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 Nov 01. 2020

이 도시에서 '이룬 꿈, 셋’

부다페스트 이야기


'오늘을 참 그리워하겠구나'



엄마와 브런치를 먹으러 카페로 향하는 길에 생각했다.


너무나 일상이지만, 매우 특별하게 느껴지는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

이 시간을 '내 일상 기록에 소중한 한 페이지로 담아두겠구나..' 하는 감정이 강렬하게 몰려왔다.

엄마는 곧 한국에 가고, 난 또 하루를 살고, 꿈꾸고, 기도하며 보내겠지.



"엄마, 참 감사하다. 지금같이 힘든 시기에 엄마랑 같이 이 도시 곳곳을 누비며 거닐고, 같은 곳은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느끼고, 한국에 가서 함께 나눌 부다페스트 속 추억이 있고.. 안 그래?"


-"당연하지! 행복하고, 감사하지. 딸이랑 이런 시간을 누리다니.. (코로나 때문에) 맘 한구석이 무겁지만, 그래도 이번 여름이 감사함으로 기억될 것 같네, 세 번의 헝가리 중에 이번 시간이 유독 평온하게 느껴진다. (코로나 시대이지만) 아이러니하지."






헝가리에 처음 여행 왔을 때, 다른 나라와 달랐던 점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사람들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혼자의 여행을 선호하는 나에게,

'이 도시만큼은 내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이 순간을 함께 향유하고 싶다'라고 느낀 유일무이한 곳이 바로 '부다페스트'였다.


너무 좋은 여행지는 '나 홀로' 알고 싶은 비밀의 장소로 남겨두고 싶고,

부다페스트 외 '살고 싶다 느껴지는 몇몇 도시'는 나 혼자여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행복, 혹은 외로워도 견딜 수 있던 고독이었는데, 바로 이 도시만큼은 (혼자여도 잘 지냈지만) '같이'가 더 의미 있을 거라 생각했고,

내 눈에 담는 이 모든 사물과, 사람, 풍경들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고스란히 함께 누리고 싶다, 라는 열망이 솟구쳤던 그런 특별했던 곳이었다.



지나가는 트램을 봐도, 트램이 남기고 간 바람이 스쳐도, 하늘은 보아도, 페스트 강변에서 부다 왕궁을 볼 때도, 어부의 요새에서 페스트를 바라봤을 때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야경을 보며 강변을 거닐 때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부다페스트를 온몸으로 만끽할 때도, 집을 나서며 멋스러운 건물 사이를 걸어갈 때도, 버스를 탈 때도, 어디선가 와인 잔을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내가 사랑하는 겨울에도, 해가 짧은 겨울에도, 기나긴 겨울이 지나간 봄에도, 여름이 끝났다는 신호가 들리는 가을의 첫 자락에도.. 



이곳에서 '내 사람들'을 떠올렸다.








헝가리에 오고 나서 얼마간 나는 자칭 타칭 '헝가리 홍보대사'였다.



엄마가 매년 여름마다 세 번이나 왔다 가고,

아일랜드에서 룸메이트였던 대만 친구, 브라질 친구 둘이 '도대체 얼마나 멋진 도시이길래 네 삶의 터전을 바꿀 정도이냐' 호기심 반- 오기도 하고,

한국에서 절친한 친구가 하나, 둘씩 오더니, 한꺼번에 6명의 친구 무리가 오기도 했고,

내가 잠시 한국에 가 있는 동안에도 '내가 사는 이 도시가 궁금하다고' 온 예전 회사 친구도 있었고,

한 녀석은 나만큼이나 부다페스트에 푹 빠져 - 봄, 여름, 겨울 - 세 계절의 이 도시를 세 번이나 만나러 오기까지 했고,

또 서유럽으로 가자는 일행들을 꼬셔서 “헝가리로 가면 내 친구가 다 해결해 줄 거야!” 큰소리쳐 휴가를 맞춰 회사 동료들을 데리고 왔던 친구도 있었다.  

유럽 일주를 하던 중 배낭 메고 날 보러 오던 친구 부부,

독일, 영국에서 유학 중인 친구 셋이 '이런 때 오지, 언제 와보냐며 기왕이면 헝가리!'라고 나를 보러 오기도 했고,

이미 동유럽 여행 때, 이 도시를 다녀왔던 이모가 부다페스트 직항이 시작된 날 스타트를 끊고 다시금 오고, 뒤를 이어 남동생이 날 보러 와줬고,.....




헝가리에 나보다 오랜 산 분이 “뭐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많이 오냐고, 본인은 가족 한 명 부르기가 쉽지 않은데..” 하면서 우스갯으로 다들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냐며 이야기했지만,

무엇보다 분명한 건 '내가 사랑하는 그들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지간히 싸돌아(?) 다니던 저 녀석(필자)이 꿈꾸던 삶의 바탕이 되는 그 장소가 도대체 어디인고'하며 호기심을 품고 왔다는 사실.



헝가리 첫 발을 내딛고, 그 당시 일주일 가량을 여행하며, 내내 품고 다녔던, 읊조리던 마음속 내 목소리가

오늘 엄마와 걷는데, 새삼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요일 오후, 파란 하늘 위에 펼쳐진 내 꿈. 그때 꿈꾸던 그 꿈이.




기분 좋은 하늘, Astoria역


오늘의 브런치 카페 'fekete' : 전형적인 헝가리식 건물 (쉽게 말해, 가운데 뻥 뚫려있고, 주변이 에워싸는 식-)



'Fekete' (페께떼는 한국어로 '검은색'이란 뜻)


고개를 젖히면, 파란 하늘이 방긋-





'이곳에 더도 덜도 말고
딱 일 년만이라도 살고 싶다.

살면서 이 도시를 그려내고 싶다.
나만의 언어로 물들이면서..




그랬구나.. 1년이 5년이 되고, 이렇게 사랑하는 내 사람(엄마)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조금 늦어졌지만) 이렇게 기록하는 삶을 살고 있네. 꿈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구나. 그 생생한 과정 속에 내가 서있구나..'



1. 이곳에서 살고 싶다.

2. 글을 쓰며 살고 싶다.

3. (한국에 있는)나의 사람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이곳을 보여주고 싶다.



‘꿈 셋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구나.’



요즘 여러 잡스러운 고민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정신이 번쩍 뜨이며, '욕심'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이 이상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바람이 이루어졌으니, 주어진 것을 잘 살아내자'하며 엄마와 특별한 일상 속, 여느 때와 같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전 19화 헝가리, 어디까지 가봤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