도 부지런히 하고.. 여긴 경주 같기도 해. 옛 수도는 어딜 가나 '나 옛 수도예요!' 하는 판박이 모습이 있나 보다. 신기하네! 그나저나 우리 두 모녀에게 허락된 감사한 시간들이 참 많았네. 그렇지? 코로나가 나쁜 일만 하진 않았네.."
라고 이야기하면, 엄만 내가 타지에서 고생한 이야기, 그럼에도 감사한 이야기, 인도에서 살며 성실한 발자취 만들어온 아빠 이야기 등을 약속한 듯이 늘어놓는다. 늘 나오는 레퍼토리이지만, 그만큼 지금 행복해서겠지..라고 생각하며 그저 귀 기울여 들어준다.
'아빠에겐 지난 15년, 나에겐 지난 5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 더불어 우리 가족의 삶에도 크고 작은 놀라운 변화들이 함께 했고.....'
"나 더위 먹었나 보다. 어디 쉴만한 곳 없니?"
-"당연히 있지! 엄마, 이곳에 오면 꼭 가봐야 할 곳, 성당 계단을 오르면 파노라마 뷰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있어. 일명 '파노라마 카페!'"
▼"짜잔! 멋지지? 헝가리 사람들은 욕심도 없어. 유적지인 이 마을, 최대 관광지인 성당에서 누리는 이 공간의 입장료를 단 1유로로 정하다니. 한국이었으면 사람들로 붐볐을 거고, 입장료도 만만치 않았을 걸?"
-그렇네..(하고는 '그래도 한국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럼에도 대단한 나라라고' 우리나라를 옹호하는 말로 언제나처럼 화답하는 우리 엄마)
'이맘때쯤이면 전 세계 관광객들로 이곳이 가득 찼는데....'
▲ 오두막 같은 곳에 맥주집이 있었다.
이 구역 핫한 곳인가요? 어르신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힐끗 쳐다보다 눈 마주친 할아버지의 윙크가 느끼하지 않다. 지방도시의 담백함이라고 해야 하나?
부다페스트 근교 당일치기 여행 코스로 '센텐드레'라는 마을이 유명하지만, 못지않게 '에스테르곰'도 갈만하다고 추천한다.
왕복 두 시간으로 해결되고, 기왕이면 헝가리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느끼고 오는 것도 값진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하기에 -
예를 들면,
이탈리아 여행에서 '피렌체보다 로마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예술보다 역사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사랑보다 영혼을 갈구하는 분들'에게 이 도시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