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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Oct 21. 2020

하나의 글(나의 것)이 탄생하기까지.

Creative writing



'글'이란 무얼까?




1. 생각이나 일 따위의 내용을 글자로 나타낸 기록.

2. 말을 적는 일정한 체계의 부호.

<표준국어대사전>






글은 형태(대상)가 있든, 없든(생각) 모두 존재하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기록하는 내내 한 영혼을 그 시공간 안에 정직하게 쏟아붓는 글(기록)은 영원히 숨 쉴 수 있는 것이 된다.




글에는 그 사람이 추구하는 인생관, 삶의 태도, 이성(지식)과 감성(생각), 성향, '필자 그 자체'가 모두 담겨있다.

그래서 '글'이란 건, '발가벗겨진 심경'으로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극복해나가야 하는 최대 관문 중 하나인데, 실력은 둘째 치더라도 심적인 무게를 견뎌내야 하나의 풍요로운 글이 탄생할 수 있다.)

특히나 일기, 수필 등에 있어서는 예외 없이 더 그러하다.




소설은 제 3자의 시각을 빌려서 내가 아닌 것처럼 포장할 수 있고,

정보성 글처럼 객관적 설명이나 묘사가 필요한 글 등엔 필자의 감정을 배제시킬 수가 있는데,

나를 표현하는 글에선 '나'를 피해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더더욱 민낯을 드러내는 듯한 화끈한 심정을 비껴갈 도리가 없다.








글은 어떻게 쓰는 걸까.



혹자는 '말하듯이'라고 이야길 한다. 또 어떤 이는 '솔직하게, 나답게'라고 이야기한다. 혹은 '멋들어지게'라고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 글은 무엇을 겨냥해 써야 하는 걸까.

'내가 쓰고 싶은 것', '나를 움직이는 것', '표현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것' 등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우아한 글을 쓰고 싶다. '우아한' 글은 무엇일까. '가볍지만 결코 쉽게 쓰지 않는,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런 글이 나에겐 우아한 글이다.

접근하기 어려운 '우아함'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손을 뻗어도 모두에게 포근하게 다가가는, 아무 때나 꺼내 읽어도 살아 숨 쉬는 그런 '우아함'이 되고 싶다.



사과 하나를 관찰하며 쓰더라도,

내 기분 한 자락을 표현하더라도,

그저 가볍게 넘기는 하나의 수식어일지라도,

점 하나, 따옴표에도 신중을 기하는, 단어, 구, 문장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그런 조합의 탄생을 나는, 늘 기대한다.



완벽한 글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전문적인 글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태도에 관한 부분을 짚는 것이다. 한 문장을 적더라도 나를 담고, 내 사상을 담고, 신중을 기하고 싶다, 라는 것. 그것을 지금부터 말하고자 한다.




내 글이 어떻게 하면 많이 읽힐까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 될 필요가 있다. 나를 알면 나만의 문장이 저절로 뒤따라오고, 문장 하나하나에 고유의 색이 드러나면 그 글은 결국 '궁금해지는 글, 읽히는 글'이 된다.

이 태도에 추가적으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마음가짐에 관한 것인데, 글이란 것이 어느 대작가라도 손가락만 까닥하면 술술 풀려나오는 그런 기계적인 것이 아니어서 '글쓴이'의 '글'을 향한 열망을 품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여긴다.

예를 들어, '오늘의 이 글은 따뜻했으면 좋겠어. 지금 이 아픔이 온전히 이 글에 묻어나길 바라.'등 나의 소망을 극대화시켜서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글은 내 바람이 담긴 향기를 품어낸다.



첫 문장은 첫인상과도 같다. 기왕이면 좀 더 신중한 것이 좋겠다.



얼굴과 성격이 단번에 변화되지 않듯이 마음가짐 또한 그러하다.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우선은 잘 쓰는 글보다, 좋은 글에 집중하는 것이 제일 현명한 일이다.

좋은 글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척'하는 글이다.

'깃털'은 그 자체로 가볍기 때문에 가볍게 표현하면 되는 것인데, 굳이 그걸 '바위'처럼 만들 필요는 없고,

'슬픔'은 그 자체로 무게가 있는 것인데, '슬픔'을 쥐어짤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냥 솔직하면 된다. 솔직해지기 위해서 평소 내 모습을 잘 다듬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한 연기자의 인터뷰가 인상 깊어 내 맘에 종종 떠다니는데, 글의 성격과도 비슷하다 생각하여 적어본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내용인즉슨,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세요?"

"일상을 잘 살아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평소에 내가 온전해야 연기도 그 모습 그대로 표현된다. 우린 보여지는 직업이기 때문에, 보는 이들은 단박에 알아차린다.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평소 내 삶의 태도가 온전해야 글에도 그것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나쁜 사람이 좋은 글을 쓸 수 없고, 좋은 사람이 나쁜 글을 쓸 수가 없다. 아름다운 이가 쓴 글은 결국 아름답다.

'척'하는 글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아무리 멋진 글이어도 가짜는 진짜를 못 이긴다. 혹은 조금 어설픈 글이어도 진짜는 가짜를 가뿐히 이겨낸다. 글이란 건 이토록 신비로운 것이다. 내가 글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에 글처럼 완벽한 수단은 없다고 본다.



그리고 또 하나, 감정을 꾸밀 필요도 없다.

오늘 내 마음이 슬픈데, 행복해 보이는 글로 작위적인 변화를 만든다면 일그러진 얼굴처럼 어색한 글이 될 것이고,

나 자신을 드러내야 완성이 될만한 글에 나를 감추고 가리기에 급급하다면 그것만큼 아쉬운 글도 없을 것이다.








'동상, 아바타, 초상화'

대학 입학 실기 시험 때, 등장했던 제시어이다.

(소설, 시, 일기, 에세이, 기사문 등 장르는 자유 선택)




그때 내가 손을 들어 페이퍼를 나눠준 조교(인 것 같은 분)에게 물었다. (내가 물었기 때문에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 중 하나를 골라 적으면 되나요? (셋의 연결점이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oh, my... good news!’ (내 속마음)




결국 난 세 단어를 버무려서 제출했고,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는데, 합격했다.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글의 세계에 입문했다.

(가끔은 위 제시어처럼 막연하게 단어 하나 던져놓고 글 꼬리물기 연습을 해도 좋은 훈련이 된다.)



그때 난 그 글을 '소설'을 쓴다,라고 생각하며 창작해냈다.

근데 제출하고 나오니 '일기 쪼가리'도 안 되는 글이었던 거 같다. 그렇게 씁쓸한 마음을 안고 교정을 나섰던 기억이 난다.



대학 재학 당시, 한동안 난 내 글을 합격시킨 교수님이 누구인지 알아내 왜 그 글이 합격 조건에 부합했는지 물어보고자 직장인들이 가슴속에 사표를 품고 다니듯이 그 궁금증을 품고 다녔었다.

결국 담당 교수님이 누구인지 알아낼 재간이 없었고, 대학 4년 내내 그 질문을 안고 수수께끼 같은 마음으로 캠퍼스를 누비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내가 제일 무서워했던 수업 중 하나가 '창작과 비평'이었는데,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창작도 머리 아픈 일인데, 내어 놓자마자 비평을 달게 받아야 해서 괴로웠다고....)

좀 더 세밀하게 들어가 보면, 난해했던 것 중 하나가 '묘사'에 관한 것이었다.



교수님께서 갑자기 책상 위에 뭉뚱한 '당근'을 뉘어 놓으시고는 "이 당근을 표현해봐라" 하셨었다. 벽면에 '벽걸이 시계'를 가리키며 "저 시계를 적어봐라"하신 적도 있다. 그나마 '꽃다발' 같은 것은 생각을 그려내기에 개중 나은 편에 속했었다.



그때 당시엔 '못생긴 당근이고, 둥근 시계이고, 어여쁜 꽃다발이지, 도대체가 그 이상 뭘 파헤치길 바라시는 거야?'하고 투덜거리기 바빴는데, 다 늦은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단순히 우릴 괴롭히려 했던 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본질을 꿰뚫고, 사유하는 글쟁이들이 되길 원하셨던 것이다.



글은 그 대상을 '어떻게 묘사하느냐, 깊이 사유하느냐, 본질적, 사실적으로 담느냐'에 따라 생생하게 움직이기도 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생매장(잔인해도 어쩔 수 없다)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이어나가고, 멈춰있는 생각이 괴로울 때면 살아있는 것들에 도움을 청하러 세상 밖으로 몸을 던지기도 한다. 흰 여백에 온 힘을 다 해 쥐어짜도 한 문장도 탄생할 기미가 안 보이면 그저 적어나가는 연습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대상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 때도 있고, 생동감 있는 기분이 나를 이끌어 글의 길이 열리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한 글자가 한 문장을 완성시켜주고, 그 문장이 뻗어나가 금세 하나의 글을 선물해 주기도 한다. 익숙하지만 때론 생경한 감정으로 나를 희열감에 젖게끔 만드는 것도 글이다. 이때 느끼는 행복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행복감을 맛본 이들은 글 세계에서 잘 벗어나질 못 한다.




이상이 내 글이 열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자, 나를 위해 남겨놓는 기록이다.

이 글이 닿아야 할 이들이게 온당하게 전해지길 바라며..  이만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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