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 Nov 22. 2022

성실하고 안온한 하루에 건네는 인사말 '고마워.'

부다페스트 일상 일기


아침부터 피곤했다.

월요일 아침이어서가 아니라 어제 썩 좋지 않은 일(못하는 건 괜찮은데 일방적이고, 나쁘고 무례한 건 참기가 힘들다)을 겪고 조금 지쳤었나 보다.



어젯밤 집에 돌아오자마자 몸살 직전 상태임을 감지했다.

‘올 것이 왔구나.’ 긴장한 상태로 반나절 이상을 보내니 멀쩡할 수가 없지. 점심도 저녁도 거의 굶다시피 했는데 급체를 한 듯하게 속이 더부룩했다.



근육이 쪼그라들어 펼쳐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곧장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다.

전기장판을 틀고 잠을 청했지만 잡다한 생각들이 둥둥 떠다녀 쉬이 잠들지 못했다. 설교를 한 편 들으며 말씀에 집중하려 애를 썼다(여기서 애썼다,라는 표현은 몸이 계속 힘들어서 애를 써야지만 집중이 됐다라는 말).



약 기운이 퍼져감을 느끼게 된 건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다. 시계를 보니 자정에 가까웠다. 난감했다. 참으려 해봤지만 그 감각에 집중을 하니 더 배가 고팠고 잠은 달아난지 오래였다.



새벽 1시가 다 돼 김치볶음밥을 해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먹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엎치락뒤치락 새벽 기도 시간이 지나 눈을 떴다. 알람을 끈 기억이 없다. 꿈을 하나 꾸기도 했다.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모를 정도로 몸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주섬주섬 챙겨 넣어 어학원으로 향했다.






교실의 공기가 포근했다. 좋은 선생님, 다정한 친구들, 적당히 차분하고 적당히 활발한 분위기. 어느덧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맑게 갠 하늘이 보인다. 기분 좋게 찬 공기가 목 주위를 훑고 지나간다. 이런 날은 국물이지! ‘로컬 분위기 물씬 나는 베트남 식당으로 가야겠다’하고 생각하자마자 떠오른 곳은, 굿모닝 비에트남 -





KDB 은행에서 굿모닝 베트남까지 걷는 길목은 언제 봐도 운치 있다.






Good morning, Vietnam! Phó!






헝가리 현지인들도 좋아하는 정통 베트남 스타일 찐 맛집!






뜨끈한 소고기 육수와 든든한 쌀면(pho), 고소한 스프링 롤, 깔끔하고 상큼한 레모네이드까지!

내가 생각한 맛 그대로다! 가끔 같은 식당에서도 다른 맛이 날 때가 있다.





정갈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숙제를 하려고 Lui 카페로 왔다. (집에서는 공부 네버, 에버 안 됨)

But!! 문이 닫혀 있었다.





5분 정도를 더 걸어서 국회의사당 앞 madal 카페로 왔다.





수업 시간에 이미 커피 두 잔을 마신 터라 오늘 오후는 ginger lemon tea -

머덜은 커피도 맛있지만 티 맛집이다.

타이머 알람이 울리고 차를 따르니 향긋한 레몬 향이 퍼진다.





한 페이지 정도 끄적였나. 너무 졸려서 달달한 케이크를 시켰다. 다행히도 졸음이 달아났다.

10월, 헝가리어를 다시 시작하면서 다짐했던 몇 가지 (자신과의) 약속을 다행히 잘 지켜나가고 있다.

그중 제일 1순위, ‘숙제 미루지 말기!’

잘하고 있어. 토닥토닥.





항상 붐비는 카페지만 공간이 널찍하고 부담 없는 적당한 소음감(가끔은 이어폰 빼고 옆 사람들 헝가리어 재잘 거리는 소리도 듣고, 리스닝 공부까지. 일석이조!)에 스타벅스 다음으로 자주 찾는 곳 중 하나다. 문밖을 나서면 듬직한 국회의사당 건물이 나를 반겨주는 건 덤이다.






위축된 몸 상태와 감정을 뒤로하고 일상을 이어나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했던 오늘.

생각보다 무리하지 않은 채, 하루의 반나절이 자연스럽게 지나가고 있다. 이 자연스러움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렇지 못한 나날들이 있기에 안온한 오늘이 두드러지기도 한 것. 그러므로 그렇지 못한 날들에도 고마움을 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헝가리에서 열린 결혼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